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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Jul 26. 2023

달과 숨바꼭질


2023년 7월 2일(음력 5월 15일).


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며 전국에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더운 날씨에다 이틀 전 아들이 이사를 해서 이리저리 피로가 겹쳐 하루종일 방콕 하기로 했다.

물론 이사하는데 내가 직접 간 건 아니었다.

아내가 가서 봐줬고 난 멀리  세종시에서 근무하며 바쁜 마음만 보태고 있었다.

우리 집은 이사할 때  아내가 대부분 일선에서 진두지휘하고 나는 근무로 인해 거의 마음만으로 보조역할을 했었다.

지금까지 열 번 이상 이사를 했으니 아내는 이미 이사에 있어서는 전문가, 즉 마스터급이다.


하필 이삿날에 비가 많이 내려 조금 걱정은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컨테이너 박스차량으로 운반 후, 엘리베이터로 짐을 옮겨 이삿짐이 비에 젖을 일은 거의 없었다.

무사히 이사를 마치고 마무리는 아들 내외에게 맡겼다.

자기 집이니까 당연히 마지막 짐정리는 아들 내외의 몫.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TV를 시청하며 일요일 하루를 집에서 보냈다.


용평에서 열린 KLPGA  골프경기 마지막 라운드.

오늘은 생애 첫승선수가 새로 탄생했다.

과감하고 멋진 샷을 구사하며 얻은 값진 첫승.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하다.

승수도 있고 친밀감이 있는 선수를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새로운 선수가 생애 첫승을 했으면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부귀영화는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누렸으면~~.

골프경기가 끝나고  노브랜드 햄버거와 닭다리, 날개튀김을 사 왔다.

밥 차리는 일도 번거롭고 해서 간편식으아내와 저녁을 때웠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복면가왕.

특집으로 시작된 첫 방송 분부터 8년 동안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빼놓지 않고 시청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전보다 흥미는 덜 해졌지만 특별히 볼 것도 없으니 그 시간이 면 자동적으로 채널 고정.

출연자들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오늘도 가왕이 6차 방어전에 간신히 성공했다.


드디어 휴일 공식일정완료.

간단히 짐을 싸서 근무지인 세종시 숙소로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저녁 8시.

평일 같으면 어스름 히 해가 남아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끼어 일찍 어두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평상시처럼 8~90년대 유행했던 락발라드 음악을 틀고 남양주 다산신도시에서 출발.

숙소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 시간 차 안은 미니 단독콘서트장이나 다름없다.

락발라드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고음을 마구 질러댄다.

유튜브를 통해 배운 두성을 써서 열정적으로 노래를  따라 해 보지만 듣는 사람이 없으니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출발 후 강동대교를 지나 중부고속도로에 진입해 문득 하늘을 쳐다봤다.

짙은 구름사이에 밝고 둥근달이 둥실 떠있다.

크고 둥근달을 가까이에서 바라본 지가 꽤 오래된 듯하다.

정월 대보름달만큼은 못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십오야 밝은 둥근 보름달"이다.

밝은 달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하는 일도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다음 주 토요일은 외손녀 돌날이고 그저께는 아들이사도 무사히 마쳤다.

앞으로도 무탈하고 모든 일이 다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멋진 보름달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름달 주위로 어렴풋이 달무리도 보이고 야말로 멋진 한 컷 장면.

그런데  아뿔싸 이미 차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를 지나치고 있었다.

좋은 사진을 찍을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다음 휴게소에서 찍어야지 다짐하고 계속 달을 쳐다보며 운전을 했다.

다음 마장휴게소까지  소요지간 20분 정도.

별일 없이 휴게소에 다다를 즈음,  보름달 주위로 차츰 구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구름사이로 숨어 버리기 전에 사진을 찍겠다는 조급함에 차  속력을 높였지만 도착 1분 전에 보름달이 구름사이에 숨어 버렸다.

"우~~~~~~씨!!!"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세종시까지 아직 2개의 휴게소가 남아 있다.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숨었다를 반복하는 보름달과 나의 숨바꼭질이 다시 시작되었다.

두 번째 삼성휴게소까지  2~30분.

바짝 긴장한 채로 하늘과 계기판에 눈을 오가며 차를 몰았다.

가끔씩 보름달은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그 시간이 매우 짧았다.

삼성휴게소에 거의 다와 가는데 보름달은 어스름한 달 빛만 비친 채 구름 속에 숨어  꼼짝을 않고 있었다.

두 번째도 실패.


이제 마지막 오창휴게소만 남았다.

휴게소까지 또  다른 20분간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처음 15분 정도는 구름이 더 두꺼워져 달 빛마저 구름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의 보름달 촬영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휴게소에 다다르기 2킬로 전 보름달이 살포시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차의 속도를  높여 오창휴게소에 도착해 고속도로변에 위치한 언덕 부분에 급하게 차를 세웠다.

재빠르게 내려 휴대폰으로 촬영준비 완료.

구름에 반쯤 가리어진 보름달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5분 정도의 기다림이 지나자 드디어 보름달은 수줍게 달무리에 둘러 싸인채  잠시 내게 얼굴을 드러내 주었다.

그리고 다시 구름 속으로 영원히 숨어버렸다.



구름이 저만치 있을 때의  크고 둥근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한 시간 이상의 숨바꼭질 끝에 간신히 촬영에 성공한 보름달은 오랜 시간 동안 잊혔던 꿈과 소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게 해 주었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 보름달은 볼 수 없었지만, 어렵사리 찍은 보름달에 나의 소망을 간절히 빌어 본다.


"온 세상 사람들 맘 편히,

 다 게 해 주소,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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