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 감독의 초기 무성영화 작품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이보 노벨로, 마리 얼트, 아서 체스니, 말콤 킨, 준 트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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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초기작 중 하나인 <하숙인>은 무성영화의 연출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히치콕 감독 특유의 미장셴이 굉장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현기증>, <싸이코>, <새> 등의 작품을 보면 오프닝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시각 효과가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 또한 비슷한 시기 개봉한 다른 작품과는 달리 시작부터 푸른 조명을 사용하고, 기하학적 도형을 활용하며 그만의 독특한 미적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히치콕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한 채 감상을 시작하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아졌다. 1927년은 이미 유성영화 상영이 시작된 후의 시점으로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많은 유성영화 작품이 제작되었는데, <하숙인>도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따라간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그의 1900년대 중반 작품에 익숙해져 있다가 무성영화 작품을 보니 색다른 기분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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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인>은 추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가운데 하숙집을 찾아온 남자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범인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내내 범인으로 추정되던 남자는 사실 전혀 무고한 인물이었다. 남자의 등장 전까지 살인 사건을 다룬 기사와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주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하숙집에 남자가 처음 찾아왔을 때 긴장감 있는 연출과 음악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관객이 남자를 수상한 사람으로 인식하게끔 이끈다. 하숙집의 딸이 금발이라는 설정도 화요일 저녁마다 금발의 여성을 살인하는 범인의 범행 특징과 연결되어 묘한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하숙집 2층에 머물게 된 그는 오자마자 자신의 가방을 캐비닛에 감추고 벽에 붙은 여성을 초상화를 보이지 않게 뒤집어 놓는 등 예민한 성격을 보인다. 하숙집의 주인 어머니 또한 그런 그를 계속해서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숙집에 자주 찾아오는 것으로 보이는 경찰 청년은 딸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하숙집에서 남자를 만난 이후로 그를 예의주시하게 된다. 특히 2층에서 그가 걸어다닐 때 그에 맞춰 위태롭게 흔들리는 천장의 전등을 바라보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영화는 이러한 연출을 반복하며 노골적으로 그가 범인이라고 말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결과적으로는 남자의 이상 행동은 맥거핀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맥거핀은 영화 등의 줄거리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서 관객의 주위를 끄는 일종의 트릭이다. 남자의 행동 중 일부는 영화 후반부에서 그의 사정이 드러나며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끝까지 설명하지 않은 기이한 행동들은 맥거핀으로서의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히치콕 감독의 여러 작품에 이미 익숙해져 있던 나는 사실 영화가 남자를 집중해서 비출 때부터 범인은 아닐 것이라고 예상하였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의 판단이 옳았는지를 비교해가며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역시 히치콕 감독은 초기 작품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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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감독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여 조금 지루한 느낌이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탁월했던 음악의 사용이 아닐까. 오히려 유성영화 시기의 영화들은 대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음악이 크게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 것 같고, <하숙인>이 <싸이코>만큼의 음악적 만족감을 느낀 히치콕 감독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관객이 필요한 감정을 적재적소에 느낄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하여 음악을 삽입했을 히치콕 감독의 모습을 떠올리면 경외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의 작가적인 성격상 유성영화의 도입을 두 팔 벌려 환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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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그의 영화라 설레는 마음으로 감상하였고, 역시 훌륭한 감독은 초기 작품부터 뚜렷하게 독창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원했던 결말은 사실 영화와 같은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고 전해지는데, 원래 계획한 대로 제작했다면 분명 더 훌륭한 작품으로 기록되지 않았을까. 영화사 가장 중요한 감독의 초기작을 좋은 기회로 감상할 수 있어서 뜻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