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만나 조심스럽게 논길을 걷고 밭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물이 소란스럽지 않게 흐르는 방앗간 앞이었다. 밤은 깊어 사방이 깜깜했다. 멀리 벌판 앞에 펼쳐진 하얗게 핀 꽃들이 어둠 속에서 길을 일러주었다. 초가 둘레를 감싸 안고 흐르는 물을 사뿐 뛰어넘어 방앗간에 들어선 남녀는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발을 움직였다. 깜깜한 어둠 속이라고 해도 그 안에 결이 다른 색깔이 있는 법이고 그 차이를 남녀는 용케도 찾아냈다. 밤인 까닭에 사랑은 깊어갔을까 '
이효석의 고향 봉평을 다녀왔다.
아직 때 이른 봄이지만 동네 어귀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현장은 감추지 않고 속살을 드러냈다.
당시 경성제일고보와 경성제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니 그의 고향 봉평에서는 수재 소리를 들었을 터였다. 생가는 비록 헐려버렸지만 터에 다시 올려지은 농가를 보며 그의 어린 시절이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공간을 상상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저 멀리쯤이었을 노루목 고개와 여울목은 따뜻한 봄볕 아래 보일 듯 말 듯했고 지척에 있는 봉평 장터에서는 더 이상 “어물 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 장수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작품 속 주인공인 허생원과 조선달이 다음 날 진부 장터에 때맞춰 도착하기 위해 “밤을 새우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며” 서둘러 걷는 모습이 잔잔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생가 마당 곳곳에 탈곡기와 풍로, 그리고 도시에서 찾아온 방문객은 도무지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농기구들이 놓여 있다. 마당 한편에 잔뜩 쌓아놓은 장작더미는 쓰임새를 기다리며 얌전히 놓여 있었다.
방앗간 앞에 서니 클럽의 화려한 불빛 아래서 사랑을 찾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과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신작로를 벗어나 논밭 길을 오가다 조심스럽게 물레방앗간을 찾아 사랑을 나누던 예전 사람들 모습이 묘하게 대비된다.
생가 터 마당에서 봄볕을 쬐며 이곳저곳을 무심한 듯 구경하던 여인들이 있었다. 물레방앗간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속내를 들킨 듯 서둘러 눈을 돌렸다.
‘물레방앗간 사랑은 그런 것이었을까.’
어두울수록 사랑은 깊었을 것이다. 허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가 우연히 만나 달빛에 감동하여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 되어버린 사랑을 나누던 그 무렵 메밀밭은 그저 은은한 등불이 되어 그들의 은밀한 사랑을 포근하게 감싸주지 않았을까.
눈 내리던 겨울에 우연히 들러 뜨거운 국밥으로 허기진 속을 달래며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들르겠다.”라고 식당 여주인에게 언약을 한 것이 생각났다. 그곳 진부 시내와 이곳 봉평이 불과 25킬로 거리로 작품에도 등장하는 차로 오가기에는 머지않은 지역이다.
기별도 없이 들른 우리 일행을 보며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반가운 속내를 살짝 감춘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었다. 지난번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진한 맛의 따뜻한 국밥이 나왔다. 이번에는 향긋한 미나리 무침이 덤으로 나왔다. 고소한 기름을 넣었는데도 미나리의 향기가 여전한 게 예스러운 솜씨가 아니다. 미나리무침에서 여인의 정성이 물씬 풍겼다.
그녀에게선 작품 속 시샘 많은 충줏댁 의 ”입술을 쭝긋하고 술 붓는 솜씨가 거친”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향토성 짙은 질박하고 서정적인 글을 쓰며 창작활동을 하던 이효석은 아내와 자식을 먼저 보낸 후 자신마저 병을 얻어 35세의 젊은 나이에 가족 곁으로 떠나갔다. 작품 《메밀꽃 필 무렵》이 1936년에 발표되었으니 벌써 86년의 세월이 흘렀다. 무심한 듯 시간이 흘렀고 그의 고향 봉평과 인근 마을도 크게 변했다.
고요한 달빛이 가로등 불빛으로 바뀌긴 했어도 물레방앗간을 훔쳐보는 이들의 속내는 여전한 듯하다. 하기야 첫날밤을 보낸 후 봉평을 마음에 두고 반평생을 개울을 건너고 벌판을 지나고 산길을 걸으며 마지막 밤의 인연을 쫓던 사내의 마음을 짐작이야 하겠나 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