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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19. 2024

PLEIN SOLEIL, RIPLEY SYNDROME

<태양은 가득히> 삼킬 수 없는 욕망의 신기루 | 리플리 증후군

[PLEIN SOLEIL, René Clément 1960] MOVIE POSTER


"햇살이 뜨거워요."

- 네, 아주. 그러나 오늘은 이 태양의 열기조차 너무 감미롭군요.

"시원한 것 좀 드릴까요."

- 네, 최고로 좋은 날이니까 최고로 좋은 걸로, 최고로, 최고로, 최고로…



뜨거운 햇살 아래 누우면 태양과 마주했던 그날의 파도와 칼부림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나폴리 해변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등이 까맣게 그을리고 눈을 쓰라리게 만드는 땀이 쏟아져도 저 태양이 가득하다면 그녀와의 사랑은 불타오를 것이다. 어떤 배신도 파고들 수 없는 우리의 미래, 나를 치욕스럽게 벗겨내던 붉은 화상은 축복의 얼굴을 비출 것이다. 일말의 단서조차 남기지 않고서.


“리플리 씨 전화요!”


밝게 뛰어가는 톰. 그가 꿈꾸던 완전 범죄는 복제되지 않는 성공으로 남을 것인가. 누구도 모르는 태양의 배신은 그를 모두 내던진 요트 프로펠러에 걸려 여전히 떠돌고 있었다.


달은 주기적으로 모습을 달리하지만 태양만큼은 짙은 구름이 팔을 벌리지 않는 이상, 눈을 붙이려고  밤과 턴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둥그런 얼굴이다. 흑점의 분열이 가장 심해지고 자기장이 대기권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와도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한결같다. 오늘의 태양과 어제의 태양, 내일의 태양이 모두 태양의 씨로 양산한 아류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복제의 재능을 지녔다. 그래, 영화 속 리플리(Ripley)처럼 나의 희멀건 얼굴을 태운다. 하나의 티끌도 남기지 않고 뼈째로.


태양처럼 뜨겁게 가중되는 인간의 욕망,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존재는 이 얼굴을 퍼렇게 질리도록 만드는 요소들을 휘둘러왔다. 넘치는 재력, 멋진 차, 태어날 때부터 익힌 고귀한 습관, 쾌적한 배, 웅장한 집, 휘황찬란한 보석, 스마트한 옷들, 수제신발, 그리고 한눈에 반할 아름다운 여인까지. 타오르는 이탈리아의 해변에서 정어리 통조림을 따고 통통한 닭에 올리브기름을 발라 구워 먹으며 스파게티처럼 길게 이어진 축제의 밤을 즐기기에는 나는 천박한 태생이다. 유혹적인 크루즈여행! 거들먹거리는 플레이보이의 말투와 걸음걸이와 표정까지 익힌다면 이 모든 것을 한 손에 쥐겠지. 난 태생은 저열해도 머리만은 명석하니까. 원하는 것은 모두 다 얻을 수 있다는 자만심과 기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태양과 똑같이 뛰는 이 심장에서? 아니면 태양처럼 지글거리는 혈관에서?


범죄를 즐기면서도 죄를 피해 가며 시나리오를 원하는 대로 이끌어가면 최고로 좋은 기분이 들까. 어제는 그놈을 단칼에 처치했고 오늘은 그녀의 사랑을 얻고 내일은 귀한 옷으로 갈아입을 거야! 그러나 인생은 항상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 그렇게 쉬운 것이던가. 최고로 운수 좋은 날,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의 불운이 기다리고 있지 않던가! 영화를 보면서, 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행동을 피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대로 살다가 하나씩 성취함에 기쁨을 얻을 때도 있겠지만 어떠한 감상을 느끼기 이전에, 후회 없는 인생이란 존재할지 의문이 든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반복되는 연습을 감행하는 톰. 사소한 습관들을 기억하고 목소리 톤을 올리고 우락부락한 표정을 짓고 걸음걸이를 삐딱하게 하고 영사기로 여권을 비추며 시그니처의 각도까지 모방하는 노력을 보면서, 왜 이것이 사랑의 모습과도 비슷하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욕망과 사랑, 스스로가 바라는 것에는 철저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리플리의 욕망’을 고스란히 쏟는다면 정말 우리의 인생은 사랑으로 풍부해질지도 모른다. 물론 너무 과중한 욕망이나 사랑은 의지와는 다르게 부작용을 부르기도 한다. 노력조차 무시되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힘겨운 삶의 고리가 될 수도 있다.


<태양은 가득히> 새벽녘, 시야에 가득 채워진 바다를 보며 시각도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넘실대는 파도와 맑은 물빛이 가득한 이탈리아 해변, 연인들의 진한 포옹과 하얀 태양, 톰의 계략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오늘은 이 모든 게 정오를 기점으로 짧아졌다. 흥미조차 짧았다. 사람들은 품 속에 원하는 것을 꿈꾼다. 그러다가 하나가 채워지면 또 다른 것을 품으려 하고 그런 욕망은 반복과 복제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솟아오르는 자신의 꿈에서 희열을 느끼지만, 채워지는 동시에 나른한 권태에 빠진다. 만족을 모른 채 무언가를 끊임없이 얻기를 시도하면서 자기 얼굴을 변모시키는 생은 아이를 낳고, 창작품을 만들며, 이상형을 그리고, 닮은 꼴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것을 생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과도 결부시킬 수 있겠지만 자신의 꿈 주머니가 항상 바랬던 그 지점에 머물러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더 많이 세상을 삼켜버리고 싶은 욕망과 장구하게 생명을 이어갈 욕심이 부풀어 명경 같은 바다에다 내 얼굴도 아닌 얼굴을 비추면서 활짝 웃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인생에서 그보다 더한 악몽이 어디 있을까. 내가 아닌 나를 보고 있는 기분!


광기 어린 정오는 얼굴과 가슴을 보랏빛으로 멍들이면서 물속으로 저물어간다. 자유와는 명확하게 대치되지 않는 욕망과 함께 물과 태양과 파도와 백일하에 드러난 죄(罪)를 보면서 사람들은 한순간 감긴 눈을 뜨게 될 것이고, 말 못 하는 시체에 복잡하게 얽힌 밧줄을 풀면서 서로의 의심을 지워가게 될 것이다. 알리바이, 그건 시간과 조금 엇나가거나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면 언제든지 기억 속에서 모습을 바꾸는 몽환과도 같을 것이다. 사막에서 요술을 부리는 태양의 가벼운 손짓처럼.


오늘은 내 인생의 최고로 좋은 날이라고 말하면서 기지개를 켤 날이 언제인가. 단순히 수갑에 채워지는 욕망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지평선에서 둥글게 피어나는 태양이 생동하는 나와 함께 살아있다면, 자유롭게 돛대를 달고서 저 바다를 달려보겠건만! 그날이 오면 반갑게 내 얼굴을 비춘 저 햇살을 이 마음 가득히 받아들이고 싶다.


2005. 6. 25. SATURDAY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르네 클레망(René Clément)의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 1960>와 앤서니 밍겔라(Anthony Minghella)의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1999>까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재능 있는 리플리 씨 The Talented Mr. Ripley》를 잘 버무린 감각적인 스릴러는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한 여름의 단골메뉴였다. 사이코패스 중에서 퍼트리샤의 소설 "리플리" 시리즈에 등장하는 리플리만큼 강력하게 정신 나간 캐릭터는 없다.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란 용어는 개인의 이상과는 달리 실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속이는 거짓말을 하다가 상상 속의 거짓말을 실제라고 믿는 망상장애를 가리킨다. 즉, 지속적인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이 되고, 그 거짓말을 진실로 믿게 되는 가속적인 비현실성 망상과 더불어 현실과의 간극에 대해 도피적인 태도를 취한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아를 만들기 위해 상상력과 창의성을 사용하여 고도화된 거짓말을 하다가 스스로 자아분열의 상태에 이르는 반사회적인 범죄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캐릭터들은 영화뿐만 아니라 일상의 현실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자기애적인 성격을 통해 분열되는 현대적 자아의 모습은 결코 배워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현대에서는 심심치 않게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고 자극적인 소재로 인식하면서 영상이나 문장의 기록으로 남겨놓는다.


현실에 실재하는 리플리 증후군의 남녀 캐릭터로는 독일 출신의 이민자였던 클라크 록펠러(Clark Rockefeller)와 독일의 가짜 상속녀로 알려진 안나 소로킨(Anna Sorokin)이 있다. 클라크 록펠러는 크리스티안 칼 게르하르츠라이터(Christian Karl Gerhartsreiter)라는 본명을 버리고 자신이 미국의 록펠러 가문의 일원이라고 주장하면서 상류사회에 진입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쌓았다. 그는 자신의 거짓신분을 이용해 1995년 하버드 출신의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산드라 보스(Sandra Boss)와 결혼을 한다. 이들은 12년의 결혼 생활 후에 2007년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산드라는 남편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2008년 클라크 록펠러는 자신의 딸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FBI의 수사망에 걸려 1985년 그가 저지른 캘리포니아 하숙집 아들 살인사건에 관한 범죄행각이 밝혀지게 되면서 기소되어 유죄를 받았다. 그의 이야기는 마크 씰(Mark Seal)이 쓴 록펠러의 슈트를 입은 사나이 The Man in the Rockefeller Suit : The Astonishing Rise and Spectacular Fall of a Serial Impostor》라는 책에서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안나 소로킨(Anna Sorokin)은 '안나 델비(Anna Delvey)'라는 가명으로 뉴욕의 상류 사회에 침투하여 자신을 독일의 상속녀라고 속이고 여러 금융 사기와 사치를 일삼았다. 1991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안나 소로킨은 가족과 독일에 거주한 러시아 이민자 출신인데 그녀는 프랑스의 패션잡지 인턴으로 뉴욕에 왔다가 뉴욕의 화려하고 세련된 분위기에 매료된다. 그녀는 뉴욕의 상류사회에 침투하여 고급 호텔에 머물며 고급 레스토랑과 클럽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영화나 패션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인스타에 자신의 재력을 과시한 그녀는 신분을 과장하여 주변인에게 거액의 돈을 빌리는 밑장 빼기 수법이나 가짜인 자신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다가 2017년 금융사기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녀는 절도와 사기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20만 달러의 벌금과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지만, 그녀의 자극적인 소재는 넷플릭스의 관심을 끌면서 <인벤팅 안나 Inventing Anna>라는 드라마까지 제작하게 만든다.


두 인물 모두 리플리 증후군에 근접하지만, 클라크 록펠러가 자신을 속이는데 집중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록펠러 가문의 상속자로 변모시키고 그 삶에 동화되기 위해 자아 분열적인 증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리플리 증후군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으며, 안나 소로킨은 타인을 속여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데 초점을 맞춰 자아실현보다는 사기적인 기질을 발휘하거나 경제적 이득추구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며 자기 과시적인 행태를 가진다는 에서 리플리 증후군의 특성을 지닌 복합적인 사기꾼으로 볼 수 있다. 둘 다 단순한 사기행각을 넘어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는 면에서 리플리 증후군이 그저 심리적인 망상의 상태가 아니라 현실을 왜곡하고 그 굴절된 현실 속에서 사회적, 법적인 문제로 심각한 폐단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의 영화감상을 쓸 그 당시에는 인생의 내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붉게 타오르다 못해 물빛 바다와 겹쳐져서 자줏빛으로 변한 태양을 피해 다녔다. 흑점처럼 가슴에 달라붙은 검은색에 심취해 있었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행동을 귀찮아했고 의식적으로 피했다. 계속 일을 하다가 엎어버려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짜증이 났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 모든 것이 미정이어서 육감적인 판단과 즉흥적인 결정에 의존했다. 그러다가 동굴을 박차고 나가버린 이후로 다시 태양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자외선을 가려줄 수 없는 오존층의 파괴 때문인지 어둠에 박혀있던 체질이 변한 것인지 햇빛 알레르기에도 자잘한 반응이 생겼다. 빛을 피해 다니는 음지의 습성을 지녔던 고독한 청춘에서도 벗어나있음을 보게 된다. 이제 태양이 가득한 하늘 아래서 사는 것만이 남은 것인가.




기술이 뛰어난 지금에서 고전영화를 리메이크해도 언제나 그 옛날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건, 처음 영화를 만들 때의 뜨거운 열정과 화면에 대한 감독의 끊임없는 연구, 대사 한 줄에 담긴 의미, 배우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풍광과 결합했을 때의 미장센을 현대의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이라고 했다. 가마에서 흠뻑 식은땀을 흘리고 나온 백자가 하얗게 숨을 쉬듯이, 그런 영화는 이제 보기 힘들다.


복제를 향한 욕망은 본질을 열어보면 똑같다.

복제는 허황된 신기루, 흩어지면 거친 모래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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