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피곤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끌어당기며 출근길 발걸음을 힘들게 한다. 사무실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하..."라는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월요일 출근길 내 모습은 한결같다.
몸은 피곤하고 주말에 먹은 게 과했는지 속까지 안 좋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늘은 오전에 커피 마시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뜨끈한 온돌을 배에 대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문서를 읽고 있다.
"커피 마셨어?" 친한 동기의 카톡이다. 동기는 오랜만에 일찍 출근했다고 커피 한잔 하자고 한다. 나는 동기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가 동기를 만난다. 동기는 아침부터 직장 상사 흉을 보며 거친 말을 쏟아낸다. 사실 이전에도 여러 번 들었던 내용이다.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게 피곤하다. 상사 흉을 보는 동기 말에 호응하는 게 힘들다. 그래도 월요일 아침부터 나를 믿고 속마음을 털어내는 동기를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 웃는 얼굴로 서로의 사무실로 돌아간다.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9시 5분 전이다. 출근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전화벨이 울린다. 이 전 부서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장상사 K의 전화다. '무슨 일로 아침부터 전화지?'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K는 내게 점심 약속 있냐고 물어보며 직원 S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다. K는 내게 불편하고 어려운 상사다. 그리고 S 또한 그렇다.
오늘은 컨디션도 안 좋고 속도 안 좋아서 다음에 같이 드시자고 거절을 하고 싶다.
그런데 내 입에서는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나는 K가 불편하지만 나보다 직급이 높은 K의 점심 제안을 거절하면 안 될 거 같다. 거절도 못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내가 좀 한심하다.
나는 혼자 있는 게 좋다. 여러 사람이 모인 왁자지껄한 자리는 피하고 싶고, 가끔은 회사 점심시간도 혼자 보내고 싶다. 회사에서 무리를 잘 만드는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 같다.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고 약속이 많은 인싸들은 직장생활도 참 재밌게 한다 싶다. 나 같은 아싸는 가끔 외롭기도 하지만 애써 만남을 만들고 관심 없는 대화로 내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직원들 모임자리가 만들어지면 나도 나간다. 나가기 싫다가도 막상 나가면 사람들과 어울리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 혼자 있는 게 좋으면서도 직장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 안심이 된다. 그러니 직장에서 누군가 나를 불러주면 거절을 못하고 나가게 된다. 소외되지 않으려고...
'나 혼자 산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봤다. 기안 84가 모교를 찾아 강연하는 장면이 나왔다. 강연 후 후배들 질문에 답을 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해 고민이라는 학생에게 기안 84가 한 말이 내 마음에 유독 와닿았다.
"학교 다닐 때 수업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어요.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이 밥 먹으러 가자~ 하면서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떠들었고, 어느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는데 알고 보니 나만 빼놓고 다들 밥 먹으러 간 거였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일 아닌데 그때는 정말 미칠 것 같더라고요.."
남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 보이는 기안 84도 과거에는 혼자 남겨지길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구나. '기안 84 같은 사람도 나와 비슷한 면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묘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기안 84의 실제 성격과 과거 그의 모습을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TV로 보이는 지금의 기안은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사람 같다.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틀에 맞추지 않는 날것의 엉뚱한 모습으로 자신만의 소신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런 기안을 좋아한다. 나는 기안의 행동과 모습을 보며 그는 단단한 자아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단에서 떨어져 혼자 남겨지는 것, 소외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진짜 강한 사람이다.나는 언제쯤이면 직장에서 소외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