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한달살기를 3일 만에 포기하고 급하게 숙소를 구해서 오게 된 곳은 동해시였다. 속초 숙소에서의 실망으로 여행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 상태라 동해에 관한 어떤 정보나 기대도 없었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성수기치고 합리적 가격의 오션뷰 아파트가 있길래 묻고 따질 것 없이 남편을 따라나섰다.
동해시로 들어서니 거리가 한산해서 마음이 편해졌다. 숙소가 가까워지자 특이한 수형의 이국적인 가로수가 눈길을 사로잡더니, 내리막길을 달리니 길 끝의 바다가 높게 솟으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푸른 자연을 가진 새 동네 첫인상에 마음이 풀렸다.
집은 거실 가득 바다를 품고 있었다.
바다를 품은 거실
“여보, 좋은데~잘 골랐다.”
남편을 칭찬하고 밖으로 나왔다. 큰길을 건너면 바로 해변인데 무장애 데크길이 깔려있어 산책하기 그만이었다. 바다를 따라 걷다가 질리면 해변을 따라 조성된 소나무 길을 걸으며 솔향을 깊이 들이쉬었다.
동해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이곳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해 질 녘이 되면 자주 해변으로 나갔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산책하다 보면, 나도 관광객이 아닌 주민인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깨끗한 바다는 "여기 너무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무척 마음에 들었다. 클래식을 틀어주는 조용한 바닷가 산책길, 석양에 따뜻한 색감의 바다와 하늘을 보고있으면 ‘나 잘살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함이 온몸에 퍼졌다.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나만 알고 싶은 그런 해변이었다.
한섬해변
숙소에서 동쪽으로 길을 건너면 바다가, 서쪽으로 올라가면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의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으며 한가로이 오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공원을 지나 5분쯤 더 걸어가면 제법 큰 병원, 쇼핑거리, 식당 등이 즐비했고, 숙소 인근에는 대형마트가 2개나 도보권에 있어 장보기가 편리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나의 놀이터, 시립 도서관도 있었는데 크고 깔끔했다. 자주 가는 한살림, 좋은 재료를 쓰는 김밥집(김밥러버❤)까지 인근에서 발견하고선, 동해시는 한달살기는 아쉽고 1년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여름엔 덜 덥고 겨울엔 덜 추우면서 미세먼지도 덜하다니 살기 딱이었다.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갖추어져 있으며, 생활에 필요한 장소 모두 도보로 가능한 곳이었다.
오랜만에 부동산 앱을 열어 동해시 천곡동의 매물을 알아보고, 관심 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하트를 꾹 눌렀다.
한달살기는 보물 찾기와 닮았다.
언젠가 제주 한달살기를 다시 하게 된다면 망설임 없이 갈 지역을 정할 수 있게 되었고, 여름 최고의 여행지와 숙소도 알게 되었다. 이번엔 1년쯤 살고 싶은 곳까지 발견했다. 국내 한달살기 여행은 나를 알아가고,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알아가는 보물찾기 같은 여정이다.
속초에서의 사건이 없었다면 동해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곳의 매력을 알 수 없었을 테지. 동해 여행은, 안 좋은 일이 꼭 나쁜 결말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는 기존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긴 한달살이 여행을 마친 후 우리 부부의 '살고 싶은 곳' 리스트 제일 첫 줄에 ‘동해’를 적어 넣으며 동해시 열흘살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