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영어 원서로 된 철학책을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는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치사상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철학의 이론이나 논리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책은 기본개념을 이해하는 것조차 넘기 힘든 산처럼 어렵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학자나 연구자들도 기본개념과 용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그것들을 붙잡고 시간을 보낸다.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하는 것을 보면 학생들을 앞에 앉혀놓고 불완전한 지식으로 가르치기 흉내를 내는 ‘스승 역할 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철학이나 사상 교육은 기본적 개념을 장황하게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당연히 그것은 연구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출생하여 영국으로 이주한 영국 경제학자이며 197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 Hayek)는 신자유주의 철학을 현실정치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한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수상의 사실상 경제 분야 멘토였다.
‘대처리즘’(Thatcherism)은 단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 외교와 국방은 물론 노동과 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한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정치철학을 총합한 개념이다.
하이에크는 1944년에 출간하며 지금까지 자유주의 정치 경제 담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자신의 유명한 저서 《노예의 길, The Road to Serfdom》에서 정치인 대처 수상이 추구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철학이 지향하는 경제운용 방식에 해답을 건넸다.
하이에크는 유럽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히틀러의 독재와 소련 전체주의 폐해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색채로 물들어 가는 영국인들에게 위험성을 경고하고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2년간의 노력 끝에 노예의 길을 저술했다.
《노예의 길》은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이던 마가렛 대처(결혼 전 이름은 마가렛 로버츠)에게 큰 감명을 주었고 40년 뒤 수상이 된 대처에 의해 세상을 바꾸게 되는 결정적인 촉매제가 되었다. 하이에크의 주장에 매료된 영국의 대처 수상은 그의 처방대로 다양한 경제정책을 실시해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줄이는 한편 개인의 소득세율을 낮추고 노조의 간섭을 단호하게 배제하면서 고질적인 ’ 영국병(British Disease)’을 치유했다.
하이에크가 1978년 등소평의 초대로 공산주의 국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지도자인 등소평은 경제정책의 실패와 문화혁명의 폐해로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던 중국의 현실을 개탄하며 “인민들이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라며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 국가지도자 등소평조차 중국의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는커녕 인민들을 먹여 살릴 방법을 놓고 답답해하던 상황이었다.
“하이에크는 자유주의 경제학자이니 그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없다”는 게 당시 중국 지도부의 여론이었지만 등소평은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그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이다. 결국 경제전문가로서 하이에크가 건넨 조언은 놀랄 만큼 간단했지만 등소평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고 중국 인민들은 더 이상 굶지 않게 되었다.
“농민이나 상인들이 거둔 이익의 처분권과 소유권을 그들에게 주라”는 게 핵심이었다.
‘내가 노력해서 거둔 이익은 내 것이 된다.’라는 인식은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 중국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시장사회주의’(Market Socialism)라는 용어는 이런 배경을 거쳐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정치는 좌파의 이념에 따라 통치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되 경제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선택해서 이익을 취하는 절묘한 통치철학이 중국에서 실험을 거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오늘날 거대하게 성장한 중국을 보라. 중국 인민들의 자유로운 소비행태를 보면 웬만한 자유주의 선진국을 능가한다. 우리가 해외에서 지출하는 외화와 중국인들의 행태를 비교해 보면 어디가 진정으로 자유 시장경제 철학을 실천하는 나라인지 헷갈릴 정도다. 중국인들은 해외의 부동산 구입에도 거침이 없어서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런던 시내 템즈강변을 끼고 있는 새로 형성된 빌라촌을 휩쓸 듯이 주워 담고 있다.
어디 하이에크뿐이겠는가. 그와 경쟁하던 케인즈(J.M. Keynes)는 몰론 마르크스(K. Marx)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유로코뮤니즘’을 탄생시키며 전 세계 진보정권의 멘토 역할을 수행한 그람시(A. Gramsci)의 위상은 하이에크 못지않다. 사실 이런 것이 학자의 역할인 것이다.
학자는 담론에만 치우치지 않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실천적 해법을 제시해서 학문적 연구는 물론 국가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철학이나 정치사상 분야 전문가들의 역할이 도대체 어떤 분야에서 하이에크만큼의 빛이 나는가. 철학과 사상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공부가 가능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자나 전문가들이 이런 역할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는 미래 이슈를 담론으로 정해 진지한 연구와 토의가 진행되어야 모름지기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시대의 흐름을 이해 못 하는 무능한 리더나 정치권, 관료들이 과거 문제들을 정치와 경제, 그리고 행정의 중심에 올려놓고 갑론을박하는 한심한 작태를 반복하고 있다.
20여 년 전 북경을 방문했다가 발마사지를 받으며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반만년 한국 역사에서 중국인들을 내려다보며 이들에게 마사지를 받는 유일한 세대가 되겠구나.’
이런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던 적이 있었다.
오늘의 현실을 보니 그때 머리 한편에서 스멀거리며 올라오던 우려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는 답답함이 든다.
국민들이 균형 잡힌 철학적 사고로 무장하고 세계 사상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어렵고 지난한 이런 연구가 다른 선진국에서는 그 바탕 위에서 올바르게 국가가 운영되고 국민 개개인의 인식이 성장하고 사회가 풍요롭게 발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미래에 국가발전을 지속할 명쾌한 철학 어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