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베고기는 도마 위에 돼지고기 수육을 썰어서 나오는 제주도 음식이다. '돔베'라는 단어가 '도마'의 제주 방언이라고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과거 잔치 때마다 돔베고기를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나눠먹었다고 한다. 보통 흑돼지를 재료로 삼곤 했는데, 최근에는 백돼지도 쓰이는 듯하다.
돔베고기는 수육, 보쌈을 좋아하는 내게 행복을 선사해 주는 음식이다. 없어서 못 먹을 정도다. 서울에 있는 제주 돔베고깃집도 몇 곳 있지만, 역시 돔베고기의 진수를 느끼려면 제주도를 직접 찾아야 한다.
제주도에 들를 때면 보통 제주 연동이나 서귀포 중문 쪽에 머무르곤 한다. 최근에는 부쩍 제주 연동 쪽에 머무르는 일이 많았는데 그럴 때면 꼭 찾는 집이 두 곳 있다. 그중 하나가 오늘 소개할 '제주돔베고기집'이다.
제주돔베고기집은 노형동 우체국 바로 옆에 있다. 하지만 노형동 우체국은 제주도 택시기사님도 모르는 그리 크지 않은 곳이다. 차라리 택시를 타고 간다면 '노형오거리'를 설명하고 가면 편하다. 그쯤 어디서 내리면 금방 찾아가기 쉬운 위치에 있다.
이 집은 차로 가기에도 용이하다. 주차장이 잘 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게 앞은 상당히 차가 많이 다녀서 갈 때마다 번잡한 느낌이다. 도보로 가는 방안도 나쁘지 않다.
가게 앞에는 사람이 항상 많다. 동네에서 인기 있는 맛집이라 그런지 남녀노소 사람이 몰려있다. 어르신들이 많은 편인데, 소주 한잔에 돔베고기를 드시러 오시는 분들도 많다. 홍어도 있어서 그런지 아저씨 손님들도 많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매우 깨끗한 내부가 자리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이 깨끗함을 항상 유지하는데, 사장님이 아마도 가게에 진심인 것 같다. 그런 깨끗함이 반갑다. 최근에 갔을 때는 테이블에 키오스크가 생겼는데, 어렵지 않게 구성돼 있어서 주문은 쉽다.
제주시 노형동 제주돔베고기집 메뉴판
특별히 이번에는 혼자 방문했기에 포장 주문을 해보았다. 배달의민족에도 포장 주문이 돼서 전화를 꺼리는 사람들은 배민을 통해 포장을 주문한 후 찾아가면 된다. 다만 몸국은 조리돼서 나오지 않으니 이 점은 유의해야 한다.
포장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포장의 가격이나 가게의 가격은 같다. 그렇다고 포장이 덜 돼 있지도 않다. 가게에서 나오는 모든 반찬이 다 들어있다. 한라봉편육부터 감자조림, 상추, 해초, 김치, 수육 등 하나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포장을 해서 나오면 이제부터 설레는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제주시 노형동 제주돔베고기집 돔베고기
돔베고기는 도마 위에 올려놓고 먹어야 '제맛'이지만. 포장해서 가져온 스티로폼 속 수육도 나쁘지 않았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먹었다면 나무도마가 기름을 잡아먹어서 기름기가 덜 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어쨌든 고기에 대해 평가하자면, 단언컨대 이 집 고기는 상당히 좋은 고기를 썼다. 제주도의 돔베고깃집들이 좋은 고기를 별다른 재료 없이 삶아서 내놓듯, 이 집 역시 상당한 퀄리티의 고기를 썼다는 것이 확실하다.
우선 살코기와 기름의 조화가 거의 5대5다. 품질이 좋은 고기에서만 나올 수 있는 황금비율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한입 먹는 순간 기름이 확 몰려온다. 돼지고기 기름치곤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데, 육향이 강하게 남아있을 뿐이지 잡내는 없앴기 때문이다. 그 비법이 정말 궁금하다. 거의 물로만 수육을 만든 것처럼 아무런 양념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대파와 생강 정도 들어갔으려나. 하지만 생강의 향도 나지 않았다. 후추, 대파뿌리 뭐 그 정도가 생각났다.
이 집의 고기는 암퇘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지방이 잔뜩 껴있다. 기름이 몰려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은 기름이 많이 있다 보니 먹다 보면 느끼하다. 사진에 있는 고기가 2인분인데 둘이서 먹었으면 괜찮았을 것 같지만, 역시 혼자 먹기에는 느끼함을 견디긴 힘들다.
제주시 노형동 제주돔베고기집 김치
그래서 이 집에는 이 김치가 있다. 김치가 정말 별미다. 보쌈김치의 전형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담긴 이 김치는 이 집만이 만들 수 있는 김치다.
우선 김치가 상당히 달다. 하지만 설탕의 단맛이 아니다. 과일의 단맛이다. 이 집에는 김치재료에 과일을 넣는다. 사과나 배를 넣고 어떨 때는 한라봉으로 추정되는 과일을 넣기도 하는 것 같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김치 속을 만들 때 과일을 갈아 넣는다.
그래서인지 단맛이 인위적이지 않다. 만약 인위적인 단맛이라면 기름진 고기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따로 노는 느낌이 들고 서로 자기주장이 강해져서 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집의 김치는 느끼한 고기와 어울리게끔 형성돼 있다.
무 역시 쓴맛이 나지 않는다. 김치 양념이 잘 돼있기 때문에 무김치도 맛있다. 고기국수를 점심에 먹으러 온 사람들이 무김치에 대해 호평하는 글들을 몇 개 봤는데, 이 집의 김치양념은 특출 나다.
굳이 비유하자면 회기왕족발보쌈이나 삼각지왕족발이 떠오르는 김치다. 김치 속의 색깔도 찐하고 과일의 단맛이 강해서 계속 먹게 되는 맛이다.
아쉬운 점은 언젠가는 질리는 맛이라는 점. 과하게 표현하면 그렇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느낌은 아니다. 아무래도 자극적인 맛들이어서 그런 것 같다. 몇 달의 텀을 두고 먹으면 다시 찾게 되는 그런 맛이지 당장 내일도 생각날 정도의 맛은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제주시 노형동 제주돔베고기집 몸국
이 집의 또 하나의 별미는 바로 이 몸국이다. 돔베고깃집들은 대부분 서비스 몸국을 주는데, 이 집의 몸국은 몸국만 따로 먹어도 맛있을 정도로 훌륭한 맛이다.
톳이 매우 많이 들어가 있으며 국물에서 진한 맛이 난다. 돼지고기 자체를 좋은 걸 쓰다 보니 약간의 간만 해도 깊은 맛과 혀를 감싸는 맛이 느껴지는 듯하다. 몸국에 밥 말아먹으면 달짝지근한 김치와도 은근히 조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시 노형동 제주돔베고기집 한상차림
각종 소스들도 이 집의 별미다. 갈치속젓 또는 멜젓으로 추정되는 소스와 간장소스, 초장까지. 먹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돔베고기를 간장에 먼저 찍어먹어 고기의 맛을 느껴본 후 다음은 해초랑 싸서 초장이랑, 그리고 편마늘과 쌈장과 함께. 이런 순서로 먹어보면 돔베고기의 맛을 더 느낄 수 있다. 마지막은 갈치속젓 또는 멜젓으로 추정되는 소스와 함께 먹으면 육지와 해상의 조화를 느낄 수도...
이 집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김치에 진심인 돔베고깃집 같다. 고기 자체도 뛰어난 편이지만, 김치가 정말 만들기 힘든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집의 김치 양념을 흉내 내려면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