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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중 Dec 30. 2021

2021년의 독서 기록.


어느덧 2021년의 끝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올해는 서평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매 주 글을 연재했기 때문이라 말할 수 밖에는 없겠습니다. 매일 글을 쓰다보니 서평을 비롯한 다른 글을 쓰기에는 도저히 심적인 여유가 없었죠. 물론 독서는 계속하면서 이런저런 글을 적어두기도 했지만 이 역시 정리하기에는 영 힘이 부족했습니다.





2021년의 독서 달력을 되돌아보니 올해는 64권의 책과 31,000 페이지를 읽었습니다. 한 달 평균 5권, 한 권당 480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라 할 수 있겠죠. 좀 두꺼웠던 비문학 책들을 읽다 보니 아무래도 페이지가 부풀려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64권의 책 모두 저에게는 나름의 이유로 읽었던 책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기억에 남는 몇 권을 뽑아봤습니다.




1월 –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올해 처음으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접했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부터 알게 된 작가인데, 작품을 읽는 것은 꽤나 시간이 지난 후였죠. 감탄했습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도 있구나. 오랜만에 재밌게 넘어가면서도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안타까운 경험을 안겨 준 작가였습니다. 이후 ‘파묻힌 거인’,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클라라와 태양’을 차례대로 읽고, 최근에는 단편 모음집 ‘녹턴’을 읽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무라카미 하루키도 좋아했지만, 그보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5월 – 파시즘, 로버트 O 팩스턴


3월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다시 읽음과 동시에 새로운 게임인 ‘하츠 오브 아이언 4’를 시작하면서 전쟁에 대해 관심이 기울었습니다. 4월에 읽은 ‘피에 젖은 땅’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난 수많은 죽음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에 대해 좀 더 깊게 파고 들었죠. ‘파시즘’을 읽고 나선 이어서 이언 커쇼의 ‘히틀러 1’과 ‘히틀러 2’를 차례로 읽기도 했습니다.


‘파시즘’은 제목에서처럼 제2차 세게대전을 일으킨 사상적 배경인 파시즘의 역사와 정의를 다루는 책입니다. 20세기 초 대중의 참정권 확대와 미디어의 발달로 탄생한 민족주의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면 어떻게 끝나는 지를 잘 분석한 책이었죠. 오늘날에도 여전한 민족주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기에 과거는 반복되는가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대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5월 – 토지 1권, 박경리

이전에 하는 독서모임에서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읽기를 새롭게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전엔 박경리 선생님의 ‘김약국의 딸들’을 읽어서 그 분이 어떤 글을 쓰는지 대강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더 넓은 배경에서, 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훨씬 풍부한 경험을 선사해주었죠. 매달 1권씩 꾸준히 읽은 결과 지금은 9권을 읽고 있습니다. 아마 내년 이맘때에 20권을 완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학농민운동 시기부터 일제강점기의 끝까지를 시기적 배경으로 하는 ‘토지’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 자체도 충분히 재밌지만, 그 당시 다양한 계층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딱 필요한 만큼의 묘사로 채워져 있기에, 많은 인물들의 삶을 보면서도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7월 – 돈키호테 1권 , 세르반테스


다른 독서 모임에서는 ‘돈키호테’ 원전을 읽기도 했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신나간 기사 ‘돈 키호테’와 그의 하인 ‘산초 판사’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두꺼웠습니다. 읽으면서 잘 몰랐던 돈 키호테의 면모를 볼 수 있을 뿐더러,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1500년대의 유럽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죠.


소설의 시초라 여겨지는 돈 키호테라서 그런지 이야기 측면에선 다소 난잡한 면이 있습니다. 하나의 긴 흐름을 따르기보단 짧은 이야기들이 훅훅 등장하는지라 그런 호흡에 익숙하지 않으면 읽기 힘든 작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세르반테스가 중간중간 넣어둔 묘사나 격언을 읽다보면 과연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가 있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권의 설정도 독특해서, 세르반테스도 참 똑똑한 사람이었구나 하기도 했죠.




8월 – 햄릿, 셰익스피어


8월 여름 휴가 땐 셰익스피어의 비극 4편을 몰아서 읽었습니다. 세르반테스와 같은 날짜에 사망한 셰익스피어는, 같은 시대를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죠. 한 2년 전에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읽고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덮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땐 왜 셰익스피어가 왜 유명한지, 아직까지 읽히는지 잘 몰랐죠.


이번에는 같은 작품 속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느린 호흡으로 읽었습니다. 그제서야 인물들이 어떤 모습인지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햄릿’, ‘맥베스’, ‘리어 왕’, ‘오셀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햄릿이었습니다. 직관적이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작품이었죠. 또한 세익스피어는 세르반테스와 달리 인물들의 양면,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그려낸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10월 31에는 서울에서 공연 ‘리어 왕’을 보고 나서 연극이 실제로 상연되는 게 어떤 느낌인지 경험하면서 연극의 매력을 느끼기도 했죠.




10월 –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 역시 몇 년 전에 읽었다가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라 덮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어렵다고 느끼며 책을 던져버렸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같이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버지니아 울프 역시 비범한 작가였구나 라는 걸 새롭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흔히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그녀의 작품에 그러한 면모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한 단어로 정의내리기는 그녀의 작품은 훨씬 풍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녀의 소설에는 이전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소설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그녀의 질문과 답을 느낄 수도 있었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사용한 ‘의식의 흐름’ 기법도 그 중 하나지만, 시간의 길이를 자유롭게 변환하거나, 깊이 있는 묘사로 표현하는 것도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댈러웨이 부인’에 이어서 ‘등대로’, ‘올랜도’를 차례로 읽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해가면서 깊어지는 그녀의 작품을 따라가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죠. 매번 새로운 시도를 했던 버지니아 울프는, 올해에 들어서 새롭게 접한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12월 – 스스로 행복하라, 법정

‘토지’를 읽다가 계속 나오는 불교적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은 법정 스님의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보통 에세이를 잘 읽지 않지만, 법정 스님의 글은 과연 오래 읽히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님께서 입적하며 자신이 남긴 글을 모두 없애달라는 유언이 있었지만, 이처럼 좋은 글들은 남겨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가와 수행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 등, 법정 스님의 깊은 고뇌와 통찰이 담긴 글을 읽는 것은 꽤나 즐거우면서도 스님의 표현처럼 ‘날카로운 지혜의 칼날’을 벼리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내 삶에서 덜어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내가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2021년의 마지막에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었죠.




그 외에도 올해엔 새롭게 시를 읽기 시작하기도 했죠. 윤동주나 김소월, 피천득과 같은 여러 시인들의 시집을 사 모으면서 천천히 읽곤 했습니다. 매년 읽는 톨스토이의 장편인 ‘전쟁과 평화’, 그리고 읽는 중인 ‘안나 카레리나’도 역시나 다시 읽어도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따로 읽지 않았기에 내년에는 그의 작품을 다시 읽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론 올해에는 책을 조금 더 천천히, 하지만 깊게 읽을 수 있게 된 해라고 여겨집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더욱 다양한 걸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로소 나이가 들고 있구나 하는 걸 실감하기도 했죠. 내년에는 올해에 읽었던 책 중에 다시 읽을 것들도 많겠지만, 한편으론 어떤 책을 또 새롭게 읽게 될지 기대를 하며 2022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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