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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모 Jul 11. 2019

“이래봬도 나 철학공부한 사람이오.”

철학을 배우다 보면 잘난 척을 하고 싶어진다.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우스갯소리가 종종 회자된다.

  학사 때는, 마치 자신이 자기 분야에 통달한 것처럼 대단한 자신감을 가진다. 하지만 석사로 올라가면서, ‘내가 아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런데 박사에 올라가서는, 아는 것이 없기로는 나뿐만이 아니라 남들도 다 똑같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가 교수가 됐을 때는, 어차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적당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가르치면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우스갯소리는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지금의 내 상황을 아주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학사 때는 나의 지식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중2병보다 더 무섭다는 대2병을 열병처럼 심하게 앓았던 나는, 상당한 자아도취에 빠져서 지냈던 것 같다. 아는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실력 있는 다른 사람들을 깔보고 그들을 향해 비웃음을 흘리곤 했었다.

  그런데 석사과정으로 올라오자, 나의 자신감은 산산조각 났다. 내가 작성했던 석사학위논문 프로포절이 교수님의 논문지도 아래, 마치 세절기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너덜너덜해져서 건질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모조리 분쇄되어버리는 경험을 겪고 보니 ‘내가 아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좌절을 맛보게 됐다. ‘나 같은 똥 만드는 기계가 존재할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인가?’ 나의 실존을 위협하는 사유가 내 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철학과 안에서의 나는 비루하고 실력 없는 석사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철학과 바깥으로 나가면 나는 사람들에게 ‘철학도’라고 불리며, 민망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은 심지어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과도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가령, 어떠한 사안에 대하여 나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하고 나면, 몇몇 사람들은 장난기를 섞어서 내게 말한다. “오~ 역시 철학과. 뭔가 달라.” 또 내가 수업 준비를 위해 철학서적을 읽고 있으면, 사람들은 내게 다가와 말한다. “오~ 역시 철학과. 어려운 책 읽네.” 내가 개성 있는 헤어스타일을 하거나 독특한 옷을 입고 있을 때도, 사람들은 내게 다가와 히죽대며 말한다. “오~ 역시 철학과. 패션도 남다르네.”

  초반에는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이 거북했다. 나는 ‘철학’의 ‘ㅊ’자도 제대로 모르는데, 단순히 철학과에 소속된 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사람들이 내게 “오~ 역시 철학과.”라고 말하는 것이, 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아서 불쾌한 감정이 들기까지 했다. 마치 눈, 코, 입, 그 어느 한 곳도 잘생긴 데가 없는 사람에게 “오~ 완전 미남이시네요.”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오~ 역시 철학과.”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아주 드물기는 했지만, 내가 철학과 대학원을 다닌다는 사실에 진심 어린 동경을 품고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철학과 안에서는 ‘똥 만드는 기계’ 같았던 나 자신이, 철학과 바깥으로 나오니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점점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말을 현학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대화 도중에 뜬금없이 철학자 이름을 언급하며 “OOO라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는데⋯”라고 하며 지식을 뽐내기도 했다. 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철학자들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최대한 멋들어지게 말을 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러자 내 안의 자아는 점점 ‘철학과 안에서의 자아’와 ‘철학과 밖에서의 자아’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철학과 안에서의 자아’는 자신의 무지(無知)를 인정하고, 겸손함을 유지하며, 학문에 진지하게 임하고자 하는 자아였다. 이에 반해, ‘철학과 바깥에서의 자아’는 자신이 철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해대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며, 단편적 지식들을 현란하게 늘어놓으며 잘난 척을 하는 자아였다.

  이 두 개의 자아는 내 안에서 자주 충돌한다. 겸손을 유지하려 하다가도 사람들 앞에 서면 잘난 척을 하고 싶어지고, 철학 지식을 뽐내고 있다가도 나의 배움이 얕다는 사실을 깨닫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최근 들어 두 자아의 대립은 더욱더 첨예해져, 둘 사이의 충돌이 잦아지고 그 강도도 세졌다. 과연 내 안에 있는 두 개의 자아 중 어느 자아가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될까?

  윤흥길의 1977년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 나오는 주인공 권 씨는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이지만, 고정된 수입원이 없어서 끼니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권 씨가 자신의 체면이 구겨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면,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자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하여 말한다.

  “이래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

  권 씨의 이 말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내 안의 두 자아 중,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자아가 결국 승리하게 된다면, 나의 삶은 권 씨와 비슷해지지 않을까? 철학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도 없고, 또 마땅히 내세울 만한 것도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커져서 “이래봬도 나 철학 공부한 사람이오.”라는 말로 자기 위안을 하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심하게 요동친다. 겸손하게, 진지하게, 진솔하게 살아가야 하겠지만, 그것이 잘 안 된다. 철학을 배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잘난 척을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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