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와 그전과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지만 그 중에 하나가 봉사활동이었다. 군입대 전까지 봉사활동에 대해 별 생각도 없었고, 학창시절 의무적으로 해야 하기에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거나 인근 복지관 같은데 가서 시키는 일들을 해나갔을 뿐이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군복무시절에 읽었던 다양한 책들을 통해서였다. 특히 그 당시 내게 큰 영향을 주었던 책이 한비야씨의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라는 책이었다. 더불어 같이 군생활을 하는 후임 중에 헌혈을 꾸준히 해나가는 동생이 있어 그에게도 영향을 받아 전역 후 헌혈도 몇번 하게 되었고, 우연히 학교 게시판에 붙은 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 내가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봉사를 하기에 말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거동이 불편하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씻겨드리고 식사를 준비하고 대접하는 일들을 해나가는 활동이었다. 주말 아침마다 무언가 뿌듯한 감정이 들어 자주 나가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 활동을 조직하고 운영해나가는 운영진들에게 동아리에 들어와 운영진을 할 생각은 없는지를 물어왔고 이왕하는거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운영진을 지원하고 운영진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운영진 활동을 하다보니 참여자들을 챙기게 되며 예전보다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낼 수 있었다. 자주 보는 사람들하고는 개인적인 친분이 생기기도 하며 말이다.
개인적인 친분이 생기다보면 절로 이성적인 감정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는 것 같다. 봉사활동을 하다 자꾸 눈에 띄는 동생이 있었고, 자주 연락을 하게 되었다. 한달 가량 넘게 자주 연락을 하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고백을 했고 다행이 내 고백을 받아주게 되면서 만나게 되었다. 아직도 그날의 풍경이 생생이 떠오른다.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 학교 앞에 있는 이디야를 가고 지하에 있는 좌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날의 기억이 말이다.
하지만 내 연애는 순탄하질 못했다. 우선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녀에게 평일에 만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자주 만나고 싶었던 나는 그래서 계절학기를 듣던 그녀를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가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겨우 데려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짧은 시간을 위해서 방학이고 계절학기도 듣지 않았던 나는 매일 같이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그녀를 기다렸다. 이렇게 일주일정도 보냈는데 내가 예전에 지원했었던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최종합격이 되었다면서 말이다. 대학생이 되기 전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국토대장정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내게는 로망 같은 것이었는데, 사귄지 10일정도 밖에 안된 상황이었다. 국토대장정을 가게 된다면 18박 19일동안 연락도 하지 못하며 떨어져야 했던 것이다. 고민이 많이 되었다. 왜냐하면 1년전에도 지원했다가 그 당시 한창 빠져 있던 활동때문에 한번 포기를 했었기에 말이다. 이번에도 포기하면 다시는 못할 것 같기에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녀에게도 이러한 이야기들을 했었고 그녀는 겉으로는 그냥 다녀오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국 나는 국토대장정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19일동안 연락 한번을 하지 못했었다. 부모님과도 연락 한번도 못할 정도로 외부 연락이 완전이 두절된 상태에서 진행이 되었기에 말이다. 완주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국토대장정을 하며 그녀를 볼 생각을 하며 끝까지 참고 완주했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차가운 반응이었고, 보고 싶어하는 나와는 달리 별로 만나고 싶어하질 않았었다. 겨우겨우 사정해서 만남을 가졌지만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금방 헤어졌다. 그리고 그 뒤로 연락을 하다 다툼이 있었고 회복하지 못한 체 그냥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헤어지고나서 1년 뒤 추석때 연락이 한번 왔었다. 추석 잘보내라는 짧은 문자가 말이다. 답장을 보내긴 했었지만 특별히 연락을 이어나가진 못했다. 그 뒤로 나는 봉사동아리에 잘 나가질 않았다. 봉사활동도 안 나가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만약 그때 내가 국토대장정을 안 갔더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랬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