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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Nov 11. 2024

TAXI DRIVER

<택시 드라이버>, 나는 괴로움을 당한 그대로 거기 있었다.

[Taxi Driver 1976]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주인공 이름이 트비스였는데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의 주인공 이름도 역시 트비스다. 비스, 이후로 친숙한 울림이 되었다.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트비스란 이름을 가졌으면 좋겠단 농담 같은 이야기를 했던 적도 있었다. Travis, Travel, Trap, Trace, Track, Tract…


 Tra-로 시작되는 여행은 우리 인생이 놓여있기 전에 설치된 덫을 추적하고 제거하는 길이자 누구와도 연관되어 있지 않은 무심한 지대를 경유하면서,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과정이다. 불면의 밤이 막을 열면,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의 작품 중에서 <택시 드라이버>가 생각난다. 거칠고 웅크린 채 조용하면서 외롭게 돌아다니긴 하지만 캡(Cap)에서 감금된 한없이 우울한 남자. 바디 빌더(Body Builder)의 근육질 몸매를 보면 곧장 계란과 닭고기냄새로 직행하는 후각을 가진 나는 무스로 매끄럽게 정리한 머리칼과 슈트케이스로 무장한 비즈니스맨을 대해도 역시 넥타이로 굵은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충동에 가득 차 있다. 단련된 에너지로 삐걱대는 이 사회에 충실히 적응하는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한쪽 눈썹이 쭉 올라가는 것은 삐딱한 성격과 취향 때문인가?


 불면증에 시달린 눈으로 심야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밤거리를 방황하다가 택시를 운전하겠다던 남자. 세상을 향한 원인 모를 울분이 가득 서린 채, 쓰레기로 도배된, 오직 배설만이 존재하는 거리를 불쾌하게 달리던 트비스를 보면서 굉장히 착잡했었다. 이유 없이 한 순간 그가 좋았다. 차갑고 조울증이 섞인 내레이션으로 반복되는 음색과 삐뚤어진 사고에 콧방귀를 뀌었지만 적어도 그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손님이 원하면 더러운 지폐가 말한 만큼 태우고 내려주는, 구석에 쳐 박힌 몸뚱이로 오직 타인을 위해 페달을 밟는 창녀와도 닮아 보이는 어색한 미치광이. 전쟁에서 돌아왔지만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는 그를 대하며 그가 미친 게 아니라 이 세상이 돌았단 생각이 스몄다. 약간 어색하게 구는 자의 행동엔 관심이 없고 허풍만 떠는 동료들 역시! 총포를 사서 누구를 쏜다 해도 내가 영위하는 슈퍼마켓을 침입한 도둑이라면 눈감아지는 세상. 그 누구보다 엉클어진 걸 참지 못하면서 정리되어 보이는 가짜의 공간에서 혼잡해지는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어찌하여 나와 비슷한 인간을 굉장히 싫어하면서도, 또한 그런 사람들에게 정신없이 끌리는 것인가. 예언자와 밀매꾼 모두가 호리는 특성을 소유하나 누구는 신처럼 우대받고 누구는 죄인처럼 취급당하는 이 세상은 거울의 양면을 비춘 거나 다름없어 보인다. 정치가와 매춘업자. 선동가와 호객꾼. 경호원과 파수꾼. 그리고 그들을 지나치는 택시 드라이버.


 차를 몰게 되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택시를 몰아볼까?’ 우리나라 정서상, 대화가 많이 오고 가는 직업이라 곧바로 고개를 저어버렸지만 사무실에서건, 학교에서건, 지하철에서건, 백화점에서건 그리고 이 방안에서도 모두 통에 넣은 빨래처럼 비비적거리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정지한 채로 움직이는 방식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열아홉, 어떤 모임에서 들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직업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별로 같은가?"


 누군가 질문을 던졌는데 한 남자가 그랬다.


 “버스 운전사.”


 보수를 따박따박 받아도, 매일 같은 궤도를 돌며 보이는 것은 언제나 같은 풍경인 운전수란 명함은, 자기가 보기엔 참을 수 없이 지겨운 직업이라고 말했다. “택시 운전사는?” 묻고 싶었지만, 버스 운전사를 지목한 그를 이해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우리의 삶은 다, 운전사처럼 비슷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삶이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넌 진정으로 행복하게 산다고 믿는가, 그저 말할 뿐인가.


 "One of these days, I’m gonna get organized."


 트비스가 꿈처럼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며 집에 명함처럼 박아놓은 구호이다. "언젠간 얻고 말 거야." 그는 매그넘 44 구경과 38 구경. 콜트 22. 왈사 8연발을 가슴에 지닌 채 알 수 없는 원흉, 팔렌타인(Palentine)을 쏘려고 매일을 훈련한다. 그 원인은 금발머리 때문인가? 다시 그는 어린 창부를 통해 피의 세례로 구원의 통형을 거치지만 폭력의 방향을 재치 있게 틀어버리는 우연한 발사(發射)는, 외로움과 소통의 부재가 가득한 현실에서 한쪽 어깨를 결리게 만드는 사소한 말과 같이 되어버렸다. 정신병, 그 자체로 설명되거나 폭력배를 세탁한 희대의 영웅으로 조명되기에는, 가판대의 구문(舊聞)으로 변한 신문(新聞)이 실패한 자들의 세상을 입맛대로 과장함으로써 괜한 희망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샌드위치처럼 떡처럼 얽혀있는 복합적인 세상의 맛. 하나하나 밝혀내려면 이 생에 대해 굉장한 미각을 소유한 자가 아니고선 굉장히 힘든 일일 것이다.


 "나는 괴로움을 당한 그대로 거기 있었다."


 영화 속에서 한 정치가는 연설 중에 휘트만을 인용했다. 그리고 그를 죽일 마음을 품으며 트비스는 택시에 앉아있었다. 나도 그들을 보며 앉아있었다. 괴로움은 말해지지 않는다. 설령 말한다 해도 겪지 않은 자가 알겠는가? 그저 눈살만 찌푸릴 뿐. 우리는 다양한 인용을 하면서 산다. 휘트만의 말대로, 난 꼼작 없이 괴로움을 당한 그대로 여기 서 있다. 달라질 건 없어. 행복해진다 해도. 난 여기 있을 뿐이고, 스쳐가는 건, 나를 모르는 이들이겠지.


2005. 3. 8. TUESDAY



 세기의 선거가 끝났다. 정치적인 폭풍의 여파는 세계를 한 바퀴 돌며 이기적인 간사함이 제자리를 꿰찰 때까지 현재 진행형으로 순환할 것이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트럼프의 장남이 젤렌스키보고 용돈 끊기기 38일 전이라고 조롱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피식 웃었다. 남의 집 불구경에 애꿎은 목숨까지 잃는 말도 안 되는 싸움들이 쉽게 종결될지 궁금해졌다. 트럼프 효과로 비트코인이 치솟았다는 기사에 몇 년 전 비트코인만이 아니라 코인 투자에 집안을 말아먹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미 돈이며 관계가 한바탕 정리된 사람들의 내부는 다시 욕망으로 불타오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투자를 하려면 길게 해야 한다. 일 이년으로 알 수 없는 세상은 십 년, 이십 년, 백 년 이상을 내다보는 끈기와 지략이 필요하다. 죽음을 일으키는 자와 죽음을 맞이하는 자, 무기를 들고 대항하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다. 공간에 갇힌 자들의 어리석은 선택은 전쟁의 필수적인 광기의 총아들이 일 순위를 차지한다. 인간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굉음에 귀를 다치고 머리를 강타한 자들에게서 흔히 보게 된다. 내부에서 타오르는 알 수 없는 검은 분노와 정신적인 고립은 불안한 정신상태가 이유였다고 말하기엔 괴로움에 대한 설명이 부실하다. 이 황폐한 도시에서 어떠한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없다면, 괴로움을 당한 그대로 거기에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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