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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헉죄송 Feb 25. 2020

동물의 행복이 무언지 모르겠지만 훈이 형의 마음은..上

한국 우프 후기, CB_108

돼지가 복숭아를 맛있게 먹고 있다.

5번째로 찾은 농장 CB_108은 젊은 나이에 귀농을 한 부부, 어린아이로 구성되어 돼지를 기르는 일을 중심으로 하는 농장이었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남편 분을 훈 목부(牧夫), 아내분을 연 목부, 어린아이를 아이 목부라고 칭하고자 한다.

약속한 대로 버스터미널에서 훈 목부님을 처음 만났다. 그을린 탓도 있겠지만 타고난 것 같기도 한 구릿빛 피부, 흉곽이 특히나 잘 발달되어 있는 건장한 체격, 멋을 부렸다기보다는 바빠서 자르지 못한 듯한 긴 머리의 조합이 묘하게 간지 나는 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무뚝뚝함이었다.

큰 환영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호스트님들과의 첫 만남에서 겪어보지 못한 무뚝뚝함이었다. 약간 당황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인사, 의례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도시 샌님적인 성질이다..'

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또한 표정이 무뚝뚝하다기보다는 무꺼풀이다 보니 무뚝뚝해 보이는 탓도 있는 듯했다.

어쨌든 간에 말을 많이 하시는 분은 아니었다. 터미널로부터 농장까지의 긴 길을 말없이 이동했다.

'무뚝뚝'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말이나 행동, 표정 따위가 부드럽고 상냥스러운 면이 없어 정답지가 않음'이라고 나온다. 사람 일 참 알 수 없다. CB_108에서 우프를 하는 동안, 나는 이 무뚝뚝한 사람으로부터 굉장히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약간은 서글퍼지기까지 하는 정다움을 보았다.

동물 복지란 무엇일까? 그 실존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동물과는 너무도 다른 인간이 인간의 이성과 언어로 동물의 행복을 논하는 것은 뭐 하는 걸까? 이러한 논의는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나를 CB_108로 이끈 것은 이러한 의문이었다.

현대적 농업 생산 체제 하에서는 농사라는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하는 생산 행위가 지구라는 인간 생활의 터전을 파괴한다는 아이러니가 나에게는 참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다면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할까?라는 고민 속에서 "미친 농부의 순전한 기쁨"이라는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 태양 -> 땅 -> 풀 -> 동물 -> (태양) -> 땅 -> 풀 ]이라는 자연의 에너지 순환 원리를 농사에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자연에도 이롭고 인간에게도 이로운 농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었다. 관성적으로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 환경 파괴적인 현대 농업 생산체제를 이끄는 거대 농기업, 농부와 음식물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않는 소비자, 인간은 자연을 해치는 존재이니까 인간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연주의자 등..

단순한 비난이었다면 '참 불만 많은 백인 아저씨네' 하고 넘어갔겠지만 저자의 주장 및 비판은 직접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경험적 근거에 뒷받침되고 있었다. 여타 농장과는 달리 비료, 농약, 항생제, 사료 등에 의존하지 않는 저자의 농장이 오히려 질 좋은 계란, 닭고기, 돼지고기 등을 더욱 많이 생산하고, 처음에는 척박했던 농장의 땅들이 자연의 순환과정을 거듭함으로써 점점 윤택해져갔다고 한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관심 있던 내용 덕이기도 하지만 저자 자체가 좀 재밌는 사람이었다. 엄청난 활기와 자부심이 글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져 오는 사람이었다. 좋은 농사를 짓고자 엄청난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을 기반으로 한 단단한 자부심을 읽어나가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저자의 자부심을 따라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딱 한 가지 지점에서 걸렸다. 저자는 자신의 농업이 '닭을 닭답게, 돼지를 돼지답게, 소를 소답게' 기름으로써 동물에게도 행복한 농업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동물 복지나 동물의 행복에 별 관심이 없었다. 물론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학대받고 있는 동물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인간과 동물의 의사소통 체계가 다르고, 개인적으로 육식을 끊지 못하는 이상 동물 복지의 문제는 크게 와 닿지가 않았다.

저자가 운영하고 있는 농장의 동물들은 공장식으로 사육되고 있는 다른 동물들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것 같긴 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이 동물들은 행복할 거야'라고 단정 짓듯이 말하는 것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물론 저자는 나보다 훨씬 더 자연에 대해 훨씬 깊은 통찰을 갖고 있고, 동물들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별 관심 없었던 동물 복지가 궁금해졌다.

이는 실상 별로 관심이 없었던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동물에 공감을 하고 연민을 하기보다는 단순히 동물 복지, 동물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실존이 궁금해졌을 뿐이었다.

동물 복지란 무엇일까? 그 실존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동물과는 너무도 다른 인간의 이성과 언어로 동물의 행복을 논하는 것은 뭐 하는 걸까? 이러한 논의는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방문한 CB_108에서 결국 답을 찾진 못 했다. 다만, 돼지한테 잘해주고 싶어서 열심히 애를 쓰고 자신이 충분히 잘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해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감탄과 탄식을 했다.

동물의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의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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