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발간되는 대표적인 인명사전으로 『who’s who』라는 책이 있다. 영국인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했던 인명을 다룬 책인데 거의 3,000페이지 분량으로 무게가 2.5kg가 넘는데다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인쇄된 두꺼운 분량이다. 매년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책이니만큼 그 안에 실린 인물들의 기록을 통해 또 그들의 족적을 쫓아 영국이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는데 이만한 자료가 없다.
영국은 사람에 대한 연구가 참 풍성하게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은 각자 타고난 재능이 있기 때문에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 그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에 흔적을 남긴다.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신문의 ‘부고(Obituary)’ 란을 보면 어떤 인물이든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며 살다가 타계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들에게도 모든 사람을 온전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선량한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판에는 늘 정적(政敵)이 있고 기업 간에는 경쟁자가 있으며 자기와 다른 생각으로 늘 앙숙이 되는 파트너가 당연히 존재한다. 심지어 부부 간에도 이혼율이 결코 낮지 않은 걸 보면 사람 사는 사회는 어디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다른 사람의 삶의 궤적에 관심이 많을까. 그들에게는 상품과 달리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흠결이 있어도 이해하며 바라보려는 문화가 존재하며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우려는 자세가 있다. 세상에 완벽한 정치인이 어디 있으며 사마리아인 같은 사업가가 또 있을 것인가. 학자도 모르는 부분이 있고 운동선수도 경쟁에서 실패하며 탐험가도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아니냐.’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수많은 사건에 연루되어 좌절하면서 성장하듯이 긴 인생길을 놓고 보면 사소한 흠결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까닭에 흠결이 있는 사람도 많은 장점을 가진 인물이니만큼 그가 추구하던 분야에서 성공한 반열에 오르게 되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반면에 그들의 엄격함은 상품을 놓고는 여실히 드러난다. 문제가 있는 상품의 반품은 제도적으로 확실히 보장한다. 모든 법률이나 규정은 철저히 소비자 입장에서 만들어져 있으므로 고객의 불만이 대충 넘어가는 법은 없다. 먹고 마시고 입고 이용하며 거주하는, 심지어 해외여행을 포함하는 모든 형태의 상품에서 그들은 소비자를 보호한다. 다시 말하면 기업의 이익보다 시민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며 그것이 국가가 올바르게 운영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 빈번하다. 집의 지붕을 고치는데 우리가 이삼일이면 될 것을 한 달이 넘도록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목욕탕의 세면대 수리도 일주일은 잡아야 한다. 간단한 차량의 점검과 수리도 인내심이 고갈될 무렵에 다 마쳤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동네 병원에서는 감기가 저절로 나을 무렵에 진료 일정이 잡혔다고 연락이 온다.
보고 싶은 오페라는 일 년 전쯤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사전에 예약한 고객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모두 흠결의 발생을 예방하려는 문화 속에서 드러난 현상이다. 사람과 달리 상품에 관한 한 사소한 흠결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인식 때문에 정치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영국 어느 서점을 가도 사람에 대한 평전이나 자서전은 늘 상위 목록에 올라 있다. 이런 풍경은 그 대상이 정치인이나 학자, 사업가, 탐험가, 작가, 여행전문가, 예술가, 운동선수나 연예인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들이 살아온 과정에서 보였던 끊임없는 노력, 성취의 기쁨과 실패의 씁쓸한 경험 등이 당사자들의 진솔한 고백이나 제삼자의 객관적 평가에 의해 공정하게 쓰인 까닭에 그런 교훈과 덕목을 배우려는 마음이 사람들에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나라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회구조가 이들이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제대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이런 생각들이 사회 곳곳에서 실천되고 있다. 생각과 실천이 그저 구호로 끝나며 겉도는 우리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현실과 한번 비교해 보자.
우리 사회에서는 영역을 가리지 않고 5%의 흠결이 사람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5%가 아닌 아주 조그만 흠결도 95%를 상회하는 장점을 순식간에 뒤엎는다.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런 형편이니 개인적으로 역사에서 존경할만한 인물이라고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 외에는 기억하기 어렵다. (필자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겠다). 훌륭한 학자, 백성의 편에 섰던 선각자들이나 유능한 인재도 한두 가지 흠결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역사에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 역사에서는 훌륭한 인물을 찾는 것보다 이런 경우를 찾기가 훨씬 쉽다.
차라리 흠결이 있으면 그나마 덜 억울할 텐데 패거리 의식이 모사를 꾸며 없는 일을 만들어 내는 못된 전통으로 결국 인재들을 희생시킨다. 그러니 반만년 역사에서 존경할만한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나라에 인재가 없으니 당연히 늘 외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국가발전의 동력을 찾는데 어려움에 직면한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상품에 대한 흠결은 완벽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나타난다. 문제를 보는 인식이 참 후하다. 거기에도 바탕에 지연과 혈연으로 끈끈해진 집단의식이 존재한다. 그런 지경이니 상품을 만들어 내는 위인들의 인식이 안이하고 안과 밖의 상황에서 완연히 다르다.
오래전 동아건설이 리비아에 수로 공사를 했다 얼마나 꼼꼼하고 철저히 공사를 했는지 완공 후에 국제사회로부터 극찬이 쏟아졌다. 그 기업이 49명의 사상자를 낸 붕괴된 성수대교를 공사했다. 채 피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이 애꿎은 참사의 희생자가 되었다.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해외에 건설한 많은 건축물들이 있다. 큰 공을 들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 평가에서 이름을 올린 게 한 둘이 아니다. 완벽한 시공에 공기를 맞추느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서 해당 국가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유독 국내에서의 공사에는 소비자인 국민들로부터 불만이 가득하다. 최근 광주에서 발생한 현대산업개발의 부실한 공사는 빙산의 일각이다.
자동차도 국내용과 해외 수출용에 차이가 있고 (가격은 오히려 더 비싸고 보장내역도 크게 다르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 모두에서 한국의 소비자들은 호갱이다. 그러니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게 당연하다. 금속활자를 만들고 팔만대장경을 주조한 선조들의 후손인 우리가 어찌 이런 사회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외국에서의 평가에는 목을 매면서 내부적으로는 소비자인 국민들을 홀대하는 이런 사회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견발표나 학술토론에서도 늘 상대방의 지적할 거리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대의를 무시하고 자신만을 드러내려는 소탐대실의 모습이다. 그런 지경이라 “발표자의 의견에 더 해 완성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몇 마디 말씀드리겠다”는 표현은 왠지 산뜻하게 느껴진다.
해법은 없는 것일까.
경제적 수치만을 강조하며 선진국으로의 진입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내실을 기하며 서로를 이해하면서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을 찾아 배우려는 인식의 개선이 없는 한 성숙한 나라로의 발전을 도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인간인지라 흠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여건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흠결을 다독여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서구사회의 사례를 보면서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who’s who와 같이 문화든 예술이든 혹은 경제시스템이나 사회제도든 ‘Made in Korea’라는 상품과 제도의 발전에 기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흠결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발전에 이런 공로가 있었다고 우리의 인명사전에 가득히 기록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