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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걸작 Aug 03. 2023

매혹적인 과거의 향수, <Harry Styles> 리뷰

2022년 8월 11일의 글


유년기를 함께 한 원디렉션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누구나 헤어짐을 겪기 마련이다. 원디렉션을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그들의 해체가 이별의 첫경험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수와의 이별은 비극적이었지만 모두들 휴식기가 끝나면 재결합을 할 것이라 믿었고, 그렇기에 긴 공백기 속에 팬들 스스로가 그들의 복귀를 부정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을 터.


원디렉션의 멤버들은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해리 스타일스는 그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냈고, Sign of the Times를 위시한 그의 첫 앨범 Harry Styles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한 명의 다이렉셔너로서 앨범을 수백 수천 번은 들었기에 '원디렉션'이라는 이름이 아련한 추억이 되어가는 지금 앨범에 대한 감상평을 남기고자 한다.



매혹적인 과거의 향수, Harry Styles


Meet me in the Hallway

https://youtu.be/vvZMygu99uE

Meet Me in the Hallway

앨범은 Meet Me in the Hallway가 전달하는 나른한 분위기에서 시작한다. "Give me some morphine"이라는 가사가 보여주듯 단조로운 기타 반주에 빈 공간을 울리는 해리의 보컬이 본격적인 음악 감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Sign of the Times

https://youtu.be/qN4ooNx77u0

Sign of the Times

곡은 잔잔하게, 다소 단조로운 피아노 반주로 시작한다. 곡이 끝날 때까지 동일한 피아노 음이 다양하게 변주되며 나타난다. 곡을 이끄는 보컬 역시도 단조롭다.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의 verse, pre-chorus, chorus가 반복되어 이 곡은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곡을 여러 번 들을수록 알지 못했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함이 가져오는 평온함은 음악에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이 곡은 다소 빙켈만적이다. 근대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요한 요아힘 빙켈만은 그의 저서 《그리스 미술 모방론》에서 지금까지도 영향력있는 개념인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주창하였다.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은 뛰어난 고대 그리스의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격정 속에서도 초연함을 지키는 고귀한 영혼을 의미한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이 곡의 화자인 산모는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되고, 아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조언을 전한다. 죽음이 임박할수록 웅장해지는 반주와 높아지는 음은 산모가 느끼는 격렬한 고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처한 상황과는 반대로, 산모는 초연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Outro를 제외한 곡 전체에서 화자는 꿋꿋이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슬픔을 견디고 아이에게 삶의 교훈을 말하는 산모는 고귀한 영혼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이 곡은 현대적인 <라오콘>이다.


이야기와 곡의 흐름, 구조까지 Sign of the Times는 완벽하게 구성되었다. 곡은 아이를 낳고 힘이 빠진 산모가 나즈막히 말하듯이 시작되어 밀려오는 고통과 슬픔에 점점 격정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고통에, 슬픔에, 어쩌면 다급함에 산모는 소리지르듯 아이에게 마지막 말을 건네고 세상을 떠난다. 그 뒤로 사망을 암시하는 천국의 소리가 들려오며 곡은 끝난다. 죽음에 치닫는 과정을 훌륭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해리 스타일스는 이 곡을 통해 '데이비드 보위의 재림'이라며 칭송받았다. 레트로 사운드에 보위를 연상케 하는 그의 패션 감각,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스타성이 시대의 전설과 맞닿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가 보여주듯, Sign of the Times는 그의 음악적 지향성을 보여주는 노래이다. 플리트우드 맥, 비틀즈, 데이비드 보위 등의 아티스트에게서 받은 영감을 자유롭게 펼쳐보인 걸작이다.


Two Ghosts

https://youtu.be/iSqLLiuHicw

Two Ghosts

Two Ghosts는 앨범에서 가장 사운드적으로 완성된 곡이다. 드럼이 울리고, 드럼을 따라 연주되는 기타는 한밤의 콘서트장에 온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가사는 오랫동안 보아 온 사람이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사랑으로 묶인 관계에서 사랑을 잃어버렸기에, 가슴뛰는 사랑의 기억을 잊어버렸기에, 연인은 두 명의 귀신과 다르지 않다. 연인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직관적이지만 직접적이진 않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재밌는 곡이다.


Only Angel

https://youtu.be/QbShJru2WFc

Only Angel

Only Angel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성취하기 위하여 해리 스타일스가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음악이다. 처음 도전하는 솔로 활동이었기에 그는 이 앨범을 만들 때 대중적 취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그래서 Harry Styles는 그의 이후 앨범에 비해 예술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그럼에도 이 곡은 앨범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을 제약 없이 보여준다.


https://youtu.be/iJ-mt3vVIyo

Sign of the Times와 이어지는 Only Angel

이 곡은 다른 곡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Sign of the Times의 멜로디는 고스란히 Only Angel로 이어진다. 앞 곡에서의 산모로 볼 수도 있는 여성이 외치는 말("I saw this angel / I really saw an angel")로 노래는 시작한다. 이내 환상적인 이미지는 기타의 개입으로 산산조각나고, 곡은 락으로 급변한다.


가사 중 "Broke a finger knocking on your bedroom door"나 "End up meeting in the hallway every single time"은 애인의 침실을 떠난 후 복도에서 다시 만나줄 것을 간청하는 내용의 Meet Me in the Hallway를 연상시킨다. Only Angel의 가사가 과거를 회상하는 어투이기에 이 곡은 Meet Me in the Hallway, Sign of the Times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사가 전달하는 단순한 연애 이야기와 별개로, Only Angel은 해석에 상당한 난점을 가지고 있다. 화자가 말하는 'you'와 'she'는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You'는 Sign of the Times의 관점에서는 막 하늘로 올라온 산모가 될 수도, Meet Me in the Hallway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2절에서 2인칭 대명사와 3인칭 대명사가 동시에 등장하기에 이러한 해석은 곧바로 막다른 길에 직면한다. 현재로서는 2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부분 전체를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3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부분을 과거를 회상하는 현재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 앨범은 2010년대의 여느 앨범과 마찬가지로 큰틀에서는 비유기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하지만 Only Angel을 통해 보여지듯, 다양한 곡과의 연결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한다. 한 앨범에서 모든 트랙이 하나의 이야기나 멜로디를 공유하는 경우 피로감을 줄 수 있다. 개별 곡들이 이야기와 멜로디를 잇는 소모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의도적으로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세 곡을 앨범 전체로 흩어 놓았다는 점에서 트렌디하게 재해석한 동시대적 록 오페라로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From the Dining Table

https://youtu.be/1ZxF_nA1SxQ

From the Dining Table

외로움의 정서는 Meet Me in the Hallway를 넘어 From the Dining Table까지 찾아온다. 앞선 트랙들에서 사랑을 잃고, 거부당한 화자는 호텔 방에서 적막한 아침을 맞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의욕을 잃은 쓸쓸함이 곡을 채운다. 뜨거운 사랑도, 눈물 흘린 아픔도 이제는 옛것이 되듯 노래도 고요한 종말을 맞는다.


 

아른거리는 외로움을 노래하다


Harry Styles를 관통하는 정서는 외로움이다. 감성적인 곡들이 다수 포진해 있고, 이 곡들이 이끄는 감정선이 앨범의 주요 감상 포인트이다. Meet Me in the Hallway에서 Two Ghosts, Only Angel, From the Dining Table까지, 사랑과 헤어짐의 과정을 해리 스타일스가 어떻게 그려내는지 주목해 보자. 더불어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트랙들도 존재하니, 전체적으로 앨범을 듣는 재미가 있다.


곡이 환기하는 외로움의 정서처럼, 앨범은 70년대 이후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해리 스타일스가 그동안 받아온 음악적 영향을 유감없이 드러냈기에, 플리트우드 맥이나 데이비드 보위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의 첫 앨범이자 Self-titled 앨범인 만큼, 해리 스타일스는 이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과감히 보여주었다.


더 깊은 감정적 고찰이 드러나지 않는다거나, 곡들의 불완전한 연결은 아쉽게 느껴졌다. 실험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아티스트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다만 이후 앨범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게 되는 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 Harry Styles는 거대한 도약을 위한 한 보 전진의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평점: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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