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킹의 오리엔탈리즘적 광고에 대하여
스스로 유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뉴질랜드의 햄버거 매장에 가서 젓가락으로 햄버거를 먹으면 된다. 본인이 서양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겠지만 동양인이라도 한번 시도해 볼만하다. 그러나 실제로 해볼지 말지는 이후 이어지는 글을 읽고 판단하길 바란다.
최근 미국의 패스트푸드 기업 B사의 뉴질랜드 사업부가 내놓은 베트남풍 햄버거 광고가 동양 문화를 비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광고에는 서양인 남녀가 일종의 미션으로 젓가락을 이용해 햄버거를 먹는 내용이 담겨있었고, 이와 같은 광고 영상이 방영된 뒤, 젓가락 사용 문화권에서는 인종차별적 영상이며 오리엔탈리즘의 단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B사는 광고를 내리는 결정을 했지만 서양의 여론은 달랐다. 서양인들은 ‘광고는 영리하고 재미있었다.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양인들이 예민한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이며 광고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고, 오히려 광고를 재배치해야 하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동양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짧은 광고를 오리엔탈리즘의 예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단순히 서양인들의 유머로 받아들여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여기서 서양인들이 말하는 B사식 유머는 엄밀히 말하자면 풍자에 속한다. 풍자란 사회적 현상이나 현실을 과장, 왜곡, 비꼬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풍자의 대상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표현되며 이에 따라 웃음이 유발된다. B사의 광고에서 젓가락은 일반적으로 동양권에서 사용하는 젓가락과는 달리 비현실적으로 길고 굵어서 한 손에 젓가락 하나씩 쥐고 햄버거를 먹는 미션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이는 풍자에서 전형적인 과장의 표현이다. 또한 애초에 젓가락 사용 문화권에선 햄버거를 먹을 때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것을 몰랐다는 초보적 실수라고 변명하기엔 B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패스트푸드 기업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 남풍의 햄버거 광고라는 이유만으로 젓가락이란 요소를 사용했다는 것 역시 명백히 왜곡된 시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풍자는 기본적으로 부정적 대상을 희화화한다는 것이다. 광고를 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듯, 광고의 핵심은 특정 햄버거에 대한 홍보보다는 젓가락이 음식을 먹을 때 썩 유용치 못한 도구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 편하게 손이나 포크, 나이프를 사용하면 될 것을 굳이 젓가락을 사용해 힘겹게 햄버거를 먹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우스꽝스러움을 넘어 미련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는 곧 풍자를 이용하여 젓가락이 원시적이며 미개한 식(食)도구에 불과하며 서양의 포크와 나이프의 우월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서양의 여론처럼 이 대목에서 “풍자 맞다. 그런데 정치 풍자와 마찬가지로 유머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가?” 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광고가 서양인들이 말하는 유머의 한 종류로서 풍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했듯, 풍자는 ‘부정적 대상’에 대한 과장과 왜곡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변별적 관점에서 젓가락은 부정적인 것, 포크와 나이프는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문화상대주의의 측면에서 본다면 특정 지역의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미개하고 부정적이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으며, 이는 곧 한 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내포된 풍자 역시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동양과 서양은 각기 다른 식문화가 존재하며 그에 맞게 도구 역시 발달되었다. 그에 대한 결과로 현재 식사 간 사용되는 도구에 차이가 생겼을 뿐이다. 햄버거와는 반대로 면 요리를 먹을 때는 확실히 포크보다는 젓가락이 먹기 쉽고 편리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 오리엔탈리즘이다. 백 번 양보해 B사의 과한 웃음 욕심 때문에 던진 무리수라고 치더라도 이 광고가 오리엔탈리즘적이란 평가는 피할 수 없다. 베트남풍 햄버거 - 동양 - 젓가락으로 이어지는 허술한 논리 전개 방식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왜곡과 과장, 그 이면에는 자문화에 대한 절대적 우월감과 타 문화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계몽 의지가 존재한다. 젓가락 사용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젓가락은 불편하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영상에서 나오는 사람처럼 미련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이러한 생각을 고착화시킨다.
광고를 제작함에 있어 연출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광고의 소품들 하나, 출연자의 행동까지 모두 철저히 계산된 각본의 결과이며 무의미한 것은 없다. 각본에 의해서라면 B사의 광고에서 젓가락이 풍자적 요소가 가미된 유머 코드로 사용되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광고 분위기 자체도 가벼워 보이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라고 예상된다. 혹자는 젓가락이 장애나 성 지향처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사항에 관련된 것이 아닌, 개인이 선택 가능한 하나의 문화에 대한 것이기에 풍자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구화가 진행 중인 현재, 다국적 기업이 오리엔탈리즘적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내용을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광고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에는 쉽사리 '그렇다'라고 대답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B사의 광고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쳤다. 이미 햄버거는 서양인들만의 음식이 아닐뿐더러 B사 역시 동양권에서도 꽤나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임에도 동양인들의 공감을 사는 유머 코드와는 거리가 먼 풍자를 사용했다. 이로 인해 재미도 잃고 오리엔탈리즘적, 인종차별적 기업이라는 오명만이 남았다. 오히려 동양인들 중 몇 명에게서 실소(失笑)라도 이끌어 냈다면 그나마 성공이라고 위안 삼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