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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18. 2024

ABRE LOS OJOS, OPEN YOUR EYES

<오픈 유어 아이즈> 꼭두각시용 마임은 이제 그만

[ABRE LOS OJOS, OPEN YOUR EYES] PHOTOSHOP MOVIE IMAGE RETOUCHING by CHRIS


꿈과 현실, 인간은 양쪽 모두의 조종자가 될 수 없다. 수명도 언제쯤 마감 도장을 찍을지 모른다. 25년이 평균 수명이었던 로마시대에 비해 현대인의 평균 수명은 3배나 늘어난 통계치를 자랑한다. 그러나 기계의 발달로 육체가 편해진 대신, 속도감 있는 자동차에 부딪히는 사고로 얼굴이 불탈 잠재적인 장애는 늘어났다. 질적인 인생을 요구하는 인간의 상승된 기대는 냉동 인간을 급조할 최첨단의 기술을 이름 모를 과학자의 연구실에서 태동하도록 부질없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은 있었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선택할 수 없는 인생막대기 (Life Bar)에서 인간은 생의 의지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생전 못 이룬 꿈들을 다시 한번 이룰, 자의식의 어두운 통로를 지어내면서.


"외모와 마음 중에서 어떤 쪽을 택할 거야?"

- 글쎄, 솔직히 모르겠다.


가면 속에 숨겨진 얼굴을 알고 있다면 선택은 마음으로 기울겠지만, 처음부터 괴물처럼 일그러진 얼굴의 사람을 만난다면 대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소통이 편하게 취향에 맞는 두 개의 얼굴을 들고 가진 것은 시간뿐인 남자와 밀월여행을 떠난다. 날 모르는 사람, 나도 모르는 사람, 이런 관계가 좋다. 우린 서로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조이스틱은 내가 쥐는 게 낫겠다. 그가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꿈을 꾸면 꿈이 깰 때까지 당신과 나는 꿈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나와 당신은 나의 뇌가 불멸의 전선과 결합되는 순간 영원히 살해될 것이기에.


육체는 정지한 채 의식만으로, 연인들의 집, 나이트클럽, 식당, 가게, 병원, 놀이공원, 교도소 등 여러 공간을 자유자재로 잠입하며 가상의 세계를 장악할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해질까?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환상의 Turnout! 그것은 혹, 뇌사상태에서의 즐거운 비명이거나, 가사(假死) 상태인 배우자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하는 수도사의 괴리는 아닐까. 가면 속의 딜레마, 비활성화된 장기로 최고의 산해진미를 넘기는 오류를 불러온다.


“우리는 공원에서 만난 것 같았는데 비가 내린 것만 달랐어.”


기후는 다행히도 인간의 자유로운 메뉴버튼에서 멀어져 있다. 아직까진 비를 맞는 것만큼은 깜짝 이벤트인 것이다. 예기치 못한 행복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 진정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


THESIS: A(Birth) - VIDA(Life) - B(Death)

조건절: A와 B의 진행을 정지시키고 B’ 1을 조정하면서 C에 도달하기

=B’ 1(Selecting Birth & Avoiding Death by Myself) – SUENO(Dream) - C(Everlasting Life)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Alejandro Amenábar) 감독의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 Open your eyes 1997>에 나오는 가상현실의 사이클을 종합해 본 공식이다. 마음먹은 대로 조합하는 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가? 인물을 설정한 뒤 성격과 인성, 경험, 감정을 부여하며 그들의 삶을 유지시키는 권한을 오직 나만이 갖고 있다면, 나는 지배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 빈 껍데기의 공허가 이 가슴에서 울리진 않을까? 웃고 있어도 저들은 클론이니까. 아픔도 없고 불편한 내 기분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는 감정이입의 산물이니까.



이미지와의 결별을 떠올리면 늙어가는 친숙한 것들에서 도망치고 싶다. 주말에 아주머니들이 오셨다. 노환으로 고생하거나 질병으로 아프다면, 이런 가정법의 이야기를 하면서 만약 중병이 걸리면 자식들 인생에 짐이 되지 않도록 전문요양기관이나 보호시설에 들어갈 거라고 했다. 질병과 건강, 보호와 피 보호. 냉정한 현실 앞에서 선명한 심리적인 압박이 밀려와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외떨어진다는 게 쉬운가? 내가 정상인과 같은 상태일 경우에는 평소의 의지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내 몸이 달라지고 얼굴이 바뀌고 기억도 내 것이 아닌 상태로 바뀌면 그런 마음은 사라진다. 나는 내가 아닌 것을!


숙주의 상태에서 벗어나 기생하게 되면 어떻게든 살기 위해 건강한 기운을 흡입해야 한다. 설령, 늙고 병든 몸뚱이를 간호하다 먼저 쓰러지는 자식을 보면서 죄스러움을 안게 될지라도, 아픈 자는 의젓함과 체통은 던져버려야 한다. 의식이 굳어지면, 서로를 알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나의 주름을 만들었던 시간이 그 사람임을 말해주는 보증서일지 모른다. 그것을 지우고서 영원의 테이프에 목을 맡긴다니 최악의 종말이다.


조금이라도 보고 싶은 것을 가까이 두려고 얽고 조르며 사랑했던 가슴을 헐벗게 만드는 생의 욕구.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꿈까지도 현실의 공포에 지배당한 게 아닌가 싶어서 자꾸 좌골 쪽의 신경이 움찔거린다. OPEN YOUR EYES! 나의 두 눈을 떠야 한다. 당신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 없이도 나의 살아있는 눈을 떠야 한다. 꼭두각시용 마임은 이제 그만.


2005. 6. 30. THURSDAY



타인을 배려한다고 던지는 사람들의 예의적인 언사들이 부주의하게 들릴 때가 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대화 당사자들에게 참을 수 없는 적막이란 어색함을 주겠지만, 차라리 침묵만큼 솔직한 모습은 없다. 이전에는 타인들의 경솔한 말들에 가볍게 대처하지 못했다. 일상의 대화에서 전개되는 조심성 없는 말들에 휩싸여 대화하는 자리에서, 혹은 대화가 끝난 뒤에도 그것을 되씹고 관계적 행동을 유지하기 위한 유화적인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성질을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대응하면 모두들 잠시 현실을 자각한 듯이 미안해했지만, 다시 경쾌하게 잊고서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응답 속에서 의식이 무신경하지 못함을 자책했다. 경험적인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의 정립은 시간의 탄력성에서 발휘된다. 시간을 거쳐간 말들을 정리하면서 눈을 뜨고 있다. 영원함과 사랑, 젊음, 아름다움, 행복과 같은 단어에 대해 괴리감을 가지던 순간에서도 나만의 정의(定義)로 돌아보고 있다. 영원함에 대한 신비나 사랑에 대한 갈구가 있어도 그 모든 환상을 깨뜨린 실재의 사건 사고들이 존재한다면 아름다운 상상은 분명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말 것이라는 사실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장기 가수면 후 수백 년 뒤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치료가 가능할 때 깨어나는 프로젝트에 선정된다. 그는 어둠 속에서 태아의 모습으로 잠이 든다. 빛이 밝아진 어느 날, 그는 눈을 뜬다. 그동안 지구의 체제와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인공양수 밖에서 숨을 쉬게 된 그는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 인큐베이터 안에서 걸음마부터 새로 시작한다. 모든 장기는 뇌만 빼고 새롭게 배양되었다. 그는 희미한 과거의 기억만 남아있는 채 새로운 미래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를 살아나게 한 것은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기술이다. 그의 옆에는 스마트한 과학기술자들과 위생적인 의료관계자들이 24시간을 함께 한다. 남자가 아이의 걸음마에서 다시 성인의 걸음을 배우게 되고 피붙이도 인척도 사랑도 아무도 없는 현재에 대해 인식할 무렵, 연구자들은 생명연장의 쾌거를 이뤄낸 과학기술의 지속적 투자를 얻기 위해 남자의 건강한 피와 건강한 살과 건강한 장기와 젊은 얼굴의 현재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는 연단에 올라가 광속과 같은 시간을 거쳐 깨어난 자신의 모습을 권력자들과 지배층의 연회에서 선보인다. 건강하고 성공적인 재생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남자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져간다. 잠들 때면 따뜻하게 입술을 스치는 여인이 누구인지 그는 전혀 알 수 없다. 오랜 시간 뒤에 홀로 깨어남은 어떤 의미인가? 주변에 익숙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살아남은 적막한 공간에서 나는 정신적인 분열 없이 젊어진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한 남자의 공허한 절규로 마무리된 잃어버린 시간의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육체만이 아니라 감정까지도 영원히 가져가야 할 것은 없다. 시간과 동행했던 지나간 사랑이나 흘러간 젊음을 찾아오긴 어렵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을 가로지르며 진정 우리가 알고 싶고 되새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과학기술의 본질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순수한 지식에 대한 탐구에서 벗어난 인간의 탐욕을 볼 때면, 어리석은 욕망의 굴레에서 뒷걸음치고 싶다. 인간의 사랑과 애정에 대한 집착이나 모든 것을 움켜쥐고 싶은 소유적인 열망은 우리의 삶에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눈을 뜨고서 마음을 직시해 본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나를 나로서 바라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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