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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May 07. 2023

36. 대지 (1930)

소련 몽타주 영화의 걸작 중 하나

감독. 알렉산드르 도브첸코

출연. 스테판 쉬쿠랫, 셈욘 스바센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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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무성영화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지 못했고, 보지도 못했을 작품이다. <대지>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프세볼로트 푸도프킨과 함께 소련 무성영화를 대표하는 세 거장으로 꼽히는 알렉산드르 도브첸코의 대표작이다. 다른 두 감독과 비교하여 도브첸코 감독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바가 없어서 영화 감상 전에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조금 찾아보았다. 우크라이나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도브첸코 감독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1917년 혁명 후 볼셰비키 당원이 되어 급진적 정치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베를린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미술 공부를 진행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며 잠깐 동안 정치 풍자 만화를 그리기도 하다가 1920년대 중반부터 영화 연출을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 때문인지, <대지>는 우크라이나의 농촌을 무대로 혁명 과정에서 발생한 농민들과 지주 사이의 갈등을 그려냈다. 당시 소련은 농장 집산화 정책을 강제 시행하였는데, 영화는 개인 소유 농장이 국영 집단 농장으로 대체되며 자기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의 반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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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포템킨> 외의 소련 무성영화는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감상하는 내내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영화 전반적으로 소련 몽타주 영화 기법의 특징이 짙게 나타나면서 등장인물이 분명 같은 공간과 시간에 존재하지만 흐름이 끊기듯 교차 편집되어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같은 인물의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보이는 연출의 의도는 이해가 갔으나, 조금 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러한 형식적인 특징이 너무나 두드러졌기 때문에 스토리에 집중하느라 오히려 굉장히 집중하며 감상할 수 있긴 했다.


이 작품에서 형식적 특성보다 눈에 들어왔던 것은 서정적인 이미지이다. 도브첸코 감독이 미술을 공부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간중간 삽입된 자연 이미지들이 상당히 아름다웠고, 인물을 롱 숏으로 촬영한 몇 장면에서 회화적 이미지의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 특히 이런 장면들은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보이도록 할지 굉장히 공들여 찍은 것 같았는데 영화에서 심미성이 가장 돋보이던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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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물 클로즈업 장면의 반복 후 한 노인이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힘 없이 누워있는 노인을 비춘 후, 그를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는 다른 등장인물을 짧게 교차 편집하여 배치하였다. 노인이 죽은 후 화면이 전환되어 화난 등장인물을 교차로 보여준다. 피터는 집안의 가장으로, 아들 바실리와의 대화에서 농촌 집산화 정책으로 힘들어하는 그들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피터는 트랙터를 얻어 지주로부터 다시 땅을 되찾으려는 바실리의 계획에 크게 염려하지만 결국 아들의 고집을 이기지 못한다. 얼마 후 바실리는 그의 계획대로 트랙터를 얻어 와서 다른 농민들과 함께 기계화 농업 생산을 시작하며 생활이 나아진다. 하지만 바실리는 밤거리를 걷다가 지주 세력으로부터 살해당하고, 이에 분노한 피터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들의 장례식을 빌미로 한 시위대를 이끌며 지주에게 저항한다.


앞서 언급했던 자연 이미지 외에 농민들이 곡식을 수확하여 빵을 생산하는 과정을 표현한 장면들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공장 기계 부품 등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찍으며 미적 요소를 강조하였고, 곡식이 흘러내리고 반죽되는 과정을 긴 호흡으로 나타내어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화면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배경음에 맞춰 ‘말 – 상자 – 천’이 동일한 움직임으로 춤을 추는 듯한 연출은 풍족한 생활에 기뻐하는 농민들의 감정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항하는 농민들의 무리를 마치 전쟁터에 출격하는 군사들 마냥 스펙터클하게 연출한 것도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감정의 최고조를 여실히 느낄 수 있던 부분이었다. 딱딱한 형식 위에 이와 같은 인상적인 연출이 영화 곳곳에 존재했던 덕분에  장면마다 어떠한 화면을 보여줄지를 궁금해하며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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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자체는 ‘지주에 저항하는 농민들의 모습’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긴 영화는 아니지만 많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이미지를 선보이기 위해 억지로 러닝타임을 늘린 느낌이 없지 않았다. 몽타주 기법이 아닌 고전적인 방식으로 연출했다면 내용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치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처음 볼 때와 같은 어색한 느낌과 같은데, 지금은 익숙해져 즐길 수 있게 된 것처럼 소련 몽타주 영화도 몇 번 더 접하다 보면 익숙해질 순간이 올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동유럽 영화에서 보이는 특유의 차갑고 무뚝뚝한 감성이 과거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점이 흥미로웠다. 그 이유가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 보아도 당황스러운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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