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알자스 여행 후기 #02
알자스를 가로지르며 마주친 대표하는 이미지 중에 하나는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이다. 굉장히 산뜻하면서도 은근히 달달한 맛을 자랑하는 알자스 화이트 와인은 도로 바로 옆에서 시작해서 지평선을 가로지르는 포도밭으로부터 나온다.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두 눈으로 포도밭을 본 게 처음이었는데, 어디에 꽁꽁 숨겨져 있는 게 아니라 도로에서 바로 몇 미터 간격에 있거나 가정집 뒷마당에도 있다는 게 꽤 신기했다. 길을 따라 보쥬 산맥으로 이동하던 중, 지난해에 이미 알자스 여행을 했었던 일행분이 주변에 정말 아담하고 이쁜 마을이 있으니 보고 가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알자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그런 발견들이 너무 좋아 바로 동의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케제르베르(Kaysersberg)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로, 기차도 다니지 않을 만큼 조용한 동네였다. 처음에는 이름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알자스 지방의 도시들은, 스트라스부르처럼 독일어로 되어있는 이름이 많다. 세계 대전 전까지 독일과 프랑스 영토 사이를 오가다가 1944년부터 프랑스 영토였으니, 그럴만하다. 케제르베르가 가진 적당한 관광지스러움과, 적당한 시골스러움의 조화가 좋았다. 이 도시까지 차를 렌트해 운전해서 왔지만, 차가 없다면 근처의 대도시인 꼴마르까지 기차를 탄 뒤,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해서 와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적당하게 마음에 드는 도시를 적당한 걸음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을 뒤편으로 넓게 펼쳐진 포도밭을 구경하고, 길거리를 지나다 보이는 치즈 가게에서 저녁에 마실 와인에 곁들일 치즈도 샀다. 여러분이 프랑스 여행을 하는 동안 슈퍼마켓이 아닌 프로마쥬리(Fromagerie, 치즈 판매점)를 간다면 최소 두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치즈 냄새는 생각보다 고약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을 수 있다는 것. 가게 여기저기에 작은 원형 테이블만 한 치즈가 여기저기에서 자기들만의 냄새를 풍긴다. 두 번째로 이런 치즈 전문점은 여러분이 직접 치즈를 맛본 뒤 고를 수 있다. 와인에 곁들을 치즈인지, 치즈 초보자의 모험인지, 요리용 치즈인지 찾는 종류를 말하고 추천해달라고 해보라. 직원은 여러분에게 이런저런 치즈를 맛보게 해 줄 것이다.
우리는 지역 특산 치즈들 중에서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과 어울리는 치즈를 하나씩 골랐다. 하나는 치즈의 젖내 뒤로 미세한 후추향과 호두의 고소함을 뿜으며 아이스크림처럼 입 안에서 녹았다. 다른 치즈는 조금 더 탱탱한 느낌에 고소함보다는 짭짤함을 남겼다. 여러분이 한 조각 입에 넣는 순간 왜 치즈가 와인과 잘 어울리는지 이해할 것이다. 내 목구멍은 치즈를 넘긴 순간 왜 와인은 안 들어오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 치즈들도, 직접 가서 맛을 비교하면서 먹는 순간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 우리는 이 치즈와 저 치즈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색깔 같다. 한국은 신호등의 초록불을 여전히 파란불이라고 하는데, 이는 신호등이 도입되었을 무렵에도 한국 문화에서는 청색과 녹색을 구분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의 색이 다름을 이해하고, 다른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둘은 다른 의미가 된다. 치즈도 그렇다. 여러 치즈 이름이 적혀있는 리스트를 외운다고 치즈를 배울 수는 없다. 그 치즈들의 이야기를 알고 동시에 어떤 맛인지 직접 느껴봐야 한다. 사실,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알아가는 것만큼 짙은 향을 남기는 관계가 세상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