서울 서초구 잠원동 알아서주는집
요즘 이모카세, 삼촌카세 등 오마카세의 아류작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혹자는 이모카세를 신조어라고 표현하기도 할 정도로 최근 '-카세'집이 화두다. 흑백요리사에서 이모카세가 인기를 얻은 후 숨어있던 카세집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식 오마카세, 술안주가 나오는 오마카세는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색다르기도 하고, 한식을 다양하게 준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찾았던 사당역 진달래실비가 대표적인 예다. 보쌈까지 같이 나온다면 더더욱 행복이 밀려온다.
오늘 소개할 집도 진달래실비처럼 카세집이고, 보쌈까지 나오는 곳이다. 잠원동에 있는 '알아서주는집'이다.
이 집은 신사역 5번 출구로 나와서 주유소를 끼고 꺾은 후 골목으로 들어가면, 줄 서는 식당 주토피아 서울점의 건너편에 있다.
웬만하면 이 집은 예약을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직접 가서 보니 좌석이 많지 않고, 재료 준비에도 그게 나으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주말로 접어드는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가게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내부가 매우 따뜻했다. 난방을 상당히 세게 튼 것 같았다. 자리는 10팀 정도 앉을 수 있었고, 이미 먹기 시작한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알아서 주는 집이니 메뉴판은 없다. 단지 인당 가격만 공지가 돼있다. 1인당 2만5000원인데 둘이 가는지, 셋이 가는지에 따라 가격과 나오는 음식이 달라진다. 그리고 술을 시키면 된다. 점심에는 식사를 파는데, 벽에 쓰여있기를 저녁부턴 술집으로 탈바꿈한다고 나와있다.
자리에 앉으면 곧바로 첫 음식 '도토리묵'이 등장한다. 직접 만드신 묵같았고 양념도 맛있었다. 식감이 좋았고 양념이 달달하니 먹을만했다. 애피타이저 느낌으로 먹기엔 제격이었다.
도토리묵 다음으로는 과메기가 나온다. 과메기가 철이니만큼 만족스러운 메뉴다. 사장님 말로는 백화점에 납품할 정도로 품질이 좋은 과메기라고 했다. 비린맛이 강하진 않았는데, 과메기를 처음 먹는 지인한테는 비리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최상의 품질은 아니었지만, 입맛을 돋우기엔 괜찮았다.
다음으론 김치전이 나온다. 안타깝지만 김치전은 그저 밀가루 덩어리에 불과했다. 김치양이 좀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다 보면 보쌈이 등장한다. 이재부터 고기의 시간이다.
이 집의 고기는 삼겹 부위를 활용한다. 아무래도 고기가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기가 녹아내릴 정도로 부드럽진 않다. 촉촉하거나 살코기가 소프트한 맛은 덜하다. 대신 비계가 있어서 나름대로 부드러움과 살코기의 질김이 조화를 이룬다.
고기의 잡내는 덜하다. 월계수, 생강, 마늘, 양파 정도의 향이 느껴진다. 특히 월계수 향이 강하다. 고기 잡내를 빼기 위한 방법으로 넣는 가장 흔한 방식인데, 개인적으로 월계수는 굳이 넣어야 하나 싶다. 괜히 잘못 넣으면 미세한 향이 남아서 맛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양은 괜찮지만.
두 명이서 먹는 양이고, 오마카세의 일부이기에 고기 양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다른 음식을 먹었기에 고기 양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세 명이서 먹을 때는 홍어가 나오는 것 같다. 옆에 분들이 먹는 걸 보니 홍어가 같이 나왔다. 부러웠다. 왜냐하면 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집의 김치는 두 종류인데, 하나는 묵은지고 하나는 갓김치다. 가운데 있는 건 가자미식해인지 무김치 안에 식해가 들어있었다. 이건 고기와 꽤 잘 어울렸다.
묵은지와 갓김치는 정말 맛있었다. 묵은지는 꽤 묵힌 것 같았는데, 먹자마자 라면이 떠오르는 맛이었다. 그리고 고기의 월계수향 같은 불필요한 냄새도 덮어줬다.
갓김치도 괜찮았다. 고기와도 잘 어울리지만, 나름대로 김치의 맛 자체로도 괜찮았다. 김치의 조합이 마치 골목집김치찌개를 떠올리기 했다.
고기를 먹고 나면 김칫국 같은 부대찌개가 나온다. 그냥 햄 몇 개 들어간, 평범한 김칫국이다.
이 집의 요리는 전반적으로 무난하다. 딱히 특출 나게 기억나는 맛도 아니고, 구성이 특별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 집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보쌈이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보쌈만 따로 추가해서 먹어보고 싶다. 엄청난 맛의 보쌈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을 지키면서 꽤 공을 들인 김치를 내놓는 것이 맘에 들었다.
알아서 주는데 보쌈까지 주는 집, 알아서주는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