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가던 여행을 못 갈 때면 아내와 나는 이야기를 나눈다. "공항 가고 싶다.", "제주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게 비행기를 타선가?", "몰라, 근데 좀 달라." 단절의 시대는 저리 갔다. 꽤나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시대, 우리가 익숙히 알던 그때의 그 시절로 우리는 돌아왔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방파제에 앉아서 본 수평선의 끝 마냥, 마스크 너머의 표정을 읽을 수 없던 그때는 이젠 없다. 그리고 우리는 과감하게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목적지는 교토.
일본 교토시 우쿄구에 있는 광륭사. 우리나라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빼닮은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을 보러 갔다. 용산, 사유의 방에서 본 반가사유상의 기억을 되살리며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방문했다. 친절로 느껴지는 매표소를 지나 드디어 마주했다. 초입에서부터 느껴지는 모종의 기운은 아내의 나의 발걸음을 짖눌렀다. 기운. 어두움이 주는 기운일까? 신흥사 통일대불 내원법당의 초입에서 느꼈던 기운과 유사했다. 이유 모를 무서움. 광륭사를 가기 위한 노력들에 비해 짧은 시간만 머물렀다.
“무서워, 얼른 나가자.”
“무섭기는, 보자.”
“...”
“나가자.”
집밥을 정의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집밥은 할머니가 차려 주신 밥상이었고, 어느덧 서른 중반이 되고 아내와 함께 차린 밥상이 나의 집밥이 되었다. 퇴근 후면 하루를 달래듯 서로 간에 할 수 있는 범위의 말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TV를 보며, 대화로는 해소되지 못할 무거움을 떨쳐 낸다. 교토를 가기 전, 의도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 “꿈을 좇아 마이코가 되기 위해 함께 교토에 온 두 친구”의 이야기,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을 봤다. 그리고 기온 거리를 직접 가 봤다.
철학의 길. 긴카쿠지에서부터 에이칸도 근처까지 대략 1.5km 길이의 길이다. 배는 고팠고, 예정했던 곳은 폐업했다. 눈에 보이는 어느 곳을 가는 게 최선이었다. 고요한 목문을 고요히 열어 정중히 인사를 하고 친절히 자리를 안내 받았다. 일본인 같지 않은 한 남자가 유일한 손님이었고 나지막한 여성이 유일한 사장이었다. 기름기 없는 볶음밥이 나왔다. 추운 겨울에 적합한 음식과 분위기. 대학 시절, 나름의 철학을 외치며 칸트니 플라톤이니 니체니 쇼펜하우어니 떠들었던 지난 나의 모습을 거듭 씹던 하루였다. 돈이 무척 없던 그때, 편의점 앞 빨간 의자에 앉아 또는 대학 병원 내 벤치에 앉아 삶을 주고 받던 그때가 슬쩍 떠올랐던 단 하루. 하나둘 거리를 걸으며 아내와 나는 각자의 철학을 되뇌었다.
그래, 이제는 안다. 내가 다녀 온 일본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국내외 막론하고 줄곧 배움을 위해 떠난 모든 여행은 결국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이제는 나만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도 안다. 다만, 불과, 곧 많은 것들이 바뀌리라 생각하며 사는 아내와 나의 삶에서의 교토는 다음 세대와 반드시 갈 첫 번째 여행지라는 것은 명확하다. 왜? 고요한 교토의 빵과 음식은 감히 겪지 않는다면 모를 맛이라 단언하기 때문이다. 그 맛은 감히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