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 Jan 10. 2022

보헤미안(Bohemian)들을 위한 변명


사람들은 왜 낯선 곳 여행하기를 꿈꾸는 것일까.


어느 때인가부터 사진 찍히는 게 싫어졌다.

변화를 확인하는 게 마뜩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공항을 떠나는 순간부터 얼굴 표정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장해둔 사진을 통해서였다.


‘낯선 곳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그랬다.

처음 도착한 낯선 곳의 공기는 지역마다 늘 달랐다.





런던은 공기가 무거우면서도 음습했다. 우울한 영국인들 표정이 저절로 떠올랐다. 파리에서는 자유로움이 공기에 섞인 냄새가 났다. 공기를 깊게 들이켜면 자유분방해질 것 같은 느낌이 싫지 않았다.


핀란드만에서는 얼어붙은 바다를 바라보며 차가운 얼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겨울 모스크바는 콧속을 따갑게 찌르는 공기를 갖고 있었고 한 여름 바이칼 호수에서는 깊은 민물 속에 사는 물범 냄새가 났다.


만하임에서는 비와 눈이 섞인 냄새가 났고 인터라켄에서는 맑고 서늘한 냄새가, 제네바의 레만 호수 주변에서는 시원한 산 공기와 묵직한 도시 냄새가 섞여 떠돌았다.


한 겨울에 도착한 텔아비브는 바람이 따뜻했다. 공기는 가벼웠고 가벼운 느낌으로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바이는 공기 속에서 텁텁한 모래 냄새가, 또 낙타의 냄새가 났다. 길게 바다를 한쪽에 끼고 있는 이스라엘하고는 공기의 느낌이 완연히 달랐다.


산이 많은 나라 라오스의 방비엥에서는 비가 내리면서 어릴 적 동네에서 맡았던 짙고 탁한 공기를 맡을 수 있었다. 바닥에 부딪치며 올라오는 빗속 흙냄새는 가슴을 방망이질하게 만들었다.





도착한 낯선 곳에서 처음 하는 습관은 커피를 찾아 마시는 일이었다. 낯선 곳마다 물맛이 달랐고 따라서 커피 맛도 서로 달랐다. 맛과 향이 다른 커피를 맛보는 일은 소소한 기쁨을 주곤 했다. 때로는 혀를 덮는 진한 맛으로 또 가끔은 입안을 감싸는 그윽한 맛으로 인해 감동할 때가 많았다.


두바이에서 맛본 커피는 뜨거운 공기만큼이나 진해서 좋았다.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커피 열매를 맛본 염소도 이 맛에 반했을까.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은 축구경기장만큼이나 소란스러웠지만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코펜하겐의 커피는 건네준 여급의 표정만큼이나 무덤덤했으며 오슬로의 커피에서는 추운 겨울 냄새가 났다.


나라마다 또 지역마다에서 제각각 개성을 드러내는 커피 맛은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비해 큰 기쁨을 선물로 되돌려 주곤 했다.


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은 밝고 편안하고 온화해 보인다.

왜 그럴까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내가 낯선 곳에 머물면서 느끼는 긍정적 요인과 그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살면서 주변에서 유발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종종 일상이 피폐해지곤 한다. 여행은 해외의 낯선 곳이든 혹은 국내의 멀리 한적한 곳이든 스트레스 유발 요인들과 나를 자연스럽게 격리시켜준다. 이것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고 따라서 몸도 자연스럽게 편안해진다.





낯선 곳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곳을 마음대로 또 오랫동안 볼 수 있고 싫은 것을 피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일상의 즐거움이 있으며 쉬고 싶을 때나 눕고 싶을 때 누구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또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충만하다. 따라서 심신의 편안함과 안락함은 자연히 따라오는 보너스가 된다.


그런 일상은 내 삶의 주인이 비로소 나임을 깨닫게 해 준다.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평온한 표정을 갖도록 해 주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낯선 곳이 주는 부정적 요인이 왜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낯선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낯선 음식 


해외의 낯선 식당에서 종종 메뉴판을 받아 들고 무엇을 선택해서 먹어야 하는지 난감해하던 경험이 있다. 무심코 주문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때는 하루가 개운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도 추억으로 가볍게 넘기면 새로운 경험이 된다. 애매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는 늘 묻곤 했다.


“무슨 음식을 추천해주고 싶어요?”


낯선 언어 


오죽할까. 소통의 문제로 내 의도와 전혀 다른 상황이 앞에 등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비행기나 기차를 놓친 경우도 있었고 오지도 않을 버스를 넋을 놓고 기다린 적도 있었다. 길가를 지나는 촌로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한적한 길거리에서 노숙을 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계 공통어인 보디랭귀지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요즘엔 휴대전화에 통번역 기능의 앱을 설치하면 미아가 될 가능성은 제로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적극적인 문명의 이기 활용은 낯선 곳을 여행할 때 크게 도움이 된다. 불완전한 대화는 모름지기 내가 편안하게 생각하면 상대가 답답해하는 게 순리니 우선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리면 된다.


낯선 사람들 


외국에서 낯이 익고 말이 통하는 한국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게 반가운 까닭은 그동안 낯선 곳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 중 잠깐 내려 구경하던 재래시장에서 말이 통하지 않던 고려인 후손들이 김치를 파는 것을 보며 가슴이 짠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도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채고는 함박 미소를 지으며 반가워했다. 비록 낯선 사람들이라 해도 소소한 인연을 통해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할머니의 오빠가 6·25 전쟁에 참전해서 갓 스무 살을 넘긴 나이에 돌아가셨다며 할머니로부터 한국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던 버킹엄셔에서 온 영국 청년에게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낯선 문화와 낯선 주변 환경 


말 설고 낯선 곳에 가면 고생한다는 우리말이 있다. 예전에 통용되던 말이니 요즘 상황과는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던 환경이나 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이질적인 요인들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삶의 지평과 안목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가끔씩 혼자서 조용히 성찰의 시간을 갖곤 하는데 낯선 곳을 여행하며 체험했던 신비한 경험과 추억이 살아온 삶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는 점에 이견은 없다. 그런 회상을 하노라면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게 하지 않던가.  





낯선 곳에서의 일상을 즐기려면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생경함을 극복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말처럼 쉽겠냐고 반문하겠지만 차분하게 준비하고 낯선 것들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과정을 통해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점차 긍정적인 태도로 바뀌지 않을까. 추억을 담아 귀국길에 오른 후에는 또다시 낯섦을 동경하며 짐 가방을 꾸리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을 동경하면서 낯선 곳에서 얻었던 소소한 즐거움에 살을 보태며 추억을 쌓으면 어떨까.


이제는 본격적으로 낯선 곳에서의 ‘한달살이를 꿈꾸어 볼까’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