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카 Jan 02. 2021

로이커바트_눈 구경

코로나 시국이어서 집에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 망설임 끝에 신선한 산 공기를 마시고 제네바에서는 볼 수 없는 눈 구경을 하기 위해서 칸톤 발레에 있는 온천 휴양지 로이커바트 (프랑스어로는 Loeche Les bains)에 다녀왔다. 


사실 휴가를 내서 11일의 연휴가 있긴 했지만, 여행 계획을 세울 상황이 아니었고 크리스마스 전후로 스위스에 있는 호텔들을 검색해 보니 거의 대부분 만실이었다. 칸톤 베른의 작은 산골 마을에 샬레를 빌려볼까도 생각했는데, 스키를 타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밭을 걷는 건데, snowshoeing이 초보인 내가 혼자 몇 시간씩 걷기에는 좀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로이커바트를 매우 사랑하는 친구가 연락이 와서 내일부터 며칠 동안은 호텔이 공실이 있다며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호텔 방도 각자 싱글로 잡을 수 있다면서. 온천도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 다시 열었다고 하고. 설산을 보면서 하는 온천은 너무 아름답지만, 이것도 코로나 시국에는 망설여졌다. 하지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결국 출발!


로이커바트는 지난여름에 겜미패스 등산을 하기 위해 왔었는데, 그때는 하필 비가 와서 볼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동네 온천에서 온천도 했었는데, 때는 여름이고 온천보다는 수영장에 가까운 곳이어서 수경을 끼고 튜브를 흔들며 노는 아이들 틈에서 시달리다 와서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로이커바트는 스위스에서도 유명한 온천마을이고, 겨울에는 스키 타는 사람들도 많다. 제네바에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3시간 남짓 걸려서 도착하니 그래도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그리고 눈과 비가 내리던 아랫동네와는 달리 해발 1400미터인 산골마을에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지난 8월에 왔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 집에서 멀리 쥬라와 살레브의 눈 덮인 봉우리를 보며 살긴 하지만, 눈 앞의 설산을 보고 깊이를 알 수 없게 쌓인 눈 옆을 걷는 건 다른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반짝 햇빛이 나면서 제네바에선 볼 수 없었던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아침을 먹고 얼른 케이블카를 타고 겜미패스 (Gemmi pass)로 갔다. 스키 타는 사람들 그리고 눈길을 걷거나 썰매를 타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끝없는 눈밭에 이미 누군가가 '길'을 잘 닦아 놓았고 표지판도 잘 세워 놓았다.

다들 본인 장비를 가져와서 열심히, 프로페셔널하게 길을 재촉했다. 나도 어설프지만 snowshoeing을 하려고 천천히 길에 들어섰다. 끝이 없다는 눈밭에 오가는 사람은 몇몇 없고, 오롯이 나 혼자인 눈길을 2시간 좀 넘게 걸었다. 자연의 장엄함에 다시 감동하면서.... 눈 밟는 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예전에 본 적 없던 푸른 하늘 그리고 설산만이 나와 함께 했다. 코로나도 잊어버리고, 마스크도 벗어 버리고, 혼자 있었던 그 시간... 망설임과 걱정 끝에 잘 왔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었다.

이런 넓고 깊고 끝없는 눈밭을 사람들과 거의 마주치지 않고 걷는 건 처음이었다. 

2시간의 작은 투어를 하고 나니 어느새 검은 구름이 칸톤 베른 쪽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얼른 케이블카를 타고 마을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온천을 했는데,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고 또 물이 한국인인 나에게는 너무 미지근했다.  설산을 보면서 조용히 온천을 하면 되는데, 이 동네 사람들은 특히 아이들은 온천탕에서 너무 열정적으로 수영을 했다. 방역수칙이 안 지켜지는 것 같아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결국 다음날 아침 7시에 나왔더니 해가 뜨진 않았지만 그때는 조용히 온천을 독차지하면서, 설산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침 7시의 온천 풍경. 


코로나 시대에 여행을 하는 건 부담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듯하다. 그래서 내 마음도 정말 편하지는 않았다. 또 대부분 식당들이 문을 닫아서 끼니를 해결하는 게 부담이었고- 덕분에 호텔은 터무니없는 가격의 식사를 형편없는 서비스에 제공했다-, 뷔페식당도 온천도 방역수칙을 지키는 게 의심스러웠다. 기차를 오랜시간 타는 것도 조금 불안했다: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통제도 거의 없는 듯했고 말이다. 함께 여행 갔던 친구는 내 생각을 존중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분간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는 한 여행을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마음속의 불안함과 꺼림칙함이 가끔은 대자연의 풍경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날씨 좋은 어느 여름에 열심히 걷고 개운하게 온천을 하기 위해 다시 로이커바트에 오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2020년 12월의 제네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