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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29. 2024

THE CATCHER IN THE RYE

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 말(說)과 언어, 그리움

"말을 하면 모든 인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Jerome David Salinger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추천 도서이기도 했고 당시 소설에 빠져있던 터라 편하게 읽혔다. 중독성이 강한 필체와 광기 어린 젊은 날의 총성이 매력적인 글이었다. 그러나 지금 기억하는 것은 몇 개의 단어와 섬광처럼 지나가는 야수의 음성뿐이다. 말이라고 지칭할 수 없게 의식 잃은 울음들이 파도처럼 스쳐 지나간다. 조합된 언어가 슬피 흐느끼는 속상함보다 가치가 있는지 상념이 올라온다.


언어가 사라져도 울음(哭)은 여전하다. 광야뿐만이 아니라 골짜기를 스쳐가는 소리에도 심곡(心曲)이 있다. 말을 하면 인간이 그리워지긴 한다. 금은 말소리보단 침묵 아래 떠도는 기계음밖에 없는데 아다다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은 그리워지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그 묵음이 더 절실한 그리움을 부를 수도 있다. 말을 하면 무슨 작용이 일어나는가? 목소리를 내면서 나를 말하는가, 아님 무언가를 끌어서 너를 말하는가? 호밀처럼 거친 작물에 쓸리는 소리는 날카로운 주물소리를 낸다. 온몸을 이리저리 아리도록 쳐댄다. 작은 씨앗에서 줄기로 자라날수록 보이지 않는 바람에 더욱더 큰 소리로 곡성(哭聲) 내며 마음을 괴롭힌다.

호밀밭의 파수꾼, 이름을 부르는 휘파람 같던 이야기는 둘러보던 많은 곳에 은닉되어 있었다. 영화든, 음악이든, 나의 삶이든 속속들이 바람으로 흩날렸다. 어두운 삶의 숲에 가려진 기근한 문학적 움직임에서 숨겨진 서로를 찾아갔던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Finding Forrester>에도, 의혹으로만 점철되어 있던 의심스러운 두 사람이 소리치며 서로에게 빠져들었던 영화 <컨스피러시 Conspiracy Theory>에도, 미국 팝 가수들의 인터뷰에서도, 사춘기 소년의 미친 울음이 어디에서나 광일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많은 부분에 소리를 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물에 젖은 휴지조각이 되곤 했다.

호밀밭 못난 소년의 보호막 없는 탄피를 받고 싶었는지 이 책을 가슴에 품고 죽었던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샐린저는 소년의 울부짖음도 헛된 꿈임을 말했는데 사람들은 뭐가 그리 아팠단 말인가.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원한다는 것이고,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겸허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The mark of the im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die nobly for a cause, while the mark of a 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live humbly for one."


작가가 말했듯이 죽음과 삶의 모습은 살아가는 자들에게 모두 중요하다. 달을 보다가 기억 속에 흘려보낸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잊지 못하고 더 선명해진다. 진정한 삶에 대해, 서로를 보아줌에 대해, 우매한 엇나감에 대해 부질없이 떠들었던 말들도 떠올랐다. 지나버린 사람들이 보고프다. 밀밭 되어 스쳐간 그들이 그리워진다.


2004. 9. 28. TUESDAY



기억을 상기하던 밤에 하나는 놓친 듯하다. 미성숙한 인간의 고귀한 죽음과 성숙한 인간의 겸허한 삶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죽음의 모양은 다른 것인가? 살아있는 이에게 중요한 죽음은, 죽은 이에겐 의미가 되지 못한다. 죽음의 가치도 살아있는 이가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삶과 생명은 단절된 형태의 죽음보다 더 고귀하고 겸손한 모습이다.


문장의 본질은 어두움 위로 보이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이면서도 관조적인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대적인 가치에 따라 죽음의 형상은 영웅시되기도 하고, 하찮게 치부되기도 한다. 죽음을 밝다고 묘사하기는 어렵다. J.D.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는 인간이 생을 버리는 화려한 희생과 영웅적인 행동의 미화에 대해서 미성숙하다고 판단한다. 극적이고 전율이 가득한 죽음보다 가난하고 평탄한 삶을 사는 것이 더 힘든 일이다. 평생에 꿈꾸던 생의 가치를 위해 유혹적인 죽음을 인내하고 살아가는 한 인간의 평범하고 지리한 노력은 정말 성숙하고도 성실한 일이다.  




그리운 침묵의 얼굴
[THE SILENT LONGING FACE] BEIJING. 2008. 6. 25. PHOTOGRAPHY by CHRIS


말을 하면 사람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대화 속에서 상대방은 감정을 이야기하곤 했다. 말과 감정은 어떤 관계일까. 순간은 진심이었어도, 시간이 길어지면 그 마음은 온전할까. 그리움에도 얼굴이 있을까. 



얼굴이 길어지며 울고 있네

너를 향한 말들은 

숲 속에 가려져 있네.


그림자 뒤로 비치는 

저 비슷한 얼굴

알 수가 없네.


침묵 속에서 사방이 고요해지네.

조용할 때 다가오는 모습

잊혔던 그리움.


A face grows longer as it weeps, 

Words meant for you 

Are hidden in the forest.


Behind the shadows appears 

A similar face, 

But it remains unknown.


In the silence, all around grows quiet, 

A figure approaches in the stillness, 

Forgotten lo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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