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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진 Sep 04. 2023

그리스, 바다거북이, 그리고 엘리아

             

 그리스는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끓고 있었다. 좋았다. 지리멸렬한 지난 일들은 모두 불살라 버리기 충분했다. 나는 육체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머리, 머리의 전원을 아예 내려야 했다. 생업을 접고 홀연히 떠날 곳으로 그리스 아테네를 낙점 지었다. 그곳에는 앞으로 2주간 상주하며 봉사하게 될 바다거북이 구조센터가 있었다. ‘그리스’와 ‘거북이’라는 미지의 존재가 나를 끌어당겼다. 아무것도 엎지른 것이 없는 새로운 세계로 떠나면 나도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스의 지중해성 여름 기후는 바람 한 점 없이 40도를 웃돌았다. 까만 머리숱에 가려진 두피 그리고 그 안쪽에 든 지난 일들에까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상가 복도에 진동하던 오줌 지린내, 수업 중 갑자기 찾아온 원인을 알 수 없는 안면마비, 발소리가 너무 커서 거슬린다고 말했던 음악교사,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연애했던 남자친구. 수평선 너머 아지랑이가 지글지글 타오르는 아스팔트와 함께 모두 녹아 없어지는 듯했다.  

 알첼론(Archelon)은 바다 거북이를 지키는 비영리단체였다. 가난한 단체였다. 폐 기차 칸을 이어 만든 자원봉사자들의 숙소는 너무나 열악했다. 당장 내다 버려야 할 것 같은 침대 매트리스에서 잠을 잤다. 일주일에 한 번 태양광에 바싹 구워진 침대 매트리스가 센터 마당에 일렬종대로 세워졌다. 그렇게 빈대를 태워 죽였다. 하나뿐인 화장실의 변기는 엉덩이를 올려놓을 곳이 없었다. 큰 볼일을 볼 때면 다리에 힘을 주고 스스로 변기 모양을 만들어 서 있어야 했다. 단출하게 지어진 바다 거북이의 거처에는 거대한 탱크가 줄지어 놓였다. 그 속에 딱 탱크만 한 바다  거북이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아 오직 등딱지만 물에 둥둥 띄우고 있었다. 생존반응을 할 수 없게 좁았다. 탱크에 연결된 수도꼭지를 틀면 바로 옆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센터 옆에는 미치광이 노숙자도 하나 살고 있었다. 언제 머리를 잘랐는지 알 수 없는 긴 백발에, 배까지 불룩 나온 늙은 남자는 언제나 수영복 팬티만 걸친 채였다. 언제든 센터로 쳐들어 올 듯이 센터의 허술한 담벼락을 쳐대는 것도 모자라 잡고 흔들며 알아들을 수 없는 그리스어로 고성까지 질렀다. 술주정뱅이였다. 그의 집은 폐차 직전의 낡은 차, 그 차는 언제나 센터 담벼락과 바다 사이에 주차되어 있었다. 밤이 되면 이 남자는 몰래 다른 차에서 기름을 빼내 자기 차에 옮겨다 넣었다. 게을러빠진 센터장은 어떠한가. 비염수술을 핑계로 거북이 센터를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오롯이 내맡기고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어쩌다 출근하는 날에는 자원봉사자들이 한창 일을 하느라 분주한 오후에 삐죽 한번 얼굴을 내밀고 새로운 일거리를 던져주고 가버렸다.    

 나와 함께 일했던 친구들은 모두 유럽출신이며 대부분 나이가 어렸다. 매일 밤마다 술판을 벌이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얼굴에 물세례까지 받는 치욕을 겪어야 했던 프랑스 남자애, 남자친구가 있으면서 이곳 센터에서 다른 자원봉사자와 눈이 맞아 연애를 하고 있는 독일 여자애 - 이 커플은 다른 두 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4인실에서 생활했는데 동침을 할 때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문고리에 더러운 양말을 걸어놓곤 했다, 크로아티아에서 온 내 또래의 동성연애자라 오해받은 여자 둘 - 나중에 밝혀졌지만 크로아티아에서 자원한 두 여자가 센터에 도착하기 전, 두 사람이 친구라는 이유로 센터장은 경솔하게 그들을 동성애커플로 단정 짓고 우리들 앞에서 그렇게 공표했던 것이다, 브라질 출신에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여자애, 핀란드에서 온 여자애 이렇게 있었다. 핀란드에서 온 친구는 항상 이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핀란드에서는 이 더위에 일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야.’ 

 일의 체계가 없었다. 이곳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육체노동자로 완벽하게 빙의한 나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일이 끝나면 컵을 들 힘조차 남지 않았다. 일할 때 끼는 니트릴장갑은 손톱을 하얗게 만들었고, 아무리 비누로 씻어도 손에서 고무냄새가 없어지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을 땐 손목의 어딘가 잘못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통증으로 끙끙 앓고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손목 안에 든 신경다발이 그려졌다. 잠이 들락 말락 할 때 곧 끊어질 듯 낡고 가늘어진 다발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불어난 바닷물이 이 센터를 통째로 쓸어 가버렸다. 탱크 속에 갇힌 거북이들이 모두 가뭄에 단비를 맞는 듯이 바다를 껴안고 바다로 돌아갔다. 꿈이었다. 손목이 시큰거려 더 이상 50킬로의 거북이를 혼자 들어 올려 씻기고 다시 집어넣는 일을 하지 못할 거 같다고 느낄 때 문득 일하다 말고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 그동안 거북이와 탱크, 이 둘과의 사투에만 몰두했던 나의 눈이 뜨였다. 머리, 머리 쓰는 거 하지 말자고 이곳 그리스 먼 타국까지 날아왔는데 단 며칠 만에 오 킬로씩 살이 빠지고 손목이 너덜거리기 시작하자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무실 컴퓨터에는 매일 해야 할 일의 문서가 저장되어 있었다. 반장을 맡은 사람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프린트해 작업장에 붙여두었다. 그러면 자원봉사자들이 7시에 나와 자기 이름을 하나의 일거리에다 적고 그 일을 하고 완료되면 또 다른 일에 이름을 적고 하는 식으로 일했다. 언뜻 생각하면 일찍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선점할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늦게 일어나서 늦게 시작하는 사람은 한두 가지 일거리 밖에 남아있지 않아 오히려 더욱 편하게 일했다. 오전 10시만 돼도 그리스의 해는 정점에 달한다. 내가 오전 7시부터 휴식 없이 10시까지 허리 한번 펴지 않고 일하다 그늘에 앉아 쉬고 있으면 그제야 일을 시작하는 무리가 있었다. 7시에 같이 일을 시작했지만 그동안 그들은 아침을 해 먹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어기적어기적 뭉개다가 본격적으로 10시가 되어서야 일을 시작했다. 이제 겨우 한 마리를 시작하고선 쉬고 있는 봉사자를 불러 이것저것 잡일을 부탁했다.

 거북이에게 링거를 놓거나 주사를 놓은 일은 탱크 청소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탱크 청소를 하기 위해서는 거북이를 먼저 꺼내야 한다. 평균 40-50킬로의 거북이를 혼자 꺼내 구멍이 숭숭 뚫린 플라스틱 상자에 옮겨 담는다. 가끔 거북이가 탈출을 시도하면 목과 목 바로 위 껍데기를 지그시 눌렀다. 껍데기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편안히 쉬던 습성 때문이라고 했다. 상자를 수레에 싣고 밖으로 나와 거북이 등딱지부터 씻어 내린다. 등에 낀 녹조나 미끌미끌한 이물질을 걷어내고 젖은 수건으로 덮어놓고서 다시 탱크로 돌아가 청소를 시작한다. 탱크 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닦아내고 락스로 소독하고 여러 번 바닷물로 헹구어낸다. 마지막으로 다시 거북이를 실어 날라 탱크 안에 돌려다 놓고 바닷물을 채우면 끝이다. 그런데 주사 놓기는 어떠한가. 주사기에 약을 채워 넣고 주사기 하나만 달랑 들고 거북이 탱크로 걸어간다. 그리고 거북이 목 어딘가를 찔러 주사를 놓으면 일이 끝난다. 주사 처치에 세 번 이름을 써도, 탱크 청소 세 개에 이름을 쓴 것과 똑같이 카운팅을 했다. 일의 분배가 정말 터무니없이 불공평했다. 그리스의 더위 딱 그만큼 봉사자들은 신경이 예민해졌고 서로에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엘리아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센터에선 엘리아를 돌려보낼 준비로 분주했다. 센터장은 거북이 몸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선 이 일이 익숙한 듯 바동거리는 거북이는 안중에 없이 아주 태연하게 신체 치수를 재고 기록했다. 센터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달려 도착한 곳, 그곳이 바로 엘리아의 해방장소였다. 저녁 7시, 아직도 대낮처럼 해가 쨍쨍했다. 해안선과 약간 떨어진 모래사장 위에서 봉사자 두 명이 양옆에 붙어 엘리아를 단단히 붙잡았다. 센터장의 수신호에 따라 두 사람이 잡고 있던 손을 놓자 엘리아는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지만 확신에 찬 걸음이었다. 일단 바닷물이 닿는 곳까지 기어가자 도대체 언제인가를 알 수도 없이 엘리아는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센터장은 계속해서 바다를 응시하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 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숨을 쉬기 위해 엘리아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손목의 힘줄 다발이 삭은 밧줄처럼 저릿저릿한 통증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힘든 육체노동도 동료들 간의 갈등도 모두 잊어버렸다. 

우리들 모두 감동에 휩싸여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하나같이 곧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내가 이 먼 곳까지 떠나와야 했던 이유를 찾는 순간이었다.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를 돕는 사람으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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