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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국 프로젝트 Jul 04. 2019

개미와 우리집, 아니 너의 집

박앤비의 호주, 너네 어디서 놀아 1. 쉐어하우스 이야기 


지난번에 보니까, 전자레인지 위에 개미가 돌아다니더라고요. 혹시 살충제 있으세요? 그럼 제가 처리할게요.


당신의 집 주방에 개미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개미 약이라던가 살충제라던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 개미들을 박멸하자(해달라). 세 들어 사는 나로서는 집 주인인 당신들이 해주길 바라지만, 여의치 않다면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는 완곡하고도 분명한 목표가 담긴 문장이었다.


그 개미들 안 죽여도 돼, 그전에는 더 큰 개미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큰 개미들은 없어지고, 작은 개미들이 나타났어. 그냥 놔둬


……



너무 완곡하게 돌려 말한 탓일까. 주방에 개미들이 들끓는 게 싫다고 더 분명하게 말했어야 했나.

결국 더 이상 개미들에 대해 항변하지 못한 채, 코끼리가 내 방에 들어온 거 마냥 불편한 동거를 이어나갔다.


호주는 집값이 너무 비싸 셰어하우스 문화가 일반적이다. 집 한 채에 여러 사람을 들여 남는 방에 세를 놔 집값 부담을 더는 방법이다. 개미와 동거했다는 그 집도 아직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가 방 3개짜리 일반 가정 주택에서 남는 두 방을 유학생들이나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들에게 내놓은 것이었다.


쉐어하우스의 나 혼자 쓰던 방


처음 경험한 호주식 셰어하우스는 조용한 주택가에서 조용한 태국인-인도인 부부가 알콩달콩 지내고 있는 신혼집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거실을 좋아했는데, 4K 화질로 볼 수 있는 TV와 내 키와 딱 맞는 가로 길이의 소파가 내 방에 있는 침대보다 더 편안하고 포근했다. 딱히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던 그때, 푹신하다 못해 허리 부분은 매트가 꺼져버린 소파에 앉아 영어 자막이 나오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4K 화질로 보는 것이 낙이었다.


쉐어하우스에서 집주인 부부와 공유하던 거실



맨 처음 개미를 발견한 건, 아마 빵 집에서 4시간 동안 면접 삼아 일한 대가로 받은 에그 타르트를 버리려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었을 때였다.


정당한 보수 없이 연습이나 시험 삼아 일을 하는 건 호주에서, 워홀러들에게는 ‘트라이얼’이라는 이름으로 왕왕 있는 일이다. 원래 트라이얼은 당연히 보수와 함께 최대 2시간 이하로만 가능하지만 하지만 그 에그 타르트집은 최저 시급보다 한참 못 미치는 시급에 무급여로 만 8시간을 트라이얼 하는 걸 요구했다.


싱크대 바로 앞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었을 때는 꽤 쓰레기들이 차 있는 상태였는데, 그 위에 에그 타르트를 버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알개미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얼른 쓰레기봉투를 갈아 끼웠다. 쓰레기봉투만 자주 갈아주면 괜찮을 줄 알았다. 개미들이 득실득실한 프라이팬을 보기 전까지는.


검은색의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자 불이 한 번에 안 켜졌다. 토치를 이용해 점화시키려고 프라이팬을 들었는데 눈에 가까이 들어오니 그제야 보였다. 족히 수 백 마리는 돼 보이는 개미들이 프라이팬을 점령하고 있고, 대형 군집에 끼지 못한 낙오 개미 몇 마리가 내가 잡고 있는 손 잡이 근처를 얼쩡거리고 있는 것을.


‘집에 큰 코끼리가 들어와 있다.’

어찌할 방법이 없어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낸다는 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 말을 좋아(?) 하는 데, 나에겐 이 집에 있는 개미들이 코끼리 같은 존재였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이 득실득실한 알개미들이 너무나 불편하고 없애고 싶지만, ‘큰 개미를 겪었더니 작은 개미가 오더라’라는 집주인의 말에 더 이상 아무 말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미뤄두고 티를 내지 않았다. 모든 주방기구를 쓸 때마다 강박적으로 물로 꼭 헹군 다음에 사용하고, 개미가 자고 있는 내 얼굴을 밟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렇게 여러 날을 보내며 나는 어느덧 제대로 된 일을 시작했고 떠날 날이 다가왔다.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던 터라, 이 집을 나서면 으레들 정든 집을 떠나듯 아쉬움이 들 거라 기대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짧았던 탓인지, 조용한 부부와 더 친해지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들어가고 나온 짐이 단출해서인지 내 집을 떠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흔한 포옹 인사 한 번 없이 악수와 잘 지내라는 간단한 인사말로 헤어졌다. 이토록 미련 없이 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들의 쿨한 방식인지 내가 겪은 특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개미와 우리 집. 아니 그들의 집에서 떠나왔다.





호주는 나에게 이런 곳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에 편안하면서도, 개미처럼 불편하고, 남의 집처럼 내 것이 아닌 느낌.


정을 주고 싶지만 다가가는 방법을 몰라 오늘도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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