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그런 광경을 볼 기회가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장례식장에서 곧잘 곡(哭)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인척이나 친척들 중에 그런 사람 한두 명이 꼭 있었다. 우리 집안에는 사촌 형수가 그랬다. 얼마나 구슬프고 구성지게 곡을 하는지 집안 어른 상사(喪事) 시에는 형수가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족들의 슬픔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남편인 사촌 형이 비교적 이른 중년의 나이에 죽었을 때 그녀의 곡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일 만큼 처절하고 애잔했다.
우리나라는 여성들에게 수시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역사가 있었다.
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우리가 잘 아는 병자호란의 역사가 그랬다. 왕이 머리를 조아린 후 그 대가는 힘없는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적용되었다.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 백성이 60만, 당시 조선의 인구가 1천만 명가량이었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그중 상당수가 힘없고 죄 없는 백성들이었다, 남자들은 준 노예 신분이 되어 전쟁터나 공사와 농사에 쓸 병력이나 노동력이 되었지만 끌려간 여성들의 운명은 남성들보다 가혹했다.
가족과 생이별하는 어린 처녀들이나 양반집 규수, 그리고 무지몽매한 여성들조차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를 이미 짐작했다. 그들의 울음에는 곡소리만 나지 않았을 뿐이지 두려움과 공포로 가슴이 메었다. 사람은 기가 막히면 속울음을 운다. 못 먹고 못살았어도 그리운 가족과 고향을 뒤에 남겨두고 속절없이 끌려갈 때 그들이 흘리던 눈물이 그저 울음이었겠는가.
나중에 가까스로 돌아온 여성들도 환향녀(還鄕女)를 속되게 부르는 ‘화냥년’이 되었다. 가부장적 유교사회인 조선사회는 위정자나 가부장인 남성들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인해 죄 없는 여성들이 능욕과 굴욕을 당해야 했다. 1636년 청군의 침입 소식을 들은 뒤 이틀 만에 남한산성으로 도망치고 다시 47일 만에 항복한 자들과 사대부들이 그녀들에게 능욕당한 죄를 물었다. 기가 막힐 일이다.
일제 치하 위안부들이나 해방 후 소위 ‘양색시’나 ‘양갈보’로 불리던 미국군 위안부들 대부분도 국가가 무능한 탓에, 가정이 빈곤한 형편에 혹은 동족상잔 전쟁의 상처로 인해 탄생한 여인들이었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희생의 결과로 죄 없던 그들이 흘린 눈물도 300여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시대를 읽지 못하고 국력이 약해져서 나라가 흔들리게 되면 그 피해는 오로지 백성들의 몫이 된다. 양의 동서, 시대의 고금을 불문하고 우리는 수없이 이런 사례를 목격했고 또 경험했다. 주변의 강대국들 사이에 놓여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그러한 역사의 교훈은 늘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지역 간, 세대 간, 빈부 간, 심지어 종교 간 갈등을 야기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굴종적인 태도로 외국에서의 평가와 시선만 의식하며 성과에 자족하는 정부치고 올바른 방향으로 국가를 성장시킨 역사적 사례는 어디에서고 찾아보기 어렵다.
여자의 눈물은 남자가 흐르게도 하지만 집안의 우두머리인 가장으로 남자는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막아줄 책무를 진다.
이웃의 젊은 엄마가 오늘도 어린아이를 들쳐 안고 빠른 걸음을 한다. 어느 날은 어린이집으로, 또 어느 날은 친정으로 내달리며 아침부터 진땀을 흘리는 광경이 낯설지 않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가 가까스로 직장에 도착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상사의 질책에 눈가를 적시지 않기를 바라곤 한다.
유학시절, 아기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매일같이 어린 딸아이를 맡겼다.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는 길목에서부터 두려움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작은 손으로 내 목을 꼭 감싸 안곤 했다. 집 문 앞에서 울며 들어가는 아이의 작은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며 늘 이렇게 약속하곤 했다.
“조금만 견뎌줄래. 아빠가 평생 지켜줄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시대에 무망 한 희망만을 고집하고 감성 정치로 내부의 반쪽 지지 세력이나 결집하는데 능한 유약한 정부를 주변 강대국 지도자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 치하 고통의 역사에서 그나마 기득권층의 아녀자들은 무사했다는 사실만을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를 분열시키고 국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통을 치유하는 능력이 없는 정부는 외부의 침략을 감당할 능력도 없다. 집권층의 무능으로 인해 나라가 쇠약해질 때 이 땅의 아내와 딸들은 또다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위기 시에 국가가 통합되고 국민들이 단결함으로써 나라의 안위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일반적 정의가 되어 버린 역사 교과서의 원론적 내용이다. 외적과의 싸움에는 무능한 등신이 되었다가 우리끼리의 싸움엔 귀신이 되곤 하는 국가의 분열이나 조장하는 무능한 집단이 오늘날에는 과연 사라진 것일까.
1637년, 양력으로는 1월 3일부터 2월 24일까지 바로 이 무렵에 이 땅은 청의 오랑캐들보부터 철저하게 유린을 당했고 사서는 385년 전 그 굴욕의 역사를 ‘병자호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역사 앞에서 오늘의 현실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