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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헉죄송 Oct 11. 2019

죽어있는 닭, 덤벼드는 닭, 알 낳는 닭, 여러 달걀

우프, 한국 우프, GG_105

농장에서 지낸 지 2~3주쯤 지났을 무렵 새로운 우퍼와 직원이 농장에 왔다. 기본적으로는 양 선생님께서 일을 알려주셨지만 양 선생님께서 안 계실 때에는 내가 조금씩 알려주기도 했고, 가끔씩은 내가 그 날의 작업 반장(?) 노릇을 하기도 했다. 달걀도 제대로 못 걷던 초기랑 비교하면 한 명의 일꾼으로서 엄청난 발전이었다. 하지만 닭의 세계, 살아 있는 동물을 대하는 농장일의 세계는 넓고도 넓었다.

농장일 조금 몸에 익혔다고 까불랑 말랑 하는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시련은 죽은 닭을 마주하는 일, 닭의 사체를 뒷수습하는 일이었다.

강아지, 고양이, 닭, 산양 등 살아있는 동물을 대할 때에는 이들을 만지는 게 이들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거 같아 조심스럽고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닭의 시체는 그냥 비위가 상해서 만지기가 싫었다. 상냥하신 양 선생님께서는 힘들면 무리해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주셨지만, 그래서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닭의 사체를 마주하는 이 일을 반드시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많은 닭과 달걀을 먹어 온 사람으로서, 나아가 농장에서 일하며 닭과 나름대로의 교감을 한 사람으로서, 유기농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부족하긴 하지만, 나름대로는 매우 진지하게 이 일에 임했다. 닭 한 마리 한 마리를 묻을 때마다
'지금은 인간으로 태어난 내가 경제 동물로 태어난 너희를 이렇게 묻고 있지만 이후의 많은 삶을 돌고 돌아 우리가 입장이 바뀌어 만나게 된다면 그때엔 너희가 나를 묻어주렴..' 하는 인사와 짧은 묵념을 했다.

무슨 일이든지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편안해진다. 하지만 이 일은 좀 달랐다. 하다 보니 편해지기는 했는데, 편해진 스스로를 보는 게 불편했다. 죽은 닭을 담백하게도 아닌, 담담하게도 아닌, 기계적으로 보고 있는 듯한 내가 싫었다. 지나친 스트레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자기 보호 작용인가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간에 이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이 순간에 집중하고, 닭에게 미안하고 고마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닭의 사체를 옮길 때 한 번에 너무 많이 옮기지 않도록 하고, 작업이 길어질 때는 중간중간 반드시 의식을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 그래도 짧지 않았던 의례가 좀 더 길어져 버렸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애쓴 스스로가 기특하기도 하지만 얼른얼른하는 것에 비해 작업효율이 떨어지긴 떨어졌겠구나 싶다. 그리고 그랬던 나를 믿고 일을 맡겨 주신, 스스로 여러 고민을 하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호스트님과 양 선생님이 다시 한번 떠오르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스스로 말하기는 좀 머쓱하지만 이때 내가 일을 열심히 하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시고 믿어 주시는 분들은 만난 건 특별히 감사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생명체를 대한다는 건 정말 넓디넓은 바다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참 별 일이 많았다. 닭의 죽음을 온전히 마주하며 묘하게 경건한 마음을 품게 되었을 무렵에 완전히 새로운 일이 또 터졌다.

여느 날과 다른 없이 닭알집(닭들이 알을 낳아두는 장소)에 기대어 서서 알을 걷고 있는데, 닭이 다리를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는 닭이 이렇게까지 가까이에 오지 않기 때문에 별 일이다 싶긴 했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수탉한테 무릎 뒤 오금을 쪼였다. 강도도 강했고 부위도 부위다 보니 그 날 하루 쩔뚝거리며 걸었다. 너무 아팠고, 놀랐다.

양 선생님께 상의해보니 그 칸의 수탉이 가끔 그렇게 사람을 공격한다고, 안 그래도 어떻게 조치를 취하려고 했다고 하셨다. 혹시 닭이 또 덤벼 들면 달걀을 담는 종이 판으로 대응하라고 말씀해주셨다.

닭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처음에 비해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그래서 닭이 또 덤벼든다면 일종의 방어권 행사로써 닭을 때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수탉으로부터 공격을 안 받는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수탉이 있는 칸에 가면 알을 걷으면서도 중간중간 뒤를 확인하며 가까이 다가오면 손을 휘저으며 멀리 가라고 경계만 했다.


그런데, 이 수탉은 정말 열 받게 하는 수탉이었다. 내가 우습게 보인 건지 점점 노골적으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칸에 들어가자마자 꽥꽥 소리 지르고 벼슬을 세웠으며 내가 가라고 하면 가는 척하다가 뒤돌면 공격하려고 다가왔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맞서 싸웠다. 종이판으로 닭을 때렸고 악다구니를 질렀다.

너무너무 바보 같은 말이지만 싸우면 당연히 내가 이겼다. 하지만 이 닭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패배를 까먹은 건지 다음 날이 되면 또 덤벼들었다. 이때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다. 닭 하고 치고받고 싸우는 것도 열 받고, 알 걷을 때마다 신경 곤두세우고 긴장하고 있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다른 칸에 가서도 수탉을 보면 덤벼들던 그 닭이 떠올라서 긴장되고 짜증 났다. 나에게 덤벼드는 닭은 실상 한 마리인데 다른 닭들도 다 보기 싫어졌다. 하나의 개체로부터 하나의 집단을 단정 지어버리는 게 굉장히 나쁜 태도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너무 짜증이 뻗쳐올라왔었다.

그래도 매일매일 싸우다 보니, 그리고 내가 이기다 보니 조금은 사정이 나아졌다. 기세 등등하던 위세가 조금씩 사라졌다. 여전히 그 칸에 가면 긴장되긴 했지만 전처럼 쌈박질은 안 했다. 정리되긴 했어도 정말 한숨 나오는 일이었다.

처음에 공격을 당하고 한참 투쟁하던 중에 그 수탉을 잡네 마네하는 얘기가 나왔었다. 농장일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그 일까지 신경을 쓰기가 어려워 유야무야 되긴 했었지만 그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러고 싶었다. 얼른 그 닭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속에 화가 많은 상태에서 화가 넘치는 그 수탉을 잡아먹었으면 내 마음속 기운이 어떻게 됐었을까? 어쩌면 화와 화가 서로를 잡아먹어 속 시원하게 해결됐을지도, 아니면 더 큰 화로 번졌을지도.. 정말 모르겠다.

내가 보지 못한 모습이 아직도 많이 있겠거니 싶지만, 농장에서 지내는 동안 닭의 별의별 모습을 많이 봤다.

한 번은 닭이 알을 낳는 그 순간을 보기도 했다. 닭알집 문을 딱 여는데, 닭이 푸드덕 거리며 닭알집 밖으로 날아갔고, 엉덩이로부터 알이 쏙 하고 빠져나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알을 낳는 장면이라기보다는 알을 낳으려던 닭이 놀라서 알이 빠져나와버린 장면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갓 나온 달걀은 따뜻하고, 약간 축축했다. 새삼스럽게 '정말 닭이라는 생명체에서부터 달걀이 나오는 거구나...'싶었다.


닭의 별의별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달걀의 별의별 모습을 많이 보기도 했다. 지내는 동안 깜짝 놀란 게 달걀은 모양이, 가끔은 형태까지도 참 다양했다. 닭이 공장의 기계가 아니란 것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도시에 살 때 평소 사 먹는 달걀이 항상 균일하니까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다.

달걀은 모양과 형태가 다르기도 했지만 딱 쥐었을 때 느낌도 조금씩 달랐다. 마치 돌멩이 쥔 것 마냥 다부진 계란도 있었고 뭔가 흐물흐물한 느낌이 드는 계란도 있었다.

양 선생님께 이런 얘기를 꺼내며 뭐가 좋은 계란이고 뭐가 나쁜 계란인지를 물었다. 선생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사실 어려운 얘기여서 잘 이해를 못 했다. 다만 그 뒤에 하신 짧은 말씀이 참 인상 깊었었다.
"계란은 계란이지.."라는 말씀이었다.

사실 이 말씀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해석이 안 되었었는데 그냥 좀 울림이 있었다. 겨울 제주도 감귤밭에서 우핑을 할 때

"귤이 귤이죠.."라는 비슷한 말씀을 다시 한번 듣고 나서야  그 뜻을 조금은 짐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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