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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05. 2024

PARIS, TEXAS, ANIMA

비디오 상상 | 파리 텍사스 아니마

[PARIS, TEXAS, ANIMA : I'm So into You]  2004. 8. 25. PHOTOGRAPHY by CHRIS


 I.


그 남자를 불러낼 시각이다.
내 밖의 아니무스가 눈을 감고
내 안의 아니마가 기지개를 켤 시간.

오늘은
기타만 울리는 콘서트장도
그림만 들이미는 미술관도
팝콘 튀기는 영화관도
불 꺼진 연극무대도
정열의 카바레도
흘러가는 바다도 아니다.
그저 잡음 내며 돌아가는 비디오 앞일뿐.


테이프가 회전하는 화면에 다가간다.

마음이 동하는 곳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찍는다.
주문을 외운다.
엄마가 아닌 엄마가 불러줬던 그 동요로. 

안녕 노래로.

헤어지면 언제 만나
새달에 새해에
아니 아니 내일
바로 바로 내일
만나자. 안녕.

찌이익...
뚜....
뚜...
띠리릭.
통화가 된다.

" 나 언제나 당신을 들어...."
"........"
" 모든 남자는 당신의 목소리를 내거든."
"..............."


남자는 언제나처럼 말이 없다.



II.


짓궂고 거친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
여자만 있다면
구멍가게 가는 것조차도 행복했고
원하는 것이 있기에 직장이 없어도 즐거웠다.
언제든 자리를 바꿀 수 있는 트레일러에 살고 있었던 남자와 여자.
여자를 너무도 사랑한 남자는
여자에게만은 맛난 것을 사주고 싶었다.
예쁜 옷도 입혀주고
멋진 풍경도 보여주고
남자는 여자를 부양해야 했다.
직장을 가졌다.
남자는 가슴이 아팠다.
찢어질 것 같았다.
보지 않으면 여자가 뭘 하고 있을지
상상만 해야 하는 남자는
여자가 몰래 바람피우는 게 아닐까 싶어
의심이 들었다.
걱정이 들었다.
함께 자던 트레일러도 부숴버렸다.
술을 마시며 외박도 하면서 질투를 바랐는데
여자는 걱정만 했다.
남자는 더 미칠 것만 같았다.
질투를 안 하면 관심도 없는 줄로 알았으니까.
한참 동안 방황했던 남자는
여자가 아이를 갖자
다시 평상으로 돌아와 정식 직장을 잡았다.
이제 애를 가졌으니 사랑할 거라고 믿게 됐다.
여자를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묘한 일. 여자가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짜증이 늘어간 여자.
아이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아이를 낳게 했다고 원망을 했다.
자기 발목을 묶어놨다고 타박을 했다.
일주일에 외식을 한 번씩하고
연애시절처럼 다정하게 대해도 투정만 늘어놨다.
다시 술을 마셨는데 이젠 걱정도 안 했다.
바가지만 긁었다.
일하고 늦게 들어온 남자에게 가출이 꿈이라던 여자.
남자는 그 말을 정말 믿어버렸다.
막지 않으면 영원히 떠날까 봐 두려웠던 남자는
여자의 발목에 방울을 매달았다.
밤중에 나체로 달아날까 봐
남자는 항상 고속도로 길목을 지켰다.

어느 날 잠을 자다 눈을 뜬 남자는
양말에 방울을 집어넣고 발소리를 죽여 달아나는 여자를 봤다.
남자는 여자를 벨트로 스토브에 묶었다.
파란 불꽃이 침대 시트를 태우고 불길이 번져갔는데
남자는 여자와 아이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감정도 없었다.
남자에겐 필요한 것은 잠뿐이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깬 남자는 두 사람을 찾았다.
불꽃은 이글거렸는데 그들은 없었다.
멍하니 쳐다보는 남자의 팔에 불이 붙었다.
남자는 젖은 땅 위로 몸을 굴렸다.
일어나서는 뒤도 안 보고 달렸다. 무작정.
아무도 살지 않고
언어나 거리가 없는 곳.
이름도 알 수 없는 곳.
표적도 지평도 없는 곳으로
숨이 막혀 못 뛸 때까지.
태양이 흐르는 곳으로 밤낮없이 달렸다.
인적이 없을 때까지.



III.


외로움을 달래려 아이를 낳지 않겠다던 여자는
남자가 떠나가자
남자가 생각나게 되는 아이를 보는 게 괴로웠다.
아이를 놔두고 길을 걸었다.
독백만 했다.
남자가 떠났을지 모르는 곳을 향해
몇 달 동안 이야기하며 걷고
돌아오는 것도 상상하며
그렇게 오랜 대화를 나눴다.
남자가 늘 곁에 있었다.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가끔 남자의 음성이 잠을 깨웠다.
방 안에 함께 있는 것처럼.
그리곤 사라졌다.
그 모습도 잊었다.
큰 소리로 불러도 없었다.
음성도 안 들렸다.
그래서 포기했다.
모든 게 멈췄고 남자가 사라졌다.


걷고 걸었던 여자는
어딘지 모르는 바에서 일을 시작했다.
남자들을 위해 옷을 벗으며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자들을 보지 않지만
남자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남자를 상상하는 게 편했고
남자가 없을 때 이야기도 했다.
그녀는 들을 수 있었다.
남자는 그녀에게 즐거움이었다.

어느 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들어왔다.
어떤 이야기도 주문도 하지 않는 남자.
말로 공백을 메워야 하는 남자.
듣는 게 쉽지 않았던 여자에게
남자는 침묵했다.
남자를 느낄 수 없는 여자는
자기만 비추는 불을 껐다.
어슴푸레 비치는 한 남자.
늘 곁에 있었는데 보지 못하던 남자.
언제나 듣고 싶고 보고 싶고 느끼고 싶었던 남자.
유리창 밖에서 전화기를 들고 있다.
여자는 반가워 손을 댄다.
여자는 남자를 본다.
그리고 말한다.


" 파리 텍사스 "



IV.


모나고 울퉁한 사막 같지 않은 사막.
독수리는 빨간 모자를 눌러쓰고 목마르지 않은 듯 빈 플라스틱 병만 핥는 남자를 본다.
누군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혀가 잘렸을까? 말도 없는 남자에게 의사가 청진기를 들이민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혈육도 몰라보는 남자.
집으로 가는 차 안엔 침묵만 흐른다.
낡은 청자켓 안주머니에서 빈 공터만 찍은 한 장의 사진을 꺼내는 남자.
남자는 무심히 말한다.
정확히 이 단어만.


"Paris Texas"



V.


파리 텍사스.
어딜까?
엄마와 아빠가 사랑하던 곳?
그대가 시작된 곳?
첫 자궁의 기억일까?
파리.
텍사스.
너무나 다른 느낌.
파리 텍사스.
파리 텍사스에는 파리와 텍사스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나.
파리 텍사스 아니마.


2004. 8. 25. WED.




[PARIS, TEXAS: A movie about losing one's home] 2024. 5. 26. PHOTOGRAPHY by CHRIS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에는 쉼표가 있다.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이 그려낸 영화 <파리, 텍사스>는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자석처럼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였다. 텍사스 사막에서 발견된 기억상실의 남자, 말도 잊은 트래비스(Travis)가 애타게 찾는 것은 'PARIS, TEXAS'였다. 이 남자에게 파리와 텍사스는 어떤 의미일까? 인간은 타인과 사랑을 나누고 혈연 간에 뜨거운 정을 남기면서도 어떻게 하여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잃어버린 자신의 과거와 그리운 사랑, 가족을 찾아가는 여정은 집착과 후회 속에서 서로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건조한 사막과도 같은 도시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황량한 서사시는 한 남자의 지친 발걸음을 따라가며 연속적으로 이어진 삶에 대해 묻게 했다.


비디오 플레이어도 일찌감치 내다 버렸고 소장했던 비디오테이프들도 없는 지금, <파리, 텍사스> 비디오테이프는 갖고 있다. 집을 잃어버린 <파리, 텍사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버릴 수 없었던 내 삶의 기억이 담겨있다.


<파리, 텍사스 | PARIS, TEXAS>. 헤어짐을 반복하는 여자와 남자의 모습은 내 안의 나와 현실의 나의 모습이었다. 만나더라도 말없이 헤어지고 함께 할 수 있었음에도 함께 하지 못했던 나와 너. "파리, 텍사스", 붙여놓은 이질적인 도시는 그 이름만으로도 나를 숨 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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