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Sep 01. 2023

연애 운은 보지 않는 여자

운세 보는 걸 좋아한다. 매월 초 무료인 이달의 운세를 빠짐없이 보는 편인데, 중간에 연애 운이 나오면 빠르게 스크롤을 내린다. 결혼 후 나는 연애 운 따윈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게 잘된 일인지, 안타까운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대 초중반까지 이달의 운세에서 정독하는 부분은 애정운이었다. 타로를 보러 가도 연애 운을 집중적으로 물어봤다. 연애 상대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설레는 마음으로 타로 테이블에 앉았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 혹은 만나는 이와의 진전은 어떻게 될지 테이블 위에 나온 카드를 유심히 보며 귀를 크게 열었다. 때론 실망하고, 때론 기뻐하며 좁은 타로 가게를 나섰다.     


지금의 남편과는 4살 차이. 연애 시절, 주변 사람들은 우리의 나이 차이를 듣고는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대” 하며 들썩였다. 그냥 하는 말이어도 듣기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남자애나 연예인 이름으로 이름 궁합을 보곤 했었는데, 신빙성이 제로에 가까웠지만, 그 결과에 기뻐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미신을 접했으니, 그냥 하는 말도 좋았을 수밖에.     


결혼 후‘연애’라는 단어 자체가 먼 우주의 말처럼 멀게 느껴진다. ‘설렘’‘두근두근’ 이런 말들도 마찬가지. 그런 단어를 써 본 적이 언제였나, 싶어진다. 남편과 함께 일반인이 나오는 연애 프로그램을 봤다. 우리가 각자 저 프로그램에 나왔다면 서로를 선택했을까? 하는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저 자리에서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결론을 냈다.     


남 연애는 늘 설레고 재밌어 보이는 법. 한창 과몰입해서 보던 내가 “아, 나도 저기 나가고 싶다. 재밌을 것 같아!”라고 말하자, 남편이 그때부터 나를 ‘0표 순자’로 불렀다. “0표 순자 씨. 머리 좀 치워봐요. TV 안 보여요.” 나는 남편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예전에 남편 회사 근처에서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밖에서 만났는데, 딴 사람을 만난 것처럼 새로웠다. 러닝셔츠 바람에 늘어진 모습이 아니라 그런가. 설렘이나, 두근두근하는 감정까진 아니었지만, 매일 봤던 얼굴이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남편도 마찬가지겠지. 남편 눈에도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은 내가 달리 보였을 것이다.     


묘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역방향으로 걷다가 무심결에 등을 돌려 남편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그 뒷모습이 측은했다. 어째서인지 뒷모습이 가여워 보여 한참을 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 남편이 뒤를 휙 돌아 나를 발견하곤 팔을 크게 흔들었다. 갑자기 연애 시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 앞에서 헤어지기 아쉬워 몇 번이고 돌아보며 인사를 나눴던 우리. 주황빛 가로등만 선선히 켜진 고요한 길가에서 몇 번이고 손을 흔들던 남편. 길게 늘어진 그림자도 그를 따라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길에서 헤어지는 게 얼마 만인가. 이것도 데이트라면 데이트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편을 향한 마음이 측은함으로 바뀌어 있었다는 점. 왠지는 모르지만, 가족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먹먹하고, 슬픈 기분이 든다. 애인이었을 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나도 화답하듯 팔을 휘휘 저었다. 곁을 지나던 사람이 뭔가 싶어 쳐다보았다. 팔을 흔드는 서로의 모습이 우스워 길가에 서서 웃었다. 아마 남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내일 만나.’ 인사를 나누던 젊은 남녀는, 이제 ‘집에서 봐.’ 하며 웃으며 헤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누군가의 <종간나 세끼>가 되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