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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헉죄송 Feb 26. 2020

동물의 행복이 무언지 모르겠지만 훈이 형의 마음은..中

한국 우프 후기, CB_108

처음에 무뚝뚝하 느껴졌던 훈 목부님은 함께 지내고 일하다 보니 묘하게 소년 같은 분위기가 는 사람이었다. 어려 보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순한 느낌이 있었다.

훈 목부님도 연 목부님도 동물을 워낙 좋아해서  귀농귀촌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동물을 좋아해서 귀농귀촌을 한 두 사람이 꾸려나가고 있는 CB_108의 돼지들은 잘 지내는 듯 보였다.


CB_108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돼지의 특징 중 하나는 무척 빠르다는 것이었다. 선입견과는 달리 돼지의 체지방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재빠른지는 몰랐다.

좁은 공간 안에 갇혀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여타 농장의 돼지들과 달리, CB_108의 돼지들은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간에 풀려 있어 열심히들 뛰어다녔고 엄청들 빨랐다.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쉬고 싶을 때는 햇볕을 받으며 늘어지곤 했다. 그렇게 느긋하게 있는 돼지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넓은 공간은 돼지들에게 있어 다른 면에서도 큰 장점이었다. 본래 돼지들은 깔끔한 성격이라 화장실 영역을 여타 생활 영역과 구분해서 두기를 선호한다고 한다.

돼지들에게 주어진 공간이 좁다면 그렇게 할 수 없을 테지만, CB_108의 돼지들은 따로 화장실 영역을 구분해 둘 수 있었다. 정신없이 놀다가 꼬박꼬박 화장실 가서 용변을 보는 모습은 좀 신기했다.


CB_108에서 또 달리 알게 된 것은 '진흙 목욕'이란 것이었다. 이는 일종의 돼지의 몸단장이기도 하고, 그저 좋아서 하는 행동이기도 한데, 말 그대로 그냥 진흙 웅덩이에서 뒹굴며 목욕을 하는 것이다.

운동장 한가운데에는 훈 목부님께서 만들어 둔 물웅덩이가 있어서 돼지들은 곧잘 그곳에서 뒹굴거리곤 했다. 돼지의 표정이나 언어를 읽을 수 없긴 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저렇게까지 자주 뒹구는 걸 보면 진흙 목욕이 좋긴 좋은가보다 싶었다. (진흙 목욕을 할 수 없는 환경의 돼지들, 좁은 공간 안에 갇혀 있는 돼지들은 심지어 자신의 배설물에서라도 뒹굴려 든다고 한다.)

그리고 CB_108의 돼지들은 잘 먹었다. CB_108에서는 돼지들에게 시판 사료가 아닌 호스트님 부부가 여러 연구 끝에 직접 만든 사료를 주고 있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잘 섞은 다음 잘 섞은 다음 한동안 발효를 해서 완성시키는데 발효가 마친 뒤에는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났다.



사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자라나는 풀들 중 돼지들이 좋아하는 종류의 풀을 베어서 주기도 하였다.(호스트님 또한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미친 농부의 순전한 기쁨"을 읽으신 분이셨다. 호스트님의 말씀으로는 처음에는 농장 주변에 쑥밖에 자라지 않았는데 자연의 에너지 순환 원리를 참고하며 농장을 운영하다 보니 책에서 본 것과 같이 땅이 점점 살아나면서 다양한 풀이 자라나게 되었다고 했다.)



CB_108의 돼지들은 수제 사료와 풀을 넘어 과일까지도 먹었다. CB_108에서는 복숭아 농사를 작게 짓고 있었는데, 돼지들은 거기서 나온 복숭아들을 맛있게 먹었다. 과즙이 터져 나와 새어 나오는 모습과 소리는 정말 재미있었다. 개인적인 즐거움이 있기도 했다. 어느 정도 자란 돼지들은 복숭아를 통째로 주어도 잘 먹었지만 새끼들은 잘 먹지 못했다. 그래서 새끼들에게는 따로 조금씩 잘라서 주었다.




새끼들은 겁이 많아서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어미 돼지 곁으로 가 숨어 있다가 맛있는 조각 복숭아가 떨어지면 조금씩 다가와서 먹었다. 그 모습이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다른 존재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충만한 일일 줄이야!


하지만 그러다가도 내가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다시금 도망쳤다. 새끼 돼지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맛있게 잘 먹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 더 컸기에 복숭아를 준 뒤에는 잠깐만 보다가 멀리 떨어졌다.

CB_108의 돼지들은 잘 지내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잘 지내는 데에는 확실히 사람의 노동이 많이 필요했다. 돼지들이 뛰어놀 공간, 화장실 공간, 진흙 목욕을 한 공간을 갖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울타리를 보수하고 땅을 갈아엎어 주어야 했다.



지내는 동안 나도 거들었는데, 힘든 일이었다. 한 번 울타리를 박을 때 엄청 튼튼하게 박아 두다 보니 이를 수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공들여 뽑고 공들여 다시 박았다. 그리고 땅을 갈아엎을 때는 중장비를 사용하긴 하지만 세세한 작업에는 인간의 힘(=엄청난 삽질)이 필요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작업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 있었다. 돼지들이 워낙 겁이 없었다. 작업을 하고 있으면 사람에게 하도 들러붙었다. 진흙 목욕하다가 와서는 곧잘 부비부비거렸다. 갑자기 엉덩이가 축축해지는 경험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쨌든 작업은 즐겁게 했다. 훈 목부님께서 내가 일을 잘 거든다고 칭찬해 주셔서 엄청 기분이 좋았다.)

돼지들을 먹이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돼지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해졌지만, 어쨌든 일은 일이었다. 발효까지 고려하여 제때제때 사료를 만들어두어야 하고, 필요한 재료들을 잘 수급해두어야 했다. 풀들을 농장 여기저기서 열심히 베어와야 했다.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사실 사료를 만드는 일, 풀을 베어주는 일 등은 시판 사료를 줘버리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앞선 일들도 마찬가지로 돼지들에게 뛰어놀 공간, 화장실 공간, 진흙 목욕을 한 공간을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약간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돼지들에게 조금 더 무감해지기만 하면 금 덜 힘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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