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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Nov 28. 2020

스위스 제네바_ 내 집 구하기 3

그렇게 모든 서류를 보내고 나와 나에게 집을 넘겨주려는 친구 모두 부동산 회사의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마피아' 혹은 '날강도'라는 오명을 듣는 부동산 회사답게- 비단 그 회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부동산 회사들이 대부분 그렇다고 했다- 전화 통화는 되지 않고, 이메일은 무시당했고, 우편으로 보낸 서류는 잘 도착했다는 것 외에는 소식이 없었다. 


집을 넘겨주려는 친구는 이미 남자 친구와 함께 이웃 동네에 집을 구해서 2월 15일에 이미 이사를 한 상태여서, 마음이 더 급한 듯했다.  그녀가 열심히 부동산 회사 담당자를 닦달한 끝에 내 서류가 통과되었고, 부동산 회사로 계약서 사인을 하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또 2월 28일 오후에 etat des lieux (말하자면 이전 세입자와 현재 세입자 그리고 부동산 회사가 함께 아파트를 점검하는 일)을 하러 아파트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잡혔다. 계약서는 프랑스어로 되어 있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읽었다. 요는 5년 계약이고, 5년 동안 월세는 올리지 못하고 계약을 중간에 해지하려면 3달 전에 우편으로 통보를 해야 한다. 다른 특별한 사항이 없는 한, 이 계약은 같은 조건으로 다시 5년간 갱신될 수 있다, 이 정도였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게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부동산 보증금(보통 월세의 3달치)을 은행에 맡기고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인 A아줌마에게 마침내 집을 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줌마는 축하한다고 하면서도, 내심 서운해하는 눈치였다. 원칙대로라면 -물론 계약서 한 장 없는 아줌마의 불법임대이긴 하지만- 1달 전에 통보를 해야 해서 내가 1달 월세를 내거나 아니면 내가 나가는 시점과 동시에 들어올 수 있는 새로운 세입자를 내가 구해야 했다. 아줌마와 감정 상하기 싫어서  내가 새로운 세입자를 알아보기로 했다. 언제나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하는 제네바 주택사정 덕분에, 또 오고 가는 외국인들이 많은 특수성 때문에 세입자를 찾는 건 매우 쉬웠다. 회사 동료의 친구인 50대 초반인 이탈리아 출신 여자와 연락이 닿아서 그 사람이 A 아줌마와 면접을 보기로 했다. 


면접을 보는 날, 그 여자분은 집을 그리고 A아줌마를 마음에 들어했다. A 아줌마도 긍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여자분이 집을 떠나고 난 후에, 아줌마는 그녀를 탐탁지 않아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녀가 고급 보석, 시계 부티크에서 세일즈를 한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회사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문을 닫았고 그녀는 임금 체불 때문에 고용주를 대상으로 소송 중이었다. A 아줌마는 아무리 같은 이탈리아 출신이고, 말이 잘 통하는 또래이지만 현재 실업 상태인 그녀가 집세를 잘 낼 수 있는지와 출근 않고 내내 집에만 있을 가능성- 아줌마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상황-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결국, A 아줌마는 그녀에게 퇴짜를 놓았고, 1주일 뒤에 이사를 가야 하는 나는 애먼 1달치 월세를 내야 할까 봐 스트레스를 받았다. 


약간의 긴장상태가 아줌마와 나 사이에 감돌았다. 하지만 에어비엔비로 세입자를 찾았던 경험이 있던 A 아줌마는 며칠 뒤, 매년 제네바의 한 극장에서 연극을 하는 벨기에 출신 배우를 나를 대신할 세입자로 찾았다. 아줌마는 다음 세입자가 바로 들어오니 보증금을 다 돌려주겠다고 하셨다. 또 이사 가는 나에게 본인이 골동품 시장에서 산 일본 게이샤 그림을 - 내가 한국사람이고 일본 문화는 한국이랑 많이 다르다고 여러 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이사 가는 집에 인테리어 하라고 선물로 주셨다. 


그렇게 이사 갈 준비가 다 되었다. 마지막으로 집을 인수하는 etat des lieux는 어리숙한 외국인이 당하기 십상이라며 스위스인 동료가 함께 가 주었다. 내 동료는 이것저것 많이 따져가면서 여기저기 사진도 꼼꼼히 찍으면서 내 입장을 잘 대변해 주었다. 너무 작은 집이어서 둘러볼 것도 없이 일은 금방 끝났다. 나는 이사 나가는 동료에게서 그녀가 쓰던 오븐을 80프랑에 샀다. 가구를 사고 조립하는 것도 힘들어서 내심 그 친구가 가구를 나에게 팔기를 바랐는데, 다른 가구들은 다 가져간다고 했다.

아파트 열쇠를 받고, 집의 사진 몇 장을 찍어서 한국의 엄마에게 보냈더니, 엄마 왈 "인테리어가 상당히 촌스럽네. 70년대 아파트 같다..." 사실 맞는 말이다. 이 아파트는 리노베이션을 한 적이 없어서 부엌이나 욕실의 타일이나 색깔이 좀 많이 구식이긴 했다. 아파트를 찾을 때는 부엌과 욕실이 리노베이션 된 것이 내 두 번째 조건이었는데, 이러다가는 영영 집을 못 구하겠다는 조급함이 이 모든 조건을 타협하게 만들었다.  

우리집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 아주 조금이지만 쥬라 산맥을 볼 수 있는 게 위로가 된다. 

가구는 한국에는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방법도 있고, 배달도 빠르지만 여기서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1달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침대를 사고 싶었는데, 가구 공장이 이탈리아에 있어서 스위스 도착하는데 6주가 걸렸다.) 그래서 결국은 이케아에서 모든 물건과 가구를 사야 3월 1일에 입주해서 맨바닥에서 자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내 손으로 또 내 의지로 집을 꾸미고 채워본 적이 없는 나는 참 막막했다. 하지만 우연히도 내가 이사할 즈음에 미국인 친구가 나를 보러 제네바에 놀러 와 있었다. 원래 함께 이탈리아로 놀러 가려던 계획을 접고 그 친구는 이케아에서 함께 가구를 보고, 가구를 조립하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혼자 하려면 정말 막막했을 텐데, 도움이 이렇게 예상치 못한 데서 왔다.

배달된 이케아 가구 재료들. 조립이 될까 싶었는데 유능한 친구 덕분에 모두 가구로 변신했다. 

또 회사 사규를 찾아보니 이사를 하면 이틀 휴가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별 것 없는 살림이지만 이사하는 게 좀 스트레스였는데 휴가를 내고 온전히 이사에 집중할 수 있다니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스위스 제네바에 내 이름표가 달린 작은 공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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