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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Jan 15. 2024

어쩌다 투병일기-4. 아프니깐 감사한 것들

온전히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 중 아메리카노 한 잔, 카페 이름이 안온하다.


"온전히"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히(네이버 국어사전)


결과를 기다리던 11월에는  '암환자'후보였다가

12월 수술을 하면서 암환자로 등록이 되었다. 나라에서까지 인정이 되어 의료비를 지원받게 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난 주변에서 씩씩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언니들도

 "너 생각보다 괜찮다"라고 말하며 잘 이겨낼 거라 위로한다.

가까운 사람 몇 명에게 내가 암이란 사실을 알렸을 때

몇 가지 반응들이 있었다.


놀라며 눈에 눈물이 고이는 사람, 암이란 병의 고통에 대해 나열해 준 사람, 주변에서 겪은 유방암 환자들이 잘 살고 있다고 전해준 사람, 또 말한 적 없는데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해 듣고 힘내라며 전화를 하고 모바일 선물을 보내준 교회분들. 또 어떤 친구는 나를 배려한 나머지 안부조차 묻지 않아 날 시험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아프다니깐 잘 먹어라, 춥게 다니지 말아라 온전히 걱정해 준 내 가족들과 친구 몇 명. 그리고 같은 병을 극복하고 있는 교회 언니, 나와 인사만 하고 지냈지만 날 위해 기도해 주는 교회 분들.

아프지만 참 감사하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를 해주는 분들에게,

 나 또한 온전히 감사드린다.


고등학교 때 절친 중 한 명인 Y는  항암 하기 전에 밥을 먹자고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내가 아프다는 말을 처음 듣고는 장품을 잔뜩 사주며 아프지 말라고 부탁했다.

Y는 우리가  평소 자주 먹었던 파스타를 사주었다. 함께 저녁을 먹기 전 친구와 나는 눈물을 찔끔 거리며 아픔을 공유했다.


"찐!(친구는 나를 이렇게 부른다)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야 돼!"

라구볼레네제 파스타, 맛있었다.

이 날 저녁을 함께 먹게 된 동네친구이자 교회친구인 H는 친구 Y의 절친으로 Y의 소개로 나와도 친구가 됐다. 셋은 저녁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암이란 무거움에서 벗어났다.

 평범한 일상을 나눈 친구들이 있어 감사하다.


병원에서 유방암 1기로 병기가 바뀐 날, 조리원 동기로 13년 인연을 이어온 E언니는 무언가 예감한 것처럼 

내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나는 '병원이며 현재 이런 상태야'라고 전하자 내 병을 처음 듣게 된 언니는 화들짝 놀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언니 나 슬프지 않아. 괜찮아."

라고 말하자 언니가 이것저것 물으며 나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언니를 만나기 전에 항암 날짜가 잡혔고, 나는 가족들과 여행을 왔기에 언니와는 나중에 만나야 할 거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언니는 너무 미안해하며 모바일로 돈을 송금해 보냈다.


"맛있는 거 사줄라고 했는데....

여행 가서 애들이랑 맛있는 거 먹어."


언니의 문자에 코끝이 찡해 눈물이 났다.


 나에게는 언니들이 다섯 명이나 있다. 좀 많아서 어릴 땐 창피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든든한 지원자들이 돼 주었다. 특히 가까이 사는 둘째 언니는 유방암에 좋다는 토마토를 넣어 슈트를 자주 만들어 주고 있다. 또 주말마다 집으로 불러, 내 가족들의 끼니를 챙긴다. 춥다고 하니 구스패딩도 입으라고 내어주고, 몸에 좋은 걸 이것저것 사준다. 또 미국에 살고 있는 두 명의 언니들은 아픈 엄마도 뵐 겸 나도 볼 겸 본가에 다녀가며 나를 챙겼다. 큰언니의  아이들은 나와  9살 11살 나이차이로 직장인들이고 조카라기보다는  동생과 맞먹는 사이였다. 그런 조카가 평소 자신이 아끼던 카디건도 보내오고  친절하고 애교 있게 나를 위로한다. 큰언니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전화하던 걸 하루에 한 번은 꼭 전화를 해 건강에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주는 보호자인 사랑하는 남편! 왜 우스갯소리로 '남의 편이라 남편'이라고 하는데 내 남편은 내편이다. 수술 후 왼 손을 안 써야 하니 남편은 내가 하던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 평소 아이들 등교와 아침밥 챙기는 것, 빨래 돌리기와 청소, 저녁밥 만드는 것은 내가 하던 일이다. 오후에 일을 하는 나는 오전시간이 여유로워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기 쉬웠다.

 그리고 집안일은 내게 익숙하고 쉬운 일이었다. 그에 비해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저녁에 귀가해 함께 밥을 먹고 설거지 정도만 거들었었다. 왼쪽 팔을 조금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거의 3주가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남편은 늘 분주했다. 내 병원 진료때마다 거의 함께 가주었고, 직장 다녀와서는 저녁준비에 밀린 설거지와 집안일을 했다. 아이들까지 챙기고 나면 밤 10시. 남편은 침대에 누우면 체면에 걸린 듯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남편은 침대에 눕기 전 무릎 고 기도를 드렸다. 들리진 않지만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기도를 하는지.

분명히 난 당신 덕분에

긴 항암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 거다.

아프면서 더욱 소중해진 남편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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