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1908년 6월.
가도 가도 소나무 뿐이라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내가 아무리 걷는다고 해도 소나무 쪽에서 어떻게 해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아예 우두커니 서서 소나무하고 눈싸움이나 하고 있는게 나을 뻔했다. - p.15
"임자, 몇 살이나 되었나?"
"열아홉입니다."
실제로 그때는 틀림없이 열아홉 살이었다. - p.31
어떻소,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게. 아마 처음부터 갱부가 될 수 있고 또 돈을 잔뜩 벌 수 있다는 식의 달콤한 얘기라도 했을 거요.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아무리 해봐야 이야기 한 것의 10분의 1도 안 되니 마음에 안 찰거요. 무엇보다 한마디로 갱부라고 말은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특히나 당신같이 학교 교육이라도 받은 사람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거요. - p.151
그래서 돌아보니 입구가 조그만 달처럼 보였다. 조그만 달처럼 보일 만큼 깊이 들어왔구나 하고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무리 흐려도 역시 밖이 그리웠다. 시커먼 천장이 위에서 내리누르는 듯하면 아무래도 기분이 나쁜 법이다. - p.214
"이보라고, 이런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잖아. 너도 할 수 있겠어?" 나는 가슴이 물에 잠길 때까지 구부려 동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안쪽 전체가 희미하게 밝았다. 밝다고는 해도 뚜렷한 데가 없고 종잡을 수 없었다. 넓은 곳에 희미한 불을 억지로 켜놓아 빛이 제대로 퍼지지 못하기 때문에 애써 켜둔 불이 어둠에 압도되어 막연하게 흐릿한 상태였다. - p.253
그때 내가 그 갱부의 말을 듣고 첫째로 놀란 것은 그의 교육 수준이었다. 교육을 받은 데서 나오는 고상한 감정이었다. 그는 갱부가 죽었다 깨어나도 알 턱이 없는 한자어를 아주 편안하게, 마치 어제까지 가정 내에서 일상적으로 써왔던 것처럼 구사했다. - p.278
의사는 코 아래 손을 댔다.
"어떻습니까? 갱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안 돼."
"어디가 안 좋습니까?"
"지금 써줄게."
의사는 네모난 종잇조각에 뭔가 써서 내던지듯이 내게 건넸다. 들여다보니 기관지염이라고 쓰여 있었다. - p.310
내가 갱부에 대해 경험한 것은 이것뿐이다. 그리고 모든게 사실이다. 소설이 되지도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 p.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