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 아저씨 Dec 07. 2024

독거노인의 한 주 일과~~~


서울 사는 딸이 2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10월 중순 직장에 복직을 했다.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사돈 내외분이 외국에 계신 연유로 외손녀 돌봄은 어쩔 수없이 나와 아내 차지가 되어 버렸다.


집이 양평이라 매일 출퇴근을 할 수 없어 결국 주중에 아내는 서울 딸 집에, 나는 양평에 있기로 했다.


아내가 시쳇말로 딸네 집 식모살이(?)를 시작하며 우리는 한시적인 주말 부부가 되었다.


"자식 집에서 숙식을 하며 손주를 돌보면 식모, 출퇴근을 하면 파출부."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딸네 집이라 해도 어디 내 집만큼 편안할 수 있겠는가?

외손녀 돌봄과 더불어 간단한 집안일까지 하다 보니 아내는 영락없이 입주 가정부가 되어 버렸다.


아내가 그렇게 서울에 있는 동안, 난 본의 아니게 60대 초반 주중 독거노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아내의 주중 하루 일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외손녀 아침과 저녁밥 챙기기, 어린이집 등하원 도우미, 하원 후 딸 부부 올 때까지 놀아주기, 어린이집 등원 시 집안청소 및 허드렛일, 장보기, 병원 가기 등.


자식 둘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이제 좀 편안하게 쉬려나 했더니 다시 육아 전쟁터로 들어가 버렸다.


양평 집에 오는 주말이라고 아내가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독거노인인 남편의 주중 일용할 음식을 장만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쉽게 데우거나 끓여 먹을 수 있는 국이나 찌개, 다양한 밑반찬류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도록 밥을 한 끼씩 소분해 용기에 넣어 두기 등 음식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2 ~ 3주에 한 번쯤은 손자 출산 후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들내외를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 일산으로 달려간다.


게다가 한 주간 밀려 있던 빨래까지 하고 나면 주말 이틀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고 또다시 한 주가 시작된다.


좀 쉬엄쉬엄하라고 훈수를 보지만 눈에 보이는 일은 바로바로 해야 하는 성격 탓에 나로서도 말릴 도리가 없다.


그럼 독거노인이 된 나의 주중 일과는 어떨까?


시간적 제약은 따로 없지만 막상 혼자 생활해 보니 그리 한가한 것 같진 않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5시 반경 답십리에 있는 딸네 집으로 차를 몰고 아내와 같이 간다.


사위와 딸 출근 후 외손녀와 같이 아침식사 그리고 9시까지 어린이 집에 외손녀 데려다 주기.


아내와 같이 점심식사 후 오후 3시경 혼자 청량리에서 양평으로 기차를 탄다.


오후 4시경 집에 도착해 저녁식사.


설거지하고 난 후 책 읽기나, TV 시청 아니면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걸로 월요일 하루 일과가 끝이 난다.


화요일에서 목요일.


순서가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주중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하루 일과는 거의 변함이 없다.


아침 8시쯤 일어나 잠시 뒤척이다 보통 9시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밤 12시경에 잠자리에 드니 하루 15시간 동안 일과는 주로 네 가지 활동으로 이뤄진다.


첫째, 하루 세끼 식사에 소요되는 5 ~ 6시간.


아내가 주말에 먹거리를 준비해 주는데도 불구하고 음식을 끓이거나 데우고, 먹고, 설거지까지 하는데 한 끼에 기본 두 시간은 소요가 된다.

요리까지 직접 한다면 하루 15시간을 다 써도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모든 집안살림을 아 온 아내의 노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다.


둘째, 운동하는데 3시간 정도.


실제 운동하는 시간은 1시간 반정도지만 오가는 시간과   운동 후 샤워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3시간 정도가 걸린다.


셋째, 전자 피아노연습 2시간.


오전, 오후 한 시간씩 정도는 피아노 습을 한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혼자 하다 보니 어렵고 힘들지만 나름대로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악기의 제왕이라는 피아노연주를 욕심만큼 잘하진 못하겠지만 몇 곡정도는 멋지게 연주를 해 보겠다는 목표를 두고 초보레슨단계부터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넷째, 독서와 글쓰기에 2시간.


요즘은 지역마다 도서관 시설이 잘 되어 있어 웬만한 책은 도서관에서 대여해 볼 수 있다.

이사를 하거나 근무지가 바뀌면 행정주민센터 다음으로 방문하는 곳이 도서관이 되었다.

회원등록을 하면 인터넷으로 도서검색이나 대여 신청을 할 수 있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서 거주 도시에 있는 모든 도서관의 책들을 빌려 읽을 수 있다.

더구나 희망도서를 신청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책을 구매해서 가장 먼저 도서 대여 알림을 보내 준다.

한 달에 평균 3권 정도 책을 읽고 간간히 생각날 때마다 글을 쓰다 보면 하루 2시간은 쉽게 지나간다.



나머지 시간은 TV시청이나 잡다한 소일거리를 하며 보낸다.

틀에 박힌 일정대로 하는 것이 아니어서 순서나 시간이 바뀌기도 하지만 네 가지 일과는 웬만하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 외에도 특별활동으로 가끔씩 하는 스크린 골프, 대중 사우나, 혼밥 외식, 집청소나 자전거 산책등을 포함하면 하루 일과가 나름대로 빡빡하다.


ㆍ금요일


서울 딸네 집에서 아내를 픽업해 오는 날이다.


오전에 서울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양평에서 오후 4시 기차를 탄다.


이 날은 기차 탑승전까지 되는대로 편하게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거나, TV를 시청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오후 5시쯤 딸네 집에 도착해 외손녀와 잠깐 놀다 보면 딸 부부가 퇴근을 한다.


저녁 식사를 하고 퇴근 러시아워를 피해 밤 7시 이후 양평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 것으로 주중 일과가 드디어 끝이 난다.


ㆍ토, 일요일


음식 장만을 위한 장보기, 선배부부와 가끔 하는 외식,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한 달에 한번 정도 끌려가는 성당미사가 주말 일정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조사로 인해 서울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집에 있지만 주말은 주말대로 바쁘게 돌아간다.




굳이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10월 중순 이후 한 주 일과를 대부분 이렇게 보내고 있다.


다행인 것은 외손녀가 내년 3월 회사 어린이 집에 입학이 결정되어 그때가 되면 입주 돌보기가 끝이 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딸 집에 자주 들락거리겠지만 그땐 나도 독거노인의 삶을 청산하게 된다.


"주말부부가 되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라고 혹자들은 말하지만, 홀로 사는 것보다는 둘이서, 떨어져 사는 것보다는 그래도 같이 사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독거노인의 삶이  개월 후 끝나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