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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원 Jul 20. 2019

현대판 판옵티콘(panopticon), CCTV

CCTV가 개인의 심리에 끼치는 영향


 재미있는 뉴스 기사 하나를 보았다. 택배 도난율이 급증했다는 기사였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집을 비울 경우 택배를 문 앞에 놔달라고 요구하는데, 이와 같이 문 앞에 놓인 택배를 전문적으로 훔치는 범죄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단다. 이를 막기 위해 소비자들은 잠금장치가 장착이 된 무인 택배함을 설치하거나 심지어 소형 CCTV, 모형 CCTV를 설치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한 소비자가 이러한 모형 CCTV를 설치하고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글귀를 써놓은 것만으로도 택배가 없어지는 일이 많이 줄었다고 이야기했다. 이 기사에서 내가 주목한 점은 택배 도난 방지책으로 위와 같은 방법을 썼다는 것이 아닌, 작동되지도 않는 모형 CCTV를 달아놓고 작동 중이라는 문구를 써 붙여 놓았을 뿐인데 택배 도난 발생률이 급감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리는 모형 CCTV가 범죄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나는 이와 같은 범죄자들의 별난 행동이 사회 심리학의 관심 주제 중 하나인 ‘타인의 존재 여부에 따른 개인의 행동 변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설명하고자 한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개인은 현재 자신이 혼자 있는가, 주변에 타인이 존재하는 가에 따라 같은 상황이 주어졌음에도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밤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노상방뇨라는 경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더라도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 한복판이라면 아무리 급해도 화장실을 찾기 마련이다. 이처럼 인간은 어떠한 행동을 함에 있어서 타인의 존재 여부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시 처음 언급했던 기사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보면, 택배 절도범들에게 모형 CCTV는 타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에겐 천장에 달려있는 카메라가 작동이 되는지 모형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절도 행위를 저 카메라 너머의 누군가가 보고 있을, 혹은 절도 행위가 녹화되어 중요한 증거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만이 그들의 심리 상태를 지배한다. 결국 남의 택배를 마치 자기 것인 양 가지고 도망치던 전문 절도범들은 CCTV 속의 타인과 마주하고 돌아서는 행동을 선택한 것이다.

 이밖에도 여성이 혼자 사는 집과 같이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장소나 자전거 보관소 등의 도난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에서 모형 CCTV는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모형 CCTV는 일종의 재해석되고 재생산된 현대판 판옵티콘(Panopticon) 볼 수 있다. 제레미 벤담은 공리주의적 견해를 바탕으로 최소 비용, 즉 적은 감시자를 투자해 모든 수감자 감시라는 최대 효용을 낼 수 있는 감옥인 판옵티콘을 설계했던 것이지만, 사실 이미 벤담과 여타 다른 학자의 기본 생각에 타인의 존재 여부가 개인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사회 심리학적 이론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후 벤담의 판옵티콘 설계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형 CCTV 앞 절도범들과 같이 판옵티콘 감시탑 앞 수감자들도 자신은 타인을 볼 수 없지만 타인은 나를 보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 타인의 '시선(opticon)'에 의해 교도소 내에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억제된 것이다.

 

교도소의 감시탑과 cctv. 구형과 신형의 컬래버레이션?


 위의 뉴스 기사에서 한 소비자가 말한 모형 CCTV와 가져가지 말라는 문구만으로 택배 도난율이 현저하게 낮아졌다는 이야기와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은 타인의 존재 여부가 개인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였다. 택배 절도범과 수감자 모두 주변에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하고자 했던 절도와 탈옥을 시도했을 수 있었지만, CCTV와 판옵티콘 원형탑으로 대체되는 타인의 시선과 그 시선을 인식함, 즉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식에 따라 범죄 행위를 포기하게끔 강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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