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명소 vs. 현지인 추천
4월 둘째 주가 되자 강릉 곳곳이 하얀 꽃으로 수놓아지기 시작했다.
굳이 벚꽃 명소를 안 가고 시내 드라이브만 해도 '우와~' 감탄사를 뱉고, 이쪽저쪽 둘러보느라 고개가 바빠진다. 강릉이 이토록 벚꽃에 진심이었는지 미처 몰랐다.
이번 주 강릉에서 가볼 만한 벚꽃 명소를 소개한다.
경포호는 바다와 이어지는 호수이다. 호수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조형물이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산책에 재미를 더한다.
호수에선 낮에는 기러기떼를, 밤에는 두루미(?) 떼를 감상할 수 있다.
자동차 도로변에 인접한 호수 주변은 바람이 세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덜해진다. 날씨에 따라 바람막이 외투를 하나 준비하면 더 좋을 것이다.
낮에 가도 좋지만, 조명에 신경을 많이 쓴 곳이라 밤에 볼거리가 더 많다.
경포호 끝에는 가시연습지가 있다. 주변을 지나가다 너무 예뻐서 즉흥적으로 들어간 곳이다.
가시연습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도로 옆 인도를 걸으면서 나는 이 길을 벚꽃 4중주 길이라 이름 붙였다. 차도 양옆과 인도 양옆에 벚나무가 나란히 4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4열 벚꽃길이라니!
이런 꽃길은 난생처음이다.
현악 4중주를 들으며 이곳을 걷는다면 환상적일 것이다.
가시연습지 끄트머리에서 생태저류지가 연결되어 있다. 두세 시간 걷는 게 무리가 안 되는 사람은 경포호, 가시연습지, 생태저류지를 묶어서 걸어도 좋을 것이다. 나처럼 한 시간 이상 걷기가 부담되는 사람이라면 각각 따로 방문하는 게 낫다. 체력 떨어지면 아무리 예쁜 것도 눈에 안 들어올 수 있으니.
저류지 주변을 벚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벚꽃길 아래를 걸으면서 천 너머 벚꽃길 감상이 가능한 곳이다. 벚꽃으로 원근법을 실감하며 한 바퀴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걷다 보면 벚꽃에 포위된 느낌을 받을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포위이다.
꽃으로 뒤덮여 하얗게 보이는 야산이 있었다. 올라가 보니 벚꽃 축제가 한창인 남산근린공원이었다.
한 바퀴 도는 데에 15분 정도 걸리는 작은 공원인데 벚꽃이 빼곡히 피어있었다. 나무 아래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나눠 먹는 주민들(관광객일지도?)의 모습이 정겹고 평화스러웠다.
1~4가 이름난(= 사람이 많은, 축제가 진행 중인, 볼거리도 많은) 벚꽃 명소라면, 5,6은 현지인 추천 가볼 만한 곳이다.
산을 따라 올라가며 한쪽엔 소나무가, 다른 한쪽은 엄청나게 큰 벚꽃 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라 꽃의 양도 엄청나다.
이런 풍경 속에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뭔가 이 세상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나무의 웅장함에 압도당하는 기분도 들었다.
김밥 도시락, 책, 노트북을 챙겨서 이곳에 다시 가고 싶다. 테이블에 앉아 책 보고, 글 쓰다 눈이 빡빡하고 목이 뻣뻣해질 때 즈음 고개를 들어 하늘 한번 쳐다보면 얼마나 행복해질까? 세상 뭣이 부럽겠나.
강릉 출신 블로그 이웃님의 추천으로 강원예고에 다녀왔다. 학생들 공부에 방해 안 되게 점심시간에 살짝~
5번의 벚꽃이 압도적이었다면 이곳은 아기자기하게 눈이 부셨다. 딱 고등학생 같았다.
본인들이 예쁜 것을, 가장 예쁜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을 모르는 17~18살의 느낌이었다.
한창 감수성 풍부한 나이에 이런 뷰를 보며 등하교하면 눈물나지 않을까 싶다.
강원예고 학생들이 부러워졌다.
자연 속에서 보고 느끼며 자란 사람은 그 마음도 예쁘게 빚어질 것만 같았다.
4월, 황홀한 계절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쁜 것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지난주 말부터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던 꽃들이 화요일에 절정을 달리더니 서서히 잎을 떨구고 있다. 바람이 불 때면 꽃비가 날리고, 나무 아래엔 1원짜리 동전 같은 꽃잎이 수북하다. 짧은 만남이 아쉬워 벌써 가지 말아라. 부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렴 속으로 빌어본다.
오늘(목요일)의 벚꽃을 인생에 비유하면 몇 살일까? 30대 중후반? 그럼 모레쯤이면 내 나이대가 되려나. 모레의 꽃은 절정의 화려함은 덜해도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피어난 연두색 잎이 더해져 색감은 오히려 풍부해질 것이다. 남아있는 연분홍 꽃과 새로 난 연두잎이 조화를 이루어 그건 그 나름대로 충분히 아름답겠지.
나의 건강문제로 어쩔 수 없이 강릉살이를 보름 연장하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인생 최고의 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가족과 친지, 친구에게 물심양면 도움을 받아 지난 1~2주 사이 체력도 많이 회복되었다. 다 좋고, 오히려 좋다.
내일은 어디에서 꽃놀이를 즐겨볼까 기분 좋은 계획을 세우다 내 인생, 나름대로 참 감사하다는 고백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