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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관흠 Apr 14. 2020

내가 메이저 언론사에 들어가려고 한 것은

전역하기 직전까지도 나는 내가 예술을 할 줄 알았다.

정확히는 사진 예술을 할 줄 알았다.

맹신 같은 게 있었다.

군에서 보급 나온 '시크릿' 책을 보고 신나게 세뇌를 했던 것 같다.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나는 사진 예술을 해야겠다.


전역을 하고 바로 복학을 하지 않고

사진학원에서 일을 했다.

1년 간 치열하게 일했다. 수시와 정시를 치르며 아이들을 대학으로 보내고 나니

사진계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거 내 상황으로 예술하긴 글렀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쓸 예정)


복학을 하니 2학년. 예술하긴 글렀다는 생각을 하니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히 카메라를 업으로 하고 싶었다.

카메라를 업으로 하는 정규직이 무엇이 있을까 둘러보니

그런 직업은 촬영기자뿐이라고 생각했다. (사진기자는 언론사에서 신입을 안 뽑은 지 너무나도 오래되었기에 일찌감치 접었다.)  

다행히 사진학원에서 일한 1년 간, 나의 사진적 스킬들은 향상됐고

군인 정신도 남아있어 학점 딸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예술대학이 그렇듯 취업준비생은 거의 없었고 학점 경쟁을 할 상대도 거의 없었다.

열정적으로 순조롭게 스펙을 쌓아갔다. 


그렇게 순조롭게 시간이 흘러 2014년 4월 16일 수요일이 되었다.

3학년 포토 저널리즘 수업이었다.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시험 대신 다음 주까지 과제를 제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뭘 찍어야 할지 고민하며 교실에 도착해 앉으니 속보가 떴다.

학생들을 태운 큰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였다.

그러고는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곧이어 떴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것이 오보였다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수업이 시작됐다. 전직 사진기자였던 강사는 자랑스러운 일이라도 말하는 양 우리에게 말했다.

"방금 한 학생이 진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지금 큰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해서 아침에 나에게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하고 출발했다."

교실 안이 웅성거렸다.


나는 화가 났다.


왜 화가 불쑥 났을까?

과제로 쓰일 좋은 아이템을 뺏겼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유를 명확히 모른 채 수업을 들었다.


다음 주가 되었다.

저번 주 진도 팽목항을 다녀온 학생이 보였다.

그 학생뿐 아니라 몇 명은 진도 팽목항을 다녀왔다고 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강사는 그 학생을 앞으로 불러내며 소감을 말해달라고 했다.

(자랑스러운 제자를 바라보는 강사의 눈빛이 역겨웠다.)

그 학생은 뭐라 뭐라 말하다 목이 메더니 이윽고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또 화가 났다. 아직 이유를 몰랐다. 나는 왜 화가 나지?


수업이 끝나고 같이 수업을 듣는 선배가 나에게 와서 신문을 들이밀었다.

자신도 저번 주에 팽목항을 가서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을 어떤 신문에 투고해  

신문에 실렸다며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처음 보는 신문사 이름이었다. 내가 신문사의 이름을 자세히 보는 것을 알아챘는지 멋쩍어하며 자신도 처음 보는 신문인데 여하튼 자신의 사진을 실어줬다며 좋아했다.


그제야 내가 화났던 이유를 알았다.


타인의 죽음을 이들은 자신의 과제 거리로, 자신의 자랑거리로 생각하는구나.


2012년 종편사들이 생겨난 후의 첫 대형재난이라 팽목항은 아수라장이었다.

대형재난에서 어떠한 특종이라도 잡으려 모두가 혈안이었다.

친구가 죽었는데 기분이 어떠냐며 묻는 앵커와 유가족의 눈물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우악스럽게 갖다 대는 사진, 촬영기자들이 있었다.

기레기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퍼진 계기가 세월호 침몰 사고였다.

방송사들로도 모자라 각자 자신의 명분을 가진 어중이떠중이들도 몰려들었다.

단지 자신의 중간고사 대체 과제를 위해 머나먼 팽목항으로 떠난 학생도 있었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은 야차로 변하여 셔터를 눌러댔다.


나는 중간고사 대체 과제로 그 해의 지방선거에 초점을 맞췄다.

애도의 분위기를 갖고 조용히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주제로, 한 후보의 하루를 쫓아다니며 촬영했다.

팽목항을 갔다 온 학생들의 고득점이 예상되는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애도였다. 

과제 하나를 위해 인간성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메이저 언론사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진짜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야차가 돼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중에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언론사로 들어가자.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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