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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4. 2024

거제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여행 중 숙소 눈이 높아지면 생기는 일

11월 여행지를 전라도로 정하고 숙소를 찾다가 우리 부부는 난감한 표정이 되어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금 살고 있는 거제의 숙소가 컨디션은 훌륭하면서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거제도에 왔던 8월 말, 숙소 입주 날짜가 안 맞아 펜션에서 2박을 했었다. 사장님께서는 펜션과 함께 장기 숙소를 운영하는 분이었는데, 우리 부부를(특히, 남편을 ㅋ) 좋게 보신 것 같았다. 거제에 한달살기 왔다고 말씀드리니, 10월에도 계속 있게 된다면 본인의 집에서 지내면 어떻겠냐며 어필하셨다.

"우리 집에서 이런 부부가 살면 난 딱 좋겠어."

원한다면 미리 집을 봐도 좋다고 하셔서, 가벼운 마음으로 알려주신 주소로 찾아갔다.


비밀번호를 찍고 문을 열었더니, 방 4개에 화장실 2개, 4인용 리클라이너 소파를 갖춘 널찍한 거실, 팬트리와 드레스룸이 딸린 깔끔한 집이 나왔다.

"이야~~. 둘이 살기엔 아까울 정도로 크다. 그런데 여기가 그 가격이라고?"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머물던 숙소와 비교하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좋은 집이었다. 직접 보았기에 숙소 플랫폼에 올린 사진빨에 속을 위험도 없었고, 숙소 예약 후 생각보다 별로이거나 예상 못한 변수가 있을까 봐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정도 평수집에서  식구가 살 것 같지는 않아, 여행 중 큰 집에서 한번 살아보자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좋은 기회를 날리는 게 아까우니 10월에도 거제에 있자며 남편과 나는 마음을 맞추었다.

 

준신축의 넓은 집, 여유로운 지하주차장, 무료 헬스장과 골프연습장, 맑은 산 공기는 덤.

이 모든 혜택을 직거래로 120만 원/월(공과금, 관리비 등 모두 포함)에 계약하였다.


10월의 집

평소에 나는

 "난 큰 집 필요 없다. 청소 힘들어, 관리비 많이 나가. 무슨 낭비야. 싫어."

수없이 외쳤으면서, 새 숙소의 현관을 들어설 때면

 "여보, 우리 부자 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올라가는 광대로 기쁨을 표시한다.


'우리 운도 좋지~.'

10월엔 그저 좋았다. 그런데 11월이 다가오니 같은 이유로 난감해졌다.


"우리 어쩌냐. 눈이 높아져 이제 아무 데도 못 가게 생겼다."


때마침 숙소 사장님께서 1달 연장하면 숙소비 10만 원을 깎아주겠다는 제안을 해 오셨다. 솔깃했다. 이 가격에 이런 집은 전국에 없을 테다.

"우리 1달 더 있을까? ㅎㅎㅎ"

10만 원의 유혹이 달보드레했다.

"나쁠 것 없지! 확 그래 버릴까?"

이때만 해도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부르르르. 같은 번호에서 한 번 더 문자가 왔다. 만약 2달을 더 있으면 20만 원을 깎아 100만 원에 세를 주겠다고 하셨다. (부부 동공 지진) 10만 원에도 흔들렸던 우리였는데 20만 원씩 2달, 총 40만 원짜리 유혹은 심히 달콤했다.  


문자를 받고 나서 갑자기 나와 남편은 경쟁하듯 이곳의 장점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거제도 해안 도로는 여전히 볼 때마다 기분 좋고, 나의 정서적 가족인 외가와도 멀지 않은 데다 곧 추워질 날씨를 생각하면 이만한 곳이 없지 싶었다. 두 사람 운동 비용 아끼는 것만 해도 얼마이고, 2달이 아니고 3달 있겠다 하면 더 깎아주실지 모른다며 김칫국을 둘러 마시기도 하였다.

  

남편은 여기 있는 동안 타 지역에 방문했다가 거제에 다시 돌아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고 푸근하다 하였다. 그건 나도 그렇다. 현지인 이웃님 덕분에 맛집도 많이 알게 되었고, 드물게 숙소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곳을 만났는데, 굳이 다른 데 갈 필요가 있겠냐로 대화가 이어졌다.


잠시 고민 끝에 내가 입을 열었다.

"인정! 맞아, 이 조건을 다 갖춘 곳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그런데... 큰마음먹고 시작한 여행인데 여기서 멈추는 것 같아서 좀 그렇다."


남편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더, 이곳에 머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여행은 여기 살면서도 할 수 있지. 여기서 아낀 숙소 예산으로 전라도 1주일 살기, 경상도 타 지역 1주일 살기 이렇게 여행할 수 있잖아."


하긴, 남편은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애초에 내 뜻에 따라준 거였지. 올해 내내 나는 신이 났어도 그는 새로운 지역, 새 집에 적응하느라 꽤나 애먹었고. 이번엔 내 욕심을 줄이고 남편 마음이 편해지는 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

 

거제를 떠나고 싶은데 떠나지를 못하겠다.

리의 거제 한달살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 미리 계획한들 그리 되지 않을 테니 그때 봐서 정하려 한다.


대문자 J 아내와 대문자 P 남편.

나는 예전엔 어떤 일이건 계획에서 틀어지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남편과 살면서 '이 또한 재미있구나!'를 배워간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두 사람의 만족도 합이 높으면 좋은 거지 뭐.


상반기엔 한달살기 여행이었다면, 하반기는 여행 속 여행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몸은 덜 힘들고, 비용은 덜 들며, 스트레스마저 덜 할 테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거제 해안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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