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해는 순식간에 진다.
햇볕이 사라지는 순간 스산함이 찾아온다.
섬의 밤은 그렇게 찾아왔다.
멀리 고기잡이배는 작은 불빛으로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선착장 작은 식당의 희미한 불빛 등 아래
헝클어진 머리가 드문드문 보인다.
‘그들도 우리처럼 고등어회를 먹고 있을까.’
밤바다를 보며 춤을 추는 남녀를 보았다.
선착장 한 끝에서 잔잔한 바람은 여전한데
어둠 속 춤사위에서 세월이 드러난다.
그들의 춤에서는 외로움이 떨어졌다.
흥은 이미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뭍에서 왔을까.’
“거 뭐 볼 게 있다고 요란을 떠누.”
할머니는 평생 일몰을 보았다.
섬 사투리는 노인의 하얀 머리칼을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일을 해야지 놀러만 다니누.”
도로 한쪽에서 말리는 고구마도
쓸모가 그득하다며 촌로는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화물차를 몰고 온 또래의 노인과
정겹게 인사를 했다.
동네 두 노인들의 농 짓거리가 수상한지
다른 할머니가 말참견을 하며 슬며시 걸어온다.
‘여기는 그들이 나고 자란 섬이 분명할 테지.’
“사진은 저맨치 가면 더 잘 나온다고 하대.”
섬을 찾아온 손님에게 투정한 게 미안했던지
촌로는 쭈글 해진 손가락으로 저만치에 있는
포토존을 일러주었다.
욕지도의 밤은 차가웠다.
섬은 볕에 의존해 사는가 싶다가
거친 바람과도 쉽게 어우러졌다.
‘오래전 섬에서 나이가 들어버린
작부의 운명도 그랬을까.’
두 번째 밤에도 그들은 춤을 추었다.
전날 밤보다 더 농염하고 진한 춤사위였다.
음악은 섬의 그것이 아니었지만
섬의 달빛과 섬의 바람과 섬의 고독과도 어울렸다.
‘섬이 그들을 받아들인 것일까.’
욕지도 가는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승용차로 통영까지 다섯 시간 남짓.
점심으로 맛본 멍게 비빔밥은 맛이 달랐다.
마른 멸치볶음에서는 여전히 바다 냄새가 났으며
진한 미역국에서는 어머니 냄새가 났다.
배를 타고 한 시간.
섬에서는 늘 바다 냄새가 났다.
그곳에서 고독한 고등어의 향기가 났다.
바람의 방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새벽 바다의 해무 속에서 느꼈던 내음과
밤바다를 바라보며 느끼는 바다의 냄새는 달랐다.
‘그래서 정을 붙이고 섬에서 오래도록 사는지도 모르지.’
바다를 보며, 바람을 맞으며 짙은 해무에 숨어서도
춤추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바닷바람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는지 모른다.
이제는 섬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고.
해무 속에서 욕지도는 저만치 작은 점으로 남았다.
밝은 햇볕 속에서 섬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밤바다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