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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12. 2024

무모함에 대하여_40대 파이어족 부부의 변명

누군가로부터 무심결에 튀어나온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무모한 부부”

‘무모한’의 사전적 의미는 ‘앞뒤를 잘 헤아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아차 싶으셨는지 그는 바로 말을 수정하였다.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있으나, (중략)”      


나와 남편은 서로를 쿡 찌르며 킥킥거렸다.


화자를 탓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평상시 그는 단어 하나를 쓸 때도 누구보다 조심하고 배려하는 사람이며, 함부로 남을 비방하거나 상처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속마음이 너무 성실히 일하다 보니 살짝 내비쳐졌을 뿐.      



인정한다. 남 보기엔 우리가, 우리의 여행이 무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사회에서 기대하는 40대는 육체와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할 나이인데, 우린 연령대에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않고 도망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어떤 이에겐 퇴직 후 꿈으로만 여기고 미뤄둔 일인데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실천 중인 우리가 질투 나 괜히 미울 수도 있다.


당연하다. 오늘도 아침잠 뿌리치고 일어나 반갑지 않은 얼굴을 대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데, 누구는 산으로 바다로 쏘다니며 신선놀음한다니 얼마나 복장 뒤집힐 일인가. 충분히 헤아려진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다. 나는 30대에 급성백혈병에 걸려 3번이나 죽음 가까이 갔다 돌아오는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분명 지금쯤 회사의 연말 인사 명령 승진자 명단에 내 이름을 올리기 위해 열심을 다 하고 있을 것이다. 남편의 일에 미래가 있었다면, 적어도 적절한 임금인상이라도 있었다면 굳이 이런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40대 부부가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게 되었나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쩔 수 없어 나왔어요.”가 가장 사실에 가깝다. 다만 말하기 쉽고 듣기 편하게, 그리고 대화가 너무 길어지지 않기 위해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로 웃으며 대답한다. 적당히 무모하고, 적당히 부러운 대답.

어느 정도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거짓은 아니기도 하니까.     


여행을 한다고 삶의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큰 주제와 연관된 작은 이야기들로 우리 부부 사이엔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원하는 방향으로 살자는 결심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자 나는 끊임없이 투자를 고민하고 공부한다. “배당금으로 99세까지”라는 제목을 붙인 엑셀을 수없이 시뮬레이션하고 수정한다. Affirmation(긍정의 확언)을 노트에 적어 두고 자기 전 소리 내어 읊으면서 한 번씩 찾아오는 불안을 잠재운다.

 


혹자는 인생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정답’, ‘공짜’, ‘비밀’이 그렇다고 한다. 어차피 정답 없는 인생인데, 어쩌면 기존에 본인이 답이라 믿던 게 가장 오답일 수 있다는 유연한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과정이나 목표가 나와 다를지언정, 그것이 사회악이 아니라면, ‘아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조금 더 타인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모습은 달라도 다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각자의 소중한 인생을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인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만나는 지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연민과 인정이 전해질 것이고, 더 나아가 존중과 사랑이 퍼질 거라 믿는다.

    

우린 오늘도 우리 삶에서 최선을 다한다. 편안한 내면과 세상을 향한 너그러운 시선을 가지고자 노력하고, 더 많이 웃고 더 깊게 대화한다. 서로를 인격적으로 사랑하며 나를 둘러싼 환경에 감사한다.

물론, 약간의 투자수익 달성도 놓치지 않으며.

    

난 무모해지지 않기 위해 무모한 듯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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