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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Jul 16. 2024

선거를 통한 영국의 정치 지형 변화와 노동당의 미래


2024년 7월 4일 치러진 영국 총선거(General Election)는 노동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노동당의 압승은 선거를 앞두고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승리를 뛰어넘는 기록적인 것으로 바꿔 말하면 보수당에게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참패로 기록될 사건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는 2차 대전 이후 보수당의 처칠(W. Churchill)과 노동당의 애틀리(C. Attlee)의 집권을 제외하고 영국 현대사에서 마거릿 대처(M. Thatcher)토니 블레어(T. Blair) 총리를 능가하는 능력 있는 정치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정치 지형 속에서 주목할 만한 지도자의 등장이나 눈에 띄는 정책이 없는 가운데 치러진 선거로 영국 정치사에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흔히 뛰어난 정치 지도자라는 의미는 위기 속에서 난관을 극복하고 국가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명확한 정책으로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이끄는 인물을 지칭할 때 말한다. 그런 점에서 영국의 정치사가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전쟁에서 국가를 구하고 국민 개개인에게 승전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갖도록 만든 처칠이나, ‘영국병(British disease)’이라는 고질적 병폐 속에서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한 후 영국을 구해낸 대처 전 총리를 뛰어난 정치 지도자라고 평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영국병은 2차 대전의 승전국인 영국이 1960~70년대에 걸쳐 강성 노조의 등장과 그들의 불법적인 활동으로 국가가 위기에 직면하면서 결국은 IMF의 금융지원까지 받게 되는 당시의 현실을 지적한 개념이다. 대처 총리는 전국적 규모의 강성 노조와의 힘든 싸움에서 승리한 후 쇠퇴를 거듭하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영국을 재건하여 유럽의 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하도록 만든 지도자였다. 따라서 대처 총리의 집권 이후 보수당은 1997년 총선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18년 동안 영국 정치를 이끄는 집권 정당으로 영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보수당의 장기 집권은 1997년 총선에서 44세의 젊은 리더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된다. 블레어는 대처 이후 매너리즘에 함몰되어 경쟁력을 상실한 무능하고 무력한 보수당을 상대로 자신의 통치철학의 바탕이 된 ‘제3의 길(The Third Way)’을 통해 지지층을 넓히고 정책을 주도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한다. 



집권 이후에는 ‘새로운 영국(New Britain)’을 건설한다는 목표로 ‘창조경제(Creative Economy)’ 개념을 도입하고 다양한 정책과 국가 발전 프로그램으로 영국의 부흥을 주도하였다. 비록 집권 기간 미국의 우방으로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위협을 과도하게 포장하여 이라크전쟁을 지원하고 참가함으로써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많은 영국 국민은 국가의 성장을 도모하고 국가의 명예와 자존감을 높인 그의 판단에 큰 지지를 보냈다.


블레어의 10년(1997.5.2.~2007.6.27.) 집권 이후 그의 후임자였던 고든 브라운(G. Brown)은 3년을 채우지 못하고 2010년 5월 실시한 선거에서 데이비드 캐머런(D. Cameron) 대표가 이끄는 보수당에 정권을 내주게 된다. 브라운은 전임 블레어 정권에서 오랜 기간 재무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2인자로서 인지도가 있었으나 카리스마가 없던 그는 블레어의 그림자에 가려져 집권 이후에도 전임자의 정책을 폐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드러날 만한 성과 없이 총리직을 수행하다가 정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노동당으로부터 다시 정권을 가져온 보수당의 캐머런은 출중한 외모와 배경을 바탕으로 연임에 성공하면서 보수당의 장기 집권에 기초를 마련했지만 공공 부문과 복지 예산의 대폭 삭감으로 의료 서비스 악화의 계기를 마련한 가운데 결국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Brexit)’ 가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결국 재임 6년 만에 물러났다.


캐머런의 뒤를 이어 취임한 테레사 메이(T. May)는 취임 이듬해인 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과 런던 브리지 테러에 대한 대응 실패와 런던의 임대아파트 화재 사건 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언론과 여론의 비판을 견디지 못한 채 2019년 7월 3년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등장한 런던시장 출신의 보리스 존슨(B. Johnson)은 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통치 기반을 다지며 정국을 운영했지만, 약속을 어기고 4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증세를 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했고,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관저와 보수당 당사에서 술자리를 가진 ‘파티게이트 스캔들’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사퇴하였다. 



존슨의 후임이자 세 번째 여성 총리에 취임한 엘리자베스 트러스(E. Truss)는 역사상 최단기간 재임 총리라는 더 심각한 불명예 속에 45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는데 그녀의 정책은 취임 초기 자신만만하던 모습과는 달리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언론의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악화되는 여론의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사퇴를 선언하였다. 


그녀의 후임인 리시 수낵(R. Sunak)은 영국 의정 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인도계 출신의 총리로 그의 취임은 영국 정계는 물론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사건이기도 했다. 수낵은 전임 리즈 트러스 총리가 감세정책 논란으로 45일 만에 낙마한 뒤 2022년 10월 총리로 취임하여 국정을 운영해 왔다. 수낵은 영국 의정 사상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로 의회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정책 실패는 물론 지지 세력의 외연 확장에도 실패하면서 노동당에게 정권을 넘기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키어 스타머(Keir Starmer)가 이끄는 노동당의 등장은 이런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스타머는 2020년 4월 노동당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당 대표로 당선된 이래 노동당을 이끌었다. 스타머는 변호사 출신으로 영국과 웨일스에서 검찰총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으며 이전 노동당 당수였던 제러미 코빈(J. Corbyn)의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에서 이민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2024년 7월 스타머와 그가 이끄는 노동당은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했지만, 그를 둘러싼 국내외 상황은 여전히 애매하고 불투명하다.



대외적으로는 다양한 변수들이 스타머 앞에 놓여있다.

우선 유럽에서 영국의 강력한 협력 파트너인 독일은 2021년 12월 메르켈의 뒤를 이어 취임한 올라프 숄츠(Olaf Scholz) 총리가 전임자만큼의 지도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E. Macron) 대통령도 이번에 치러진 선거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걷지 못하고 있어 프랑스 내부의 갈등이 심화하는 모습이다. 


전통적으로 유럽을 이끄는 트로이카 체제인 영국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는 때로는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며 유럽의 발전을 주도해 온 핵심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긴밀한 협력은 유럽의 정체성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핵심 요인이 된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실상 붕괴한 경제와 사회시스템의 복구가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채 회복하지 못한 여건 속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안보와 경제에 대한 불안과 위기의식은 트로이카 3개 당사국은 물론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까지 확산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고조되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 속에 유럽에 대한 중국의 태도도 간단치 않은 현실인데 중국은 무역을 통해 유럽 개별국가를 상대하며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다가올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이 간과해서는 안 될 요인으로 부상함에 따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통해 미국의 군사력에 안보의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유럽으로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난관의 극복은 쉽지 않은 여건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감한 이슈로 부각했던 우간다 난민 처리 문제는 실제로 선거기간 쟁점이 될 만한 민감한 이슈였지만 장기간 갈등의 소재가 될 사안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의료제도를 둘러싸고 드러난 복지와 교육개혁 문제 등 국민의 일상과 더 밀접하게 연관된 사안들이다. 


이런 의제들은 경제가 활성화하고 충분한 재원이 마련되면 해결이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팬데믹 이후 침체한 경제 상황,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발생한 국방비 지출, 또한 전쟁이 가져온 생필품과 농산물 가격의 급등은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민감한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세가 아닌 증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의 저항과 분노를 막을 뚜렷한 방책의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스타머의 노동당은 이런 문제들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다.



결국 이번 영국의 총선거에서 15년이라는 보수당의 장기 집권을 끝나게 한 이런 요인들이 여전히 눈앞에 펼쳐있는 현실 속에서 스타머의 지도력은 어떤 판단을 하게 될지를 전 세계는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에게는 어떤 전략이 있을까? 과거 전쟁의 위기 속에서 보여준 처칠의 리더십, 노조의 횡포로 쇠퇴해 가던 영국을 구해낸 대처의 리더십, 평범한 섬나라로 전락해 가던 영국을 활기차고 열정을 가진 국가로 변모시킨 블레어의 리더십 같이 뛰어난 지도자로서의 DNA가 그에게도 있을까? 스타머가 영국 정치사에서 어떤 위상을 가진 인물로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받게 될는지는 매정한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오로지 그가 감당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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