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름의 중간을 지나고 있지만, 지난 1월-2월 동안 한국에 갔었고 6주 동안, 2주의 자가격리기간을 포함해서 재택근무를 했었다.
사실 한국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스위스에서 다시 늘어나면서 10월이 지나면서 다시 100% 재택근무가 되었다. 또한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면, 매니저의 승인만 있다면 스위스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스위스 업무시간을 맞춰서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은 있지만 말이다. 망설이다 매니저에게 말해보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에 가서 일을 해도 좋고, 네가 원한다면 있고 싶은 만큼 한국에 있어도 된다고 흔쾌히 말해줬다. 집안일 때문에 돌아간다는 걸 알고 있기에, 또 내가 이런 걸 말할 때 스위스 사람들에 비해 무척 조심스러워한다는 걸 알기에 배려를 해 준 듯해서 고마웠다.
한국에 도착해서 자가격리를 시작하고 그다음 날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스위스와 한국은 8시간 시차(겨울 기준)가 있어서 스위스의 9시 출근 6시 퇴근을 맞추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스위스 시간으로 아침 7시(한국시간 오후 3시)부터 오후 4시(한국시간 자정)까지 일하는 걸로 팀 사람들과 합의를 봤다. 자가격리 중이어서 어차피 밖에 나갈 수도 없어서 업무 시간은 크게 의미가 없었지만, 시차적응이 늘 문제였다. 나이가 들수록 시차적응이 힘든 건 사실이고, 내 경우에는 유럽에서 한국에 갔을 때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많이 힘들다.
그래서 처음 일주일 정도는 당연히 낮밤이 바뀐 생활을 했다.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경우면 크게 상관이 없지만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밤에 일하는 게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야근도 하고, 또 현장에 있을 때는 주말에도 일하고 했으니깐. 정시출근 정시퇴근이 익숙해진 지금은 그 바이오리듬을 거슬러서 일하는 게 참 힘이 들었다. 결국 무엇인가 건설적인 것을 할 수 있는 오전 시간도 자다 말다 깨서 피곤하게 있다 보면 일을 시작해야 하는 오후가 되고 말았다. 하루가 알차게 쓰이지 않고 있다는 기분에 또 더 우울해지고 말이다.
스위스 시간으로 오후 2시에 있는 미팅에 비디오를 켜면 사람들은, 눈부신 형광등 조명아래- 스위스에선 직접조명이 거의 없다- 다크서클이 내려앉아서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매니저는 일을 그렇게 늦게까지 하지 말고, 한국시간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쉬라고 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이랑 만나야 보고서도 쓰고 일이 진척이 되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한국 업무시간에 자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리고 자가격리 중에는 특히 일하는 것 역시 순전히 심리적인 것이지만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는 기분에 우울해져서 업무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첫 2주 동안은 스위스에서 하던 업무량의 50% 정도밖에 진행을 못했다. 한때 유튜브에서 디지털 노매드족이라면서 발리에 살면서 낮에는 요가하고 산책하고 저녁에는 프랑스 시간에 맞춰 컨설팅 업무를 보던 프랑스 여자를 보면서, 이거구나! 이렇게 살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건 젊을 때나 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한국에서 6주 동안 있으면서 며칠 휴가를 쓴 것 외에는 자가격리가 끝난 후에도 계속 재택근무를 했는데, 똑같은 재택근무임에도 제네바 우리 집에서 하던 것과 업무의 질이 확연히 떨어졌다. 물론 한국에 들어가야 했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한국에서의 재택근무는 업무도 개인적인 생활도 모두 실패였다.
일이 자정에야 끝나니깐 바로 잘 수가 없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늦게 자니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고, 그러면 뭔가를 하기에는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오후 한 중간이 이니 또 애매해진다. 한국에 갈 때는, 아침에 쇼핑도 하고 병원도 다녀오고, 도서관, 은행도 갔다 오고.. 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다. 하지만 결국 멍하니 있다가 점심 먹고 난 후에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미리 받아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쉬는지, 그리고 교대근무를 하는 분들이, 낮밤을 바꿔가면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를 몸으로 느꼈다.
회사에서도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업무 진척이 느리고, 효율도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왜 이리 업무가 더디냐 이제 그만 스위스로 돌아오지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너 자신을 케어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일은 다른 사람이 할 수도 있고, 촌각을 다투는 정말 긴급한 일은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모두가 말해줬다. 사실 이 부분에서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감동을 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같은 나라도 아닌 비행기를 12시간 타고 가야 하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 재택근무를 원하는 만큼 해도 좋다 그리고 니 개인적인 사정이 일만큼이나 중요하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빈말일지라도) 해주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제 스위스에서도 백 신접 종률이 높아져서 재택근무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 되었고 9월 말이 되면 다시 사무실로 출근할 것 같다. 물론 델타 변이 그리고 여름휴가가 지난 뒤에 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하지만 만약 재택근무가 계속되고 한국에서 재택근무할 선택지가 주어진다고 해도, 스위스의 일을 가져가서 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은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안히 쉬는 곳으로 남겨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