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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 Jan 10. 2020

좌 며느리, 우 아들!
얘들아 내가 가운데서 잘까?

영화 <올가미>의 현실 버전을 만나 버렸다.

시어머니가 내게 했던 충격의 말들 중에는 쌍욕도 있었고 

가슴을 후벼 파서 아직도 아물지 않은 말들도 있었지만,  

그중 단연 최고는 아마도 지금 할 얘기 중에 나온 말일 것이다.       


결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명절을 맞이한 나는 시댁에서 처음 잠을 자는 날이었다.      

사실 어려서부터 친척집에서조차 잠자는 걸 꺼려했던 나는, 잠자리에 굉장히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향이다. 

내 공간이 아닌 타인의 공간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나에겐 고난의 시간이다.      


신혼이었던 아들 내외를 생각한 어머님은 기꺼이 안 방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고 

당신은 거실에서 주무시겠노라 하셨다. 

마음을 써 주시는 것은 굉장히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사실 나의 속마음은 거실에서 주무시는 어머님이 걱정되는 것보다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머님과 함께 자는 듯 한 느낌도, 조용한 한 밤 중, 거실에 어머님이 계신 상태에서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조차 신경 쓰이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우리가 작은 방을 쓸 터이니 어머니는 안방에서 편히 주무시라며 한사코 말렸으나 

어머님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잠자리에 눕긴 했으나 거실 소리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아직 신혼이었던 그는, 무슨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자꾸 나에게 장난을 걸었고 

나는 크게 웃지도 못하고 웃음을 삼키며 큭큭거리는 일이 힘들던 그 순간.  

방 문 코앞에서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나는 남편을 쿡쿡 찌르며 빨리 나가 보라고 재촉했다. 어머님이 방문을 열게 되면 벌떡 일어나야 하고 

일어나자니 잠자리 옷차림을 들키는 것 같아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 대수냐 싶은데 그때까지만 해도 난 새 신부였던 터라 그 모든 상황이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미처 남편이 일어나 나가기도 전에 삐걱~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리고 어머님의 얼굴이 

빼꼼히 방문을 넘어왔다. 


“엄마, 왜?” 

“니들 안 자지? 나도 잠이 안 오네!”

“이제 자야지.”

“우리 그러지 말고 다 같이 잘까?”

“에이~ 엄마는... 뭘 같이 자?”

“아니.. 어색하면 내가 가운데서 자면 되지..”      


아, 순간 나는 뭐라고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무시당하는 느낌도 아니고 그냥 뭐랄까... 보지 말아야 할 시어머니의 속마음을 

몰래 훔쳐본 느낌처럼, 지금도 그 기분은 설명 불가의 오묘한 감정이었다. 

마치 영화 <올가미>에서 시어머니가 다 큰 아들을 씻겨 줄 때,  그 장면을 마주쳤던 당혹스러운 느낌이 

그 순간 비슷하게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이미 베개도 가슴팍에 꼭 끌어안고 계셨다.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닌 진심으로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주무시고 싶으셔서  방문을 여셨던 거다. 

      

“아이 엄마는 뭘 가운데서 주무셔?”

“뭐 어때? 며느리도 여자인데.. 내가 시아버지도 아니고.”       




신혼인 아들 부부에게 좌 며느리, 우 아들을 옆에 끼고 한가운데서 주무시겠다는 

어머님의 진짜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내 남편이 미래의 사위에게  ‘자네 자나? 오랜만에 우리 딸과 자네 사이에서 자고 싶은데..’라고 

상상해 보니.. 나도 모르게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게 되는 게 결코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난 그 날, 막연하게 내가 영화 올가미의 현실 버전 며느리가 된 느낌이었다.   

그 당시 나는 결혼을 하고 나면, 세상의 많은 여자들로부터 내 남자를 지키기 위해 쓸 데 없는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완벽한 오판이었다. 


조인성이나 장동건은 게임도 안 될 만큼, 세상에 이런 남자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그 절대적인 사랑을 쏟아부을 수 있는 시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난 손익계산서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시어머니의 그 차고 넘치는, 심지어 집요할 만큼의 유별난 아들 사랑이 

결국 쓰나미처럼 덮쳐 올, 내 험난한 시집살이의 시그널이었다는 것을 난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서 난 그 날,  시어머니를 가운데 두고 세 명이서 나란히 누워 잤을까?

      

“아이 엄마는... 말도 안 돼.. 어서 가서 주무셔.”      


결국 아들의 핀잔에 어머님은 다시 거실로 돌아가셨지만 

난 그날 밤 내내, 가시방석도 아닌 철심이 박힌 듯한 이부자리에 누워 단 일초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웠다. 참으로 인상 깊은 시댁에서의 첫날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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