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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y 15. 2023

어느 멋진 날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비는 1층짜리 가게들과 반지하 집들이 잠길 정도로 무섭게 쏟아졌다. 한낮이었대도 창문 밖은 먹지를 감은 듯 어두웠다. 창문 밖에선 비가 내리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고성으로 가득했다.


 나의 눈은 평소와는 다르게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엄마와 이모, 이모부를 부지런히 쫓았다. 셋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서랍과 장롱에 있던 물건들을 보자기와 커다란 비닐봉지에 쓸어 담았다. 챙기는 건지, 버리려는 건지 모를 정도로 손에 잡히는 건 뭐든 까만 비닐봉지로 들어갔다. 나와 동생은 키가 작아 어른들 품에 안겨야 했다. 겨우 두 살 많았던 사촌 오빠는 오빠라는 이유로 머리에 짐을 이고 빗속을 걸어야 했다. 드르륵하고 방문을 열 자 닫친 가게 문틈 사이로 빗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가게 안엔 많은 양의 빗물들이 방문을 넘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엄마에게 안겨 나오며 어깨너머로 비에 잠식되는 철물점 내부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가게 안에는 누구에게도 당겨본 적 없는 손잡이와 그 무엇도 지탱해 본 적 없는 못. 어떤 것도 스쳐본 적 없는 망치들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단 한 번도 쓰인 적 없지만 앞으로 녹슬 일밖에 남지 않은 발 없는 것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하는 듯 조용하고 고요하게 누워 있을 뿐이었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가게 안에 딸린 시커먼 방이 조금씩 멀어졌다. 엄마와 나, 동생과 이모, 이모부에 사촌오빠까지 여섯 명이 함께 몸을 뉘었던 우리의 방이자 우리의 집이었던 곳이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것처럼 엉망이 된 채 침묵하고 있었다. 밤이면 천장에 조악하게 붙은 야광별을 바라보며 옆에 있는 엄마 손을 꼭 붙들었다. ‘엄마, 사랑해. 알라뷰’하고 어두운 허공에 말을 던지면, ‘응. 엄마도.’하는 엄마의 음성이 되돌아오던 우리의 방.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빠와 엄마, 동생과 내가 함께 했던 방. 팔 한쪽에 링겔을 꽂고 구겨진 휴지 조각처럼 있던 아빠가 빈 눈동자로 바라보던 TV 위엔, 늦은 저녁 어른들이 외출할 때 틀어주던 요괴가족과 소공녀 테이프가 놓여 있었다. 다시 들어가 그것들을 챙기고 싶었지만, 비에 발이 닿으면 나조차도 녹이 슬 것만 같았다.  

   

가게 밖엔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뛰어다녔던 길은 빗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비는 사람들의 옷과 짐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무릎이 사라진 사람들은 있지도, 없지도 않은 길 위에서 온 힘을 다해 걷고 있었다. 손바닥 위에 떨어지는 비는 투명했지만, 엄마의 다리를 삼켜버린 빗물은 세상의 모든 불순물을 머금은 듯 탁하고 어두웠다. 정처 없는 빗물은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 매섭게 지나쳐 흘러갔다. 얼굴 위로 흐르는 비 때문에 앞을 보기 어려워 연신 한 손으로 얼굴을 닦아냈지만 소용없었다.   

  

“수현아, 아저씨한테 안겨.”     

엄마는 이모에게 안겨 있던 동생을 챙기기 위해 카센터를 하던 아저씨에게 나를 건넸다. 아저씨는 팔을 벌려 나를 안으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엄마의 목덜미를 더 꼭 끌어안았다. 하는 수 없이 나 대신 동생이 아저씨의 품에 안겼다. 


사람들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들의 모습이 서서히 늪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저마다 머리 위에 급하게 챙겨 나온 짐들이 올려져 있었다. 말 그대로 머리에 이고, 두 손에 쥔 채. 비가 오고 있었지만 아무도 우산을 쓰지 못하는 딱한 광경이었다. 나는 발에 빗물이 닿을까 몸에 힘을 주고 엄마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엄마는 몇 번이고 나를 고쳐 안으며 빗속을 걸어갔다. 그 순간 나는 엄마의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이었다.  

   

어느 건물 2층에 사람들이 모였다. 어른들은 좀 전까지의 냉정한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이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냈다. 녹슬 일만 남은 건 가게 안에 철물들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비에 젖은 손잡이와 못과 망치 같았다. 어딘가에 꼭 쓰여야 하지만, 쓰일 수 없는 나약한 모습들. 비는 진작에 그쳤지만 대신 사람들의 눈물이 비처럼 내렸다. 비에 젖은 옷 소매가 또다시 젖었다.     


강당에 있기 심심했던 나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2층 계단에 앉아 떠내려가는 빗물을 바라보았다.          

“와! 여기서 수영하고 싶다 그치? 어푸어푸”          

내 옆에 앉은 남자아이가 활짝 웃으며 팔을 어설프게 휘저었다. 그 아이의 말에 주변에 있던 또래들이 웃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온 어른들의 울음소리가 잠시나마 아이들의 웃음소리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빗물 속에서 수영하는 상상을 했다. 상상 속의 나는 프릴이 달린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허리춤에 튜브를 낀 체 즐겁게 발장구를 쳤다. 그러다 뜰채로 빗물 속에 떠내려가는 요괴가족과 소공녀 비디오테이프를 건져내고, 사방으로 흩어진 못과 나사도 건져냈다. 상상 속의 못과 나사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가난은 너무 쉽게 진다. 쉽게 꺾이고 쉽게 가라앉고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백기를 들었다. 햇볕에 말라버리면 그만인 빗물에도 쉽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다. 가져갈 것도 없는 곳에서 거센 비가 악착같이 휩쓸고 간 자리엔 그 가난함 마저 텅 비어 있었다. 


카센터 아저씨는 먹구름에 가려진 해가 자기 앞에 뜨기라도 한 듯 찡그린 표정으로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카센터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모는 철물점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엄마와 이모부는 아무 말도 없이 철물점 안에 물건들을 밖으로 날랐다. 가게가 어떻게 변한 건지 궁금했던 아이들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길라치면 어른들은 손을 휘저으며 나가라고 소리쳤다. 아이가 봐 선 안되는 것이 안쪽에 숨어 있기라도 한 듯이. 


어른들이 어제와 다른 얼굴로 울고 있을 때, 철없는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터를 만난 듯 미끄러운 진흙 바닥 위를 웃으며 달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게 시작인지도 모르고. 엄마와 이별의 출발선에 선 것도 모른 채 나를 잡으러 달려오는 친구로부터 그저 멀리멀리 달아날 뿐이었다. 한바탕 비가 쏟아진 하늘이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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