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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모 Jul 02. 2019

"저는요, 철학책 안 읽어요."

  대학생 시절, 나는 집 앞에 있는 단골 카페에 앉아 철학과 수업의 기말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카페인에 한껏 각성되어, 나는 시간 감각도 잃은 채 철학 공부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의 말소리가 카페 안을 가로질러 날아와 내 귓속에 꽂혔다. 그리고 그 말소리에 나의 집중력은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저는요, 철학책 안 읽어요.”

  내가 앉은자리에서 세 테이블 정도 떨어진 곳에 대학생 서너 명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의 집중력을 무너뜨린 그 말소리의 주인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똘똘해 보이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제가 예전에 철학책을 읽어보려고 책을 펼쳐봤거든요. 그런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생각해봤어요. 철학 문제라는 것이,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훨~씬 긴 시간을 들여서 엄~청 고민을 했는데도 못 푼 문제잖아요? 못 풀은 문제에 대해서 길게 쓴 책을, 굳이 머리 아파가면서까지 읽을 필요가 없잖아요. 이런 생각이 들고나니까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책을 덮었어요.”

  나는 그 학생이 철학을 공부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토록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허영심 가득했던 당시의 나는 그 학생 쪽을 힐끗 쳐다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당신은 틀렸어!” 나는 이 말을 그 학생에게 해주고 싶었다. 단 한 권이 됐다고 할지라도, 철학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그 학생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학생의 말소리는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그 학생이 한 말 중에 정확히 어느 부분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이 들자 나의 입가에 비웃음은 싹 사라져 버렸다. 단순하면서도 탄탄해 보이는 그 학생의 논리에 나는 그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철학책을 안 읽고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겠어? 인간답게 살아야지! 인! 간! 답! 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답변은 이것이었다. 철학책을 읽어야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의 주장 가지고 그 학생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 학생이 이 말을 들으면,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아! 내 생각이 짧았어! 하마터면 내가 인간이 덜 될 뻔했지 뭐야! 철학책이 아무리 어려워도 쑥과 마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읽어서 인간이 돼야겠다!”라고 말하게 될까? 아무래도 이 주장 가지고는 설득이 안 될 것 같아 보였다.

  그렇다면, 철학이 사람을 ‘인간답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교양 있게’는 만들어줄 수 있다는 주장은 어떨까? 대학에서 개설되는 철학과 수업 중 대다수가 ‘교양’ 과목이라는 점에서, 철학이 교양을 쌓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철학이 교양의 일종이라면, 철학이 여타의 교양들보다 더 나은 점은 무엇일까? ‘철학책 읽기’를 통해 교양을 쌓는 것이, ‘클래식 음악 듣기’, ‘연극 관람하기’, ‘와인 시음하기’ 등의 방식으로 교양을 쌓는 것보다 훨씬 더 질이 높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와인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 술은 그저 마셔서 취하기만 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는 “저는요, 와인은 값싸고 알코올 도수 높기만 하면 돼요.”라고 말한다. 와인 시음에 있어서 교양이 있는 누군가가 내게 와서 “당신은 틀렸어!”라고 외친다면, 나는 “남이사, 내가 고급 와인을 먹든 소주에 포도주스를 섞어 마시든 뭔 상관이야?”라고 되받아칠 것이다.

  만약 카페 안의 그 학생이 “내가 철학책을 읽든 만화책을 읽든 당신이 뭔 상관이야? 와인 맛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주제에 어디서 교양을 운운하고 있어?”라고 되받아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아마 나는 말문이 탁 막힐 것이다.



  이쯤 되면 나는 심박수가 높아지고 얼굴이 벌겋게 변하며, 점점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될지도 모른다. 충혈된 눈으로 울먹거리며 “철학은 엄청 중요하다고! 네가 철학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몰라서 그래!”라고 소리칠지 모른다. 철학책을 품 안에 꼭 안고서 책 겉표지를 쓰다듬으며 “철학책은 소중해, 철학책은 소중해”라고 되뇔지도 모른다. 심지어 “신이시여, 이 불쌍한 중생은 철학책을 안 읽는다고 합니다!”라고 하늘에 대고 외치며 그 학생의 영혼을 불쌍히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눈물 콧물 다 쏟는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 학생이 왜 철학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할 것 같다.

  “저는요, 철학책 안 읽어요.”

  집 앞 단골 카페에서 이 말을 들은 지도 벌써 5,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말소리는 내 귓가에 맴돈다. 아무래도 그 당시 나는, 그 학생에게 한 수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철학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는 것을 가지고, 마치 내가 그 학생보다 지적으로 몇 단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 ‘어리석은’ 학생을 가르치려 든 것 같다.

  내가 뭐라고 그 학생을 가르치려 든 것일까? 나의 오만함은 왜 이렇게 큰 것일까? 아마 내가 인간이 덜 돼서 그런 것 같다. 나도 좀 인간다워지고 싶다. 철학책은 아무래도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데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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