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일본 국가 자격증 시험을 치고 왔다.
인사과 사원으로서, 일본에 왔을 때부터 꼭! 따고 싶은 자격증이다.
바로 노무사 자격증.
(한국식으로 노무사지만 일본에서는 사회보험 노무사라고 부른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공부는 제대로 안 했다.
일명 프로 시험접수러라고. 자격증 시험 접수할 때까지는 의욕이 넘쳐나서 접수하고 한 달 정도는 나름 열심히 공부하는데 일정 기간을 넘기면 책도 안 펴게 된다. 그리고 그 상태로 그대로 시험일을 맞이한다. 아니면 죄책감에 시험장에 아예 가질 않는다. 얄궂은 습관이다.
이번 시험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5월 말에 부랴부랴 접수를 하고 6월 한 달간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손을 놓고 그 상태로 8월 시험날이 다가온 것이다.
시험장에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시험 응시료가 워낙 비쌌기에(거의 10만 원) 용기 내서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이틀 그대로 시험을 망쳤다. 이유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올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6월까지 약 3개월간은 건강한 돼지로 잘 지냈다. 회의 시간이 다가와도 배 아픈 것도 없었고, 집 거실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팀 이동이 있고 7월부터 다시 정기적으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증상은 재발했고 이번 시험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코로나 대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킨 시험장. 100명은 족히 수용할만한 넓은 대강당에, 2인용 책상에는 1명씩 앉고, 책상 앞뒤로 2m 거리가 유지되며 대각선으로 자리를 배치했다. 내 자리는 (차라리 구석이거나 젤 뒷줄이길 빌었으나) 거의 정중앙이었다. 시험장은 정말 넓고 정말 조용했다.
입실 종료 시간이 되고, 4명의 감독관이 들어와 30분간 시험 주의사항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손에 식은땀이 났다. 일부러 입실 시간보다 한 시간 빨리 가서 화장실은 세네 번 다녀왔는데도, 갑자기 다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험 시작되면 문제에 집중하느라 괜찮아지지 않을까?
정면에서 감독관은 지금부터 화장실에 갈 수 없으며 시험 시작 후 한 시간이 지나야 퇴실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강제적으로 갈 수 없는 이 상황이 더욱 배를 아프게 만들었다.
일단 참았다.
문제지가 배포되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배는 나아지질 않았다.
펼쳐 보니 처음부터 모르는 문제가 나왔고, 당황하면서 긴장감은 더해지니, 점입가경이었다.
결국 참다 참다 30분 정도 지나서 손을 들고 감독관에게 화장실에 가도 되겠냐 물었다.
..조금만 더 있음 퇴실 가능한데, 못 참겠나요?
아..네, 못 참겠어요.
"긴급상황, 1명 화장실 갑니다" , 급히 무전을 넣는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보이지 않게 뒤로 엎어두고 자리에서 드르륵 일어나 감독관을 따라 문으로 향했다.
내 자리에서 문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이런 상황이 시험 시간 내내 반복되었다.
오전 2시간, 오후 4시간 정도의 시험이었는데 오전에 2번 오후에 2번 시험 도중 "긴급"하다며 화장실에 다녀왔다.
넓디 넓은 시험장, 정중앙에서 혼자 손을 들고 감독관이 내 자리까지 오길 기다리는 그 시간.
(감독관들도 나를 요주의인물이라 생각했는지 근처에 늘 있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시험장 문을 열고 나가기까지의 기나긴 심리적 거리.
화장실에서 돌아와, 조용한 시험장 문을 끼이익 열고 들어오며 내 자리에 앉기까지의 또 다시 기나긴 심리적 거리.
오후에는 안 되겠어서 얼른 문제를 다 풀어서 내고 중도 퇴실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거짓말같이 복통이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한 짜증, 한편으로는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가채점도 하지 않고, 나는 내년 시험을 다시 준비하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