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을 통해 물건의 본질과 나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다
모두에게 그랬듯, 코로나19 팬데믹은 군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방역수칙 미준수는 명령 불복종의 문제였다. 거주의 특수성으로 인해 방역수칙은 개인의 이동권을 통제하는 영역까지 뻗어있었다. 한 명의 간부가 주말에 본가를 다녀오며 코로나에 걸리면, 그 다음 주말은 온 부대가 같이 기침하며 격리하는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일과 후에 마트 다녀오는 것, 친구를 만나거나 커피를 마시는 일조차 통제되었고, 생필품 구매는 오롯이 택배주문과 같이 사는 가족들의 몫이었다. 자기 한명으로 인해 동료와 전우들이 겪을 피해를 걱정하며 군인들은 자신의 삶을 더 옥죄었다.
혼자 사는 간부들은 게임에 푹 빠져 살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일정 공간에 갇혀 쳇바퀴 도는 삶을 살다보면 어느 순간 우울의 먹구름이 마음에 드리우는 순간을 경험한다. 산책이나 운동도 하루이틀이지, 가족과 친구들이 너무 보고싶고 얼른 자유를 느껴보고 싶어진다. 밤이 되면 좁은 방에 모여 삼삼오오 모여 음주를 즐겼고, 그 정도가 선을 넘는 일이 빈번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술주정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나의 경우에는 물건을 많이 샀다.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 셈이다. 좋아보이면 샀다. 갖고 싶은 물건이 보인다~하면 카드를 긁었다. 처음엔 나가서 맛있는 밥 사먹을 돈 정도의 물건을 사다가 나중엔 할부도 신나게 긁었다. 후회는 카드명세서가 나온 하루면 족했다.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필요한 소비였던 것 같다. 지루한 것을 도저히 못 참는 성격인지라 일주일이면 5평 남짓의 방 구조를 꼭 바꾸어야 하는 나였기에, 당시 내가 찾은 '나'를 유지해주는 유일한 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가 어느정도 진정이 되고 위드코로나 시대가 되었다. 모두가 다시 자유로이 마트도 가고, 가족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 맛있는 밥도 먹는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을 때, 방안 가득 매운 온갖 잡동사니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책상 서랍 안에는 어찌나 잡화들이 많은지, 잘 열리지 않는 손잡이를 수차례 흔들어야 제 속을 보여주었다. 내가 이걸 왜 샀을까, 싶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버리려니 아까운, 계륵과도 같은 물건들. 하지만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당근할 것들은 당근을 하기도 마음 먹었다.
물건을 집어들고 정리를 하며 하나하나 사던 순간의 감정, 쓸모에 대한 생각, 상황 등등을 떠올려보았다. 살 당시엔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이 여전히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건이란 결국 제 기능을 꾸준히 발휘하고 사용되어야 사랑받는 존재이기에, 시간에 따라 가치가 파도치듯 높아졌다 낮아진다.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꾸준히 발휘하기란 그렇게 힘들구나 느낀다. 더불어 어떻게 하면 물건의 가치를 처음부터 냉정하고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물욕은 야식을 생각할 때 찾아오는 허기짐과 같이 잠시 다녀간다. 그 순간을 극복하려면 결국 마음이 유혹을 견뎌낼 힘이 있어야한다. 팬데믹 당시의 나는 그런 마음의 힘이 없었다. 오히려 쇼핑이 주는 도파민, 잠시의 행복에 의존하는 일종의 중독상태였다. 역설적이게도 그 중독이 팬데믹을 무탈하게 보내는 힘이 되긴 했다. 그러나 내 삶을 건강하게 설계하는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역을 준비하고 인생의 다음 단계를 설계하며 건강한 마음을 가꾸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귀찮고 물건을 그렇게 샀던 과거가 후회가 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때의 나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건강한 마음이 솟아남을 느낀다. 이제 따뜻한 동시에 중독적인 월급에서 벗어나 춥지만 상쾌한 불안정의 세계로 간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일진 모르겠지만, 미니멀리스트로 탈바꿈하여 당당한 자세로 걸어갈 나의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