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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진 Sep 04. 2023

새가 죽었다


       

 큰일 났다. 아까 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이상해. ‘야생 새를 맨손으로 만지지 마세요. 심각한 전염병을 옮길 수 있습니다. 힘이 없어 보이더라도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분한 새가 부리로 당신을 쫄 수 있어요. 다친 야생의 새를 돌보는 방법은 보온과 이유식입니다. 30도 정도로 온도를 유지한 밀실을 만들어주세요.’ 휴대전화를 쥔 손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남편의 만류에도 아기 분유 포트기에 물을 팔팔 끓였다. 펜션 분리수거장에 가서 스티로폼 상자하나와 생수 통 서너 개를 주웠다. 생수 통에 뜨거운 물을 붓고 그것들을 수건으로 꽁꽁 감싸 스티로폼 상자에 넣었다. 병균이 옮을지도 모르니 싱크대에서 고무장갑을 찾아 꼈다. 주먹을 꽉 쥐자 쫀쫀한 고무가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할 수 있어.’   

 펜션 주인이 핸드폰 손전등으로 불빛을 내며 어둑해진 이곳저곳을 살폈다. 베란다에서 새를 내려다보고 마당으로 나온 나는 주인을 불렀다. 

  “여기 있어요.”

 가까이 다가와 보니 새는 이미 머리를 땅에 축 처박고 있다. 남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아이고, 죽었네. 날개도 멀쩡하고 피도 안 흘려서 잠시 놔두면 날아갈 줄 알았는데 안 됐다. 그래도 살 줄 알았는데. 내가 알아서 할게요.” 

 부리에 쪼일까 병균이라도 옮을까 단단히 챙겨 쓴 고무장갑이 무색할 정도로, 한 손으로 쉽게 들려 고개를 축 늘어뜨린 새는 작았다. 옆으로 삐죽 튀어나온 맥가이버칼 같았다. 나는 빈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 그 자리에 물끄러미 섰다. 안락한 어둠을 줄 수 있는 따뜻하고 네모난 30도의 공간. 밤은 까매지기 시작했다. ‘방에 가야지.’

 아기 울음소리가 세차다. 나는 재빠르게 분유를 탔다. 새를 망쳤다. 누가? 어쩌면 살 수 있었던 새를 죽인 건 무엇일까? 길고양이의 공격일까. 아니, 새는 여전히 눈까지 깜빡이며 살아있었다. 보온해주지 않고 내버려 두기만 한 펜션 주인의 무지일까 아니면 그 남자에게 새를 미뤄버리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던 나의 안일함과 새가 죽은 후에야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나간 나의 늦은 구조 활동일까. 

 얼마나 울었던지 품에 안긴 아기의 속눈썹이 젖었다. 아기는 허겁지겁 젖병을 세차게 빨았다. 모처럼의 여행이 고단했는지 강아지는 방바닥에 엎어져 잠들었고, 남편도 선잠이 들었다. 아기를 남편 옆에 눕혔다. 새근새근 나비잠을 잔다. 낮에 다친 새를 발견하자마자 살펴주었다면 지금 살았을까? 새가 다쳐 강아지 운동장으로 옮겨지기까지 일어난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마지막 도움을 제때에 주지 않아서 새가 죽은 건 아닐까? 나를 다그쳤다. 나는 살아있고, 아기도 살아있고, 강아지도, 남편도, 펜션 주인도, 이 건물을 채운 투숙객들도, 모두 살아 있는데 새는 죽었구나.

 방금 죽은 새가 내 머리 위를 맴돌았다. 지키지 못한 생명을 생각해 본다. 고3 모의고사 전날 밤, 친구가 자살했다. 그 당시 밀양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를 찾아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모든 책상에는 가지런히 네모난 시험지가 놓였다. 모의고사를 치르는 날이었다. 그날은 공기부터 스산했다. 학교는 그 아이의 자살 소식을 막는데 급급했지만, 관계자의 우려와 달리 아무도 전염병에 옮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의고사 문제를 푸는데 열중했다. 

 안락한 어둠을 줄 수 있는 따뜻하고 네모난 30도의 공간, 너 필요했던 거니? 너를 살릴 수 있었을까. 고3이었다. 자기 자신이란 건 잠깐 없는 사람 인 듯이 자꾸만 뒤로 미루고,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 나 자신도, 부모도, 학교도 그렇게 믿어야 견딜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관이 나가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교복 입은 아이들의 행렬이 줄지어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친구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은 도서실 수업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얼른 서두르지 앉으면 자리를 다 뺏겨 바닥에 앉아야 한다. 부랴부랴 계단을 뛰어오르는데 미처 책을 챙기지 못한 친구가 자리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무심하게 휙 얼굴을 돌려 단번에 거절했다. 

  “무슨 소리야? 네가 빨리 가.” 

 국화꽃에 둘러싸인 친구의 젊은 영정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내 무릎을 탁 꺾어 털썩 주저앉혔다. 교복 셔츠 깃이 젖도록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떤 따뜻함도 주지 못했던 우리 모두는 그곳에서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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