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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17. 2024

EQUUS, PETER SHAFFER

피터 섀퍼 《에쿠우스 | 에쿠스》 시선의 종말과 존재의 상실감

[EQUUS, Peter Shaffer] PHOTOSHOP IMAGE MIXTURE. DESIGNED by CHRIS


순결한 광적인 믿음과 무신론적인 가벼운 변덕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는 평범한 사춘기보다 더 강렬한 방황이 필수적이다. 거칠게 폭력을 행하고선 목에 가해진 피로를 풀 겸 퍼즐게임을 한다.


EQUUS, PUZZLE GAME

Question: U+U=U2=1 so 6,6,6+6,6,6=12-1=?


하룻밤 새 은색 쇠꼬챙이에 찔려 눈먼 여섯 필의 말, 신성한 종교와 변질된 섹스, 희생양의 SM들. 피터 섀퍼(Sir Peter Levin Shaffer)의 에쿠우스 | 에쿠스 EQUUS 1973는 영화나 연극으로 완전히 표현되기 힘든 텍스트적인 매력이 가득하다. 인간의 절대적인 신앙심과 식욕과 성욕의 기본적 본능, 생명을 가진 대상에 투영된 범(凡) 자아적 파괴. 사춘기 소년이 저지른 경악할 행위의 저변에는 어떠한 강이 흐르는가. 죽음과 탄생, 심장 없는 피. 치료와 감화, 분석과 해석. 무뚝뚝하고 표정 없는 현대사회에서 두 세 겹의 캐릭터에 놓인 소년이 보여주는 극적인 환희의 살해는 갇히지 않고서는 순수할 수 없는 성장기의 열정을 풀어내고 있다.


나는 묻고 싶다. 뇌하수체 호르몬이 가득한 시절을 벗어난 뒤 머리가 굵어진 자들은 행복하냐고? 열 일곱 소년, 알런 스트랑 (Alan Strang)은 왜 여섯 필의 말의 눈을 멀게 했을까? 마틴 다이사트 (Martin Dysart)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가? 비린내 나게 김 나는 허파와 혈관을 공개할 창구란 범죄를 저지르는 방법뿐일까? 폭발과 융합, 막혀있는 물줄기. 누구를 안다는 사실과 악마적인 행동, 영혼은 스스로를 설명해야 하는가!




나에게 접근하는 다이사트에게
<The Warning>


기쁨 두 배 행복 두 배

상쾌한 더블 민트 껌

순수하고 깨끗한 맛 마티니

뜨거운 타이푸 차 한잔으로

핑핑 쉬익 쉬익

기쁨 두 배 행복 두 배

상쾌한 더블 민트 껌


숨이 모자란 사람도 하하 하고 숨을 내쉬는데, 나팔소리가 울리면 하하 하고 우는 해변의 사람. 이교도의 눈에 비친 말과 기수는 한 사람이라고 했다. My EQUUS! 너와 나의 결합은 1 + 1 = 1 달콤한 초콜릿으로 유혹하는 엄마는 성경책을 들고 욥기를 읽어줘. 난 무조건 물건을 던지고 노려봐.


당신, 육각형의 비밀에 접근하고 싶어? 이런 멍청해. 열의가 없어. 나는 여섯 살 때 모래성을 쌓고 있었어. 그때 기사가 왔어. 손을 내밀었지. 하루종일 만들었던 모래성을 밟고 갈색 말의 왼쪽으로 올라탔어. 기병의 가슴을 느끼면서 다리에는 온통 말의 땀으로 뒤범벅된 채 해변을 달렸어.


"바람아, 날 멀리 데려가!"


나는 소리쳤다. 섹시했어. 사자와 말의 섹스. 갈기를 붙잡고 표류하는 어린 시절 추억들. 그런데, 기독교 기병은 날 거친 모래바닥에 내동댕이 친 아버지를 피해서 사라졌어. 아버지는 고해받는 자의 재갈도 떼어 버렸고, 박해받는 의식을 망할 놈의 종교 때문이라고 타박했어. 그는 섹스에는 진저리를 치는 양반인데 포르노 영화관에서 만났어.



불쌍한 사람, 엄마와 잠자지 않는가? 난 숫처녀에게서 태어났는가? 그리하여 고귀한 어머니! 생물학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의 충만한 합일 상태를 사랑해야 하는 거라고 말하더군. 그녀의 혓바닥은 가시 같아. 들리지 않는 뱀 비늘과 케이크를 자르는 얌전한 부뚜막 고양이. 갈고리와 재갈, 가시면류관의 상관관계는 그림을 가까이에 놓아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단, 충실한 노예 에쿠우스와 예수는 쇠사슬에 묶인 채로 불행과 고통을 견뎌냈다는 것. 그게 포인트랄까?


독생자 에쿠우스, 나의 독생자. 그대와 같은 고통을 겪겠어. 밧줄로 재갈을 물고 나무옷걸이로 나를 치리라! 세상은 희생자의 피를 원해. 제사장이 바칠 어린양과 아이들의 펄떡이는 장기(腸器)들. 나 똑똑해 보여? 신경증에 걸리면 그렇게 보이곤 하지. 결벽하고 정이 없는 마가렛보다 독수리 사원에서 적적한 하늘에 그리스 신화를 펼치고 싶은 당신은 늙은이. 돈을 잘 벌고, 말 잘하는. 당신은 무뚝뚝한 부인을 내던지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과 그리스에서 현재를 살고 싶은 건가? 벽돌담장 가게나 나무정경을 보면서 찡그린 얼굴을 할 수 있는 숭배할 아름다운 대상과 함께.


노멀(Normal)한 사람들은 노멀(Normal)을 싫어하고 애브노멀(Abnormal)을 원한다던데 평범함 사이에서 아름다움과 죽음이 타락한다는 것을 알아둬. 노멀 시티(Normal City)에서 나이에 맞는 미소를 짓는 것은 어색하니까.



치료를 성실하게 번민은 솔직하게 풀어내는 정신과의사 다이사트! 공포를 무기로 삼아 고통을 오물통에 담아두려 하지 마.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치는데 60초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정상치로 만드는 제물은 60달이 걸리지. 해변의 여섯 살은 상처를 받았어. 에쿠우스는 해변에서 말했어. 재갈을 벗고 싶어. 나는 소리쳤어. 그딴 건 벗어버려! 에쿠우스는 고개를 저었어. 저들이 씌운 형틀은 벗을 수 없어.


오, 에쿠우스! 진리가 너 속에 담겨 있어. 세상의 죄가 너를 보고 있고 멀리 달려 한 사람이 되고 싶은, 12개의 창(窓)이 눈을 뜨는 시각이야. 에쿠우스는 측은하게 나를 보더니 자신의 칭클챙클을 내게 단번에 씌웠지. 그런데 한 번의 미끄러운 접촉으로 신성한 성지에서 짚의 업적이 무너져 버렸어. 삼 주마다 한 번씩 씻고 보살피던 오솔길의 하하 평원이, 에쿠우스와 내가 사랑하는 탄생의 근원지가 전자제품과 전기용품의 전자식에 휩쓸렸고 신성한 막대기는 그의 환상적인 늑골과 옆구리를 다듬으며 여섯 모의 각설탕과 육각형 운명 주사위를 굴렸는데 한 번에 녹아버렸어.


신의 노예로 변해버린 에쿠우스, 플레쿠스, 네쿠스! 몸에서 뻗은 벽은 허영의 모자를 쓰고 속보로 달리다가 구보를 하고 다시 달려 Turn! 나의 갈기가 바람에 굳는다. 너의 안에 파고들어 한 몸이 되고 싶은 이 충동은 온몸을 벗기고 태아처럼 자유롭게!



다이사트, 발가벗은 난 지쳤어. 차가운 얼음물 한 컵만 줘. 물이 달군. 난 땀을 흘리고 있어. 차고 달콤한 숨결을 마셔보면, 잘난 사람들의 위선은 나에게로 전이되고 동굴은 열리겠지. 덥수룩한 머리와 커다란 이빨을 가진 에쿠우스를 죽이면서 무의미와 불안정이라는 거대하고 준엄한 형벌을 거리에 던져버릴 거야. 치부를 보여주는 고통이란 TV를 못 보게 하는 단순한 제약에 시달린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지. 갇힌 사람에겐 녹음기가 필요하고 최면이 필요하고 진실을 토해낼 아스피린이 필요해.


숭배의 대상을 빼앗는 저들의 욕망과 단순한 코스접속은 길거리의 전자제품과 가정용품처럼 싸지고, 흔하고, 필요한 듯 필요하지 않은 도구에 불과해. 자신만의 열정이 없는 저들에게 나의 낭비 없는 엑스터시가, 이 격렬한 희생이, 재미 정도야? 나가떨어져 버려. 내가 아는 세상은 질투와 모순, 질풍노도와 번민도 모두 벗어버린 가식의 찜질방이야. 청교도와 이교도의 단순한 분리로 싸울 수 없는 세상. 육 년 간 키스를 못했다는 당신의 늙고 마른 입술에 신의 침을 빨게 해 주기 싫어. 요구와 원망은 대치될 수 없는 가치.



달빛이 비치는 양배추 밭에서 살았던 신은 마구간의 배신으로 다시 죽었고 한 번의 내 손길로 살아나던 옆구리는 불꽃같은 눈물을 흘렸네. 너의 신은 아무것도 볼 수 없어. 파괴와 생기억과 열정들은 구유시절을 달그락거리며 천천히 사라지겠지. 남들처럼 살아가는 유령이 뭔 의미인가! 스쿠터를 몰다가 차를 몰고 경마장에서 돈을 뿌리며 말 달리던 열정이 식어버리면.


아, 다이사트! 정상적인 행위는 뒤집어보면 위험한 거야. 열정으로 자신을 달구지 못하는 저 사람들을 봐봐. 번창하게 가게에서 일하는 말단직원이 사장의 목 위에 올라가 고삐를 끈다면 당장 해고당하겠지? 포말에서 시작된 에게해의 신화는 한 가정의 품 속에 파고들고 이방인인 말에게 전이되는 분노는 차라리 베일을 내려버리는 것이 당연할 텐데 구원될 수 없는 노예는 누구를 죽이는 것이 옳은가! 넌 묻겠지. 왜 나지? 먼저 설명을 해봐. 왜 나지? 왜 나인 거야?


당신은 알 수 없어. 본질을 찾는 당신의 면도날은 녹슬었고,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문제는 어둠 속의 내 눈이 커져서 알 수 없어. 정신적인 고통을 겪지 않게 원시적인 상태로 자라났다면 살인도 하나의 목적으로 인식되었을 테지만 사람들은 제도 아래에서 배웠던 정갈함을 뽐내며 타인을 교화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그대의 아픔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둠에서 가슴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내 눈물 보고 있어? 치료할 수 없는 열정과 파괴된 꿈이 이름 없는 강에서 떠도는데 날 보여주기 싫고, 다 시시하기만 해. 뭘 이해한단 말인가! 건강하고 신성한 자들이 알 수 있는가? 배따지가 부른 놈들이 무엇을 알지? 염불 나고 구역질이 성성한 사회와 곪아가는 가정들. 입 주위에 사슬을 채우고 모두 눈이 멀어가고 있어. 먼 길을 달리는 말들과!



딸랑딸랑딸랑 징글벨이 잠잠하게 울린다

여린 소년이여! 벨이 울리면 잠시만 잠들게

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중립의 도시를 향해

死者들이 날개 접는 새벽 다가온다네

나는 어디로 달려야 하는가?

어둠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아버지 Frank는 결코 Frankly 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성경구절 욥기로 하하 평원 노래했어

윤기 흐르는 말에 걸터앉는 아들을 보았는가?

종마에게 열정을 주지만

두터운 성경책에 믿음을 넣지만

피를 나눈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우리들에게 혈연은 무슨 의미이지?

끊을 수 없는 날카로운 사슬이여!

내가 찌른 것은 나의 질투이며 나의 악이다!

열두 개의 구슬이 파괴됐는데

그 사랑스럽고 뚜렷한 알맹이를

구역질 나는 바닥에 터뜨렸는데

오, 배부르고 거룩한 아버지여!

오, 성경책을 베고 누운 신성한 어머니여!

그리고 허영심에 가득 찬 무심한 사람들이여!

또다시 아들과 이 못난 종자를

배신하지 않으시겠지요?

그래도 내가 종마와 매일 사랑을 한다고

손가락질하겠습니까?

대체물에 힘을 쏟고

소중한 나의 단지를 깨지 마시오!

이해할 수 없이 푸다닥거리는 건장한 말들!

그들의 비명과 함께 하는

어린 내 비명도 들으시오!

홀로 남겨진 아픔들,

앵무새로 말을 하는 나는 상처받았소.

날 이해한다고 하는 자가

저기 흰 가운을 입고

엄숙하게 문 안으로 들어오는데

아, 당신은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인가?

나와 사랑을 나누고 싶소?

우리는 같지, 같지, 같지.

그런데 거긴 동굴 밖이요?

절벽인가? 끝없는 길인가?




대상 없는 분노에서 대상이 확연해지는 분노는 년 수를 따라 그 속도를 달리한다. 열정이 토해질 무대가 폐쇄되어 버린 게 주원인인 것 같다. 정신병, 동기를 이해하면 과격한 행동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흔히 정신을 깨는 단단한 껍질을 새의 부화에 비유하곤 하는데, 천적이 꼬이는 지대에서 보호할 대상이 없는 유약한 몸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타인에게 잔인해지긴 어렵지 않다. 신경을 가닥가닥 끊어내는 상태에선 착해지긴 글렀다. 벌거벗은 나를 보여주는 것은 쾌감과 불쾌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창을 닫고 모놀로그에 심취하는 소녀, 퉁명스러워진다.


넌 날 이해할 수 없어!


일전에 그런 말을 들었다. 누드를 부끄럽지 않게 느끼는 방법이란, 벗는 자의 눈을 가리는 거라고. 소년이 말의 눈을 찌른 것, 이런 이유인가? 소년 그 자신이며 그와 일치하는 욕망에게 벌거벗은 치부와 대낮 같이 시퍼런 배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억압되는 곳을 바늘쌈으로 찌르다 보면 나만 아플까? 보는 사람은 즐거울까? 그들은 새파랗게 피어나는 장미를 질투할까? 질린 구색을? 나를 속속들이 들여 본 사람은 그 열정을 살해하고 싶다. 물론, 다 본 사람은 아직 없다. 항상 어둡기에.


2005. 5. 2. MONDAY




나에게서 눈을 감아

진실은 잔인하고 찬란하니까

아니, 비참하고 잔열하지

우리가 연결된 세 마리의 나비를 잡아

어서, 너의 몸과 나의 몸이 닿으면

어디로 연결될지 몰라.

에쿠우스!

네쿠스와 플레쿠스와 섹수스까지 데리고 와



예전의 쓴 글을 보면 혼란한 머릿속이 떠오른다. 어두운 생각들을 엮어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던 억제된 분노와 말할 수 없는 괴로움. 침잠된 슬픔과 거친 생각들. 날카로운 언어들. 켜켜이 쌓인 울분들. 분열 전 괴이하게 부풀어 오른 광기처럼 현실에서 분리된 존재가 보이곤 한다. 절반은 미쳐 있었고 절반은 정상이었다. 눈만 이글거리는 채로 살기와 정념과 파괴와 변질의 욕망을 숨겨야만 했다. 이제는 동굴 밖 세상에서 지난 흔적을 바라본다. 다시 보이지 않는 동굴로 들어간다면 진실의 퍼즐을 풀어낼 수 있을까?


나만의 방식으로 글을 적고 나면 조금은 시원했다. 술을 먹고 갉아버린 위장과 역류하는 폐의 공기와 잡기로 뒤집어져 버린 대장을 기름지게 어르는 속풀이 같은 것이었다. 완전한 육체적인 탈속에 더불어 유려한 언어로 거친 강물의 끝자락에 놓인 감정이 마무리되면 달궈진 파괴적인 흥분도 가라앉곤 했다. 답답했던 순간에는 외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거칠더라도 문학적인 언어를 선택한 것은 지금 보니 괜찮은 선택이었다. 타인에게 오물로 뒤섞인 내부를 뱉지 않고 속에 웅크린 자신을 채찍질하는 문장의 힘은 세상을 비틀기에 적당하고 스스로를 씻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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